'그 많던 싱아'와 '그 산'이 의미하는 것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by 이소라

박완서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손 귀한 집안의 유일한 손녀로 자란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한 후의 적응,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내적 성장, 역사의 격랑 속에서 가족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선정도서로 택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작가의 아름다운 글말과 유머러스한 시각 때문이고, 둘째는 일본의 통치와 6.25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불행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싱아는 작가의 고향인 박적골에서는 흔한 들풀이었다. 작가가 시골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후 처음 맞은 봄, 친구들을 따라 아카시아 꽃을 먹어보고 그 비린 맛 때문에 새콤달콤한 싱아의 맛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서 모임의 최연장자인 60대 남성 회원은 어렸을 때 싱아와 아카시아 꽃을 다 먹어보았다고 했다.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싱아를 먹어본 사람이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KakaoTalk_20210205_101953294.jpg 당신의 싱아는 무엇인가?

한 회원은 독후감에서 ‘내게는 과연 싱아가 있을까?’라고 썼다. 작가가 문득 문득 싱아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돌아가고픈 곳이 있음이 삶 속에 힘이 되고 위안이 될 것 같아 부러웠다’는 것이었다. 토론을 위한 좋은 질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회원들 각자에게 싱아의 역할을 해 준 것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자고 했다.

싱아를 먹어보았다고 했던 회원은 동생들과 솔밭에서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이 자신의 싱아였던 것 같다고 했고, 또 다른 회원은 자기 어머니가 해 준 이야기가 자기에게는 싱아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신통한 도인이 ‘당신 아들은 크게 될 사람이요.’라는 말을 어머니에게 해주었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큰 사람, 바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시간이 가면서 각색되는 것을 보고 그는 결국 그것이 지어낸 이야기였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 이야기가 그에게 생기를 주는 ‘젖줄’이 되었음이 분명했다. 사실은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싱아였다는 깨달음이 왔다. 우리를 어르고 윽박질렀던, 그러나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부모가 결국은 우리의 싱아였던 거다. 줌 화면에 비친 회원들 눈에 이슬이 맺히는 것이 보이는 듯 했다.

한 여성회원은 친정아버지가 가족을 북한에 두고 내려와 새로운 가정을 꾸려서 자기가 태어났다고 했다. 그녀는 작가가 찾던 싱아란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생긴 근력과 끈끈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의미하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 말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담겨있었다. 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던 상실과 분노와 그리움을 이 회원은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듣고 있었다.

KakaoTalk_20210118_080800530_04.jpg 당신이 역사로부터 부여받은 책무는 무엇인가?

발제 질문 중에는 '본인이 역사로부터 부여받은 책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도 있었다. 가장과 부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사이의 연결을 자기의 사명으로 생각한다는 회원과 환경보존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다는 회원도 있었다. 나의 역사적 책무는 상담과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다소 거창하게 들리는 질문이었지만 질문의 답을 듣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내적 세계를 알게 되었다. 누구든 다른 사람의 내적 세계와 접촉하게 되면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에게 질문하며 더 깊이 사색하게 된다.


시즌 2에서 읽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이후 「그 산이」로 표기함)」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후「그 많던 싱아」로 표기함)」의 후속편이다.「그 많던 싱아」가 아름다운 어린 시절과 빛나는 청년기를 그린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였다면 「그 산이」에는 음울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6.25 전쟁 발발 후 작가의 오빠가 총기사고로 다리에 총탄을 맞는 바람에 여섯 가족 모두가 피난가지도 못하고 유령도시처럼 텅 빈 서울에서 숨어 지내는 이야기이다.

회원들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를 대하는 자세는 다양했다. 시즌 2에 처음 합류한 30대 남성 회원은 친자매도 아닌 시누이와 올케가 어떻게 빈집털이를 같이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시누이와 올케 사이를 가족이라기보다는 타인으로 보는 신세대적 사고를 엿본 것 같았다. 그리고 비슷한 맥락에서 올케가 아이를 두고 시누이와 함께 피난을 간 것이라든지, 오빠가 죽은 후 하루도 되기 전에 ‘단지 썩을 것을 염려하여 내다 버리듯’ 매장한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정도로 절실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1950대와 2020년대는 70년의 간격이 있으니 그동안의 관습과 문화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젊은이의 입을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하니 다소 씁쓸했다. 이 회원의 말은 신세대들이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집안을 위해서’이거나, ‘집안 어른이 내린 결정을 따르기 위해서’인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무더위에 시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부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도 이들에게는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사망 즉시 냉동고로 보내지니까 시신의 부패를 걱정할 일은 없지만 영안실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극빈자들은 가족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나 하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공동운영자는 작가의 까칠함이 싫다고 했다. 작가가 어머니와 오빠를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이 그녀를 불편하게 한 것 같았다. 나는 같은 이유로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 가족과 동일시되는 측면이 많아서일까? 나는 작가의 그런 반골스러움이 좋다.

가족의 위선은 가족만이 안다. 사실은 어떠하든지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더 중요했던 어머니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본 작가는 어머니의 이중성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천성적으로 자립심이 강한 그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는 어머니를 고이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무력한 어린아이였을 때는 하는 수 없었겠지만, 생각이 자라면서 어머니의 불합리함이 더 두드러지게 느껴졌을 것이다. 어머니의 출세지상주의, 그리고 남존여비 사상과 끊임없이 마찰하면서 오히려 작가는 세상에 대고 당당하게 자기방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다.

부역 혐의로 자신을 잡아가는 향토방위대 사람들에게 살려 달라고 비는 대신, “백성을 버려두고 도망간 정부가 무얼 잘했다고 백성을 키질하느냐”고 악을 쓰는 그녀의 모습은 방위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가 기개를 발한 그 순간은 그녀 자신이 그 집단에서 쓸 만한 인재로 받아들여지고 그 후 중요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는 전환점이 된다. 특히 젊은 여성에게는 이해와 순응을 강요하는 사회에다 대고 ‘나도 사람이다!’라고 일갈했던 그 외침이 먹힌 것이니 이 얼마나 선구적인가! 나는 내 느낌이 공동운영자와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본 덕분에 작가의 성격에 대해 더 큰 이해를 얻게 되었다.

KakaoTalk_20210205_102704617.jpg 산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날의 진행자는 이 책의 제목에서 ‘산’이 암시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자는 질문을 했다. 대체로 ‘과거’, ‘기억’, ‘역사’ 같은 의견들이 나왔는데 한 회원이 ‘이데올로기’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그 ‘산’이 의미하는 것이 단순히 전쟁의 기억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20대의 작가에게 그토록 강렬했던 현실이 60대의 그녀에게는 그저 꿈속에서 본 것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언뜻언뜻 놀라는 작가의 심정을 나타낸 표현이라 생각했었다.

산을 이데올로기라고 말한 회원 덕분에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좌우 이데올로기 사상이라는 것이 지금은 정치인들의 색깔 논쟁에 그 잔재가 남아있을 뿐 대다수 국민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개념이다. 그런데 70년 전에는 그 이념이라는 것 때문에 애매한 사람들이 생과 사를 넘나들어야 했다. 지금은 좌우 이데올로기는 희미해졌다 할 수 있으나 또 다른 산이 여기저기 버티고 있다. 새롭게 대두된 이데올로기의 산은 다른 성(性)에 대한 혐오증이나 타 세대에 대한 몰이해, 종교적 배타주의 같은 것이다. 산 넘어 산인 것일까? 인간은 편 가르기 본능을 극복하지 못하는 운명일까? 우리 사회에서 관용의 정신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기승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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