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by 이소라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나의 인생 책이다. 30년 전 이 책을 읽고 나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갔었다. ‘정신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가장 건강한 행동이다’라는 저자의 말 때문이었다. 만성적인 과민성대장염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대장의 문제가 나의 불안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불안은 너무나 사적인 문제라서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저자의 말 한마디는 커다란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던 그 날 이후 내 삶은 크게 달라졌다. 의사와의 만남 그 자체보다도 지금껏 갇혀 있던 자아라는 벽을 내 스스로 깨뜨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당시 정신과 병원에 대한 편견은 지금보다 훨씬 심했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로 결심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문제들은 우리의 용기와 슬기를 요구할 뿐 아니라 그것을 창조하기까지 한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문제를 인정하고 나 자신을 직면하기로 결심한 덕분에, 그 후 30년 동안 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해 엄청난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잘 겪어내면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결국은 신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 고통을 잘 겪어내는 방법은 즐거움을 뒤로 미루기, 책임을 받아들이기, 현실에 충실하기, 균형 잡기의 4가지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사랑은 이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힘을 제공한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해 나가려는 의지이다.’

추석 연휴로 한 주 쉬고 만났더니 두 명의 회원이 몸살기가 있었다. 그런데도 독후감 과제는 모두가 제출했다. 회원들의 독후감을 읽으며 연령대에 따라 적용점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최연소 회원인 30대 남성은 그 나이 때 나처럼 이 책에 푹 빠진 것 같았다. 그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뼈를 때린다고 표현했다. 한 회원은 ‘인식이란 의식을 무의식과 일치시키는 과정’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고 했고, 또 다른 회원은 부모라는 종교를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자는 현실을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을 지도에 비유하며 현실이 변하는 만큼 개인의 지도도 계속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50대의 한 회원은 자신의 지도를 수정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며 딸이 사귀는 남자친구가 못마땅하다고 했다. 그녀는 이 문제가 자신이 옛 지도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비슷한 연배의 회원도 지도 수정하기, 다시 말해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마음을 여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고백했다. 나 역시 옛 지도에 의지하여 길을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기 일쑤이다. 스마트폰 지도 어플처럼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지도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기 스스로 지도 개정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성숙에 이르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KakaoTalk_20210227_122651274.jpg 우리는 평생동안 지도수정하기를 계속해야 한다

이날의 대화 중에 두 가지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공감능력을 주제로 이야기하던 중에, 남에게 선물 받은 물건을 처분해야 하는 경우 그 물건의 가치를 경제적 측면에서만 볼 것인지 거기 담긴 정서적 가치도 고려해야 하는지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새 물건과 달리 쓰던 물건에는 전 소유자의 애착이 담겨 있는 것이고, 더욱이 이전 주인이 그것을 선물했을 때는 특별한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돈을 받은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 그 물건을 처분할 때는 과거 주인의 추억까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 주인에게 허락을 구할 것 까지는 없어도 그에게 알리고 작은 애도라도 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토론 주제는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기술에 관한 것이었다. 어린아이들과 달리 성인인 우리는 하기 싫은 일을 먼저 한 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한 회원은 어떤 노력에 대한 성과가 신속하고 분명하지 않으면 초조해지는 것도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기술의 부족과 관련된 것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의견에 동의하며 타인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기술을 계속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소감 나누기 시간에 한 회원이 프란츠 카프카의 글을 인용했는데, 이 글속에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전체 주제가 담겨 있었다. ‘모든 죄악의 근원은 성급함과 게으름이다. 사람은 성급한 탓으로 낙원에서 쫓겨났으며 게으른 탓으로 낙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카프카가 말하는 성급함이란 스캇 펙이 말하는 ‘즐거움을 뒤로 미루지 못하는 충동성’과 같은 것이며, 카프카의 게으름이란 스캇 펙의 ‘성장을 위한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 회피하는 태도’와 같은 것이다. 결국 인간의 구원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즐거움 미루기, 책임 받아들이기, 현실에 충실하기, 균형 잡기의 4가지 기술은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스스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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