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
'수북수북' 독서 모임의 열한 번째 책은 김숨 작가의 「흐르는 편지」였다. 이 작품은 위안부의 실상을 그린 흔치 않은 수작이다. 그러나 몇몇 회원들의 저항에 부딪쳐 모임을 한 번 거르게 되었다. 마음이 아파서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 우리 회원들의 태도는 특별히 무감각해서라기 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망을 뒤로하고 그다음 책인 「사랑의 기술」을 가지고 모임을 준비했다.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나의 동연배들에겐 익숙한 책이지만 제대로 읽은 사람은 거의 만나 보지 못했다. 나는 독서를 돕기 위해 많은 리딩 가이드를 제시했는데, 그중 이번 모임에서 토론한 것은 ‘사랑을 기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의 차이는 무엇인지’, ‘모성애에서 젖과 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본질적으로 사랑을 의지의 행위로 볼 수 있다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달라지는지’에 대해서였다.
공교롭게도 모임 하루 전날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공동 운영자가 진행을 하고 나는 오디오만 켜고 참여했다. 비디오를 켜지 않았으므로 비스듬히 누워서 참여해도 문제가 없었다. 현재까지 비디오를 켜지 않고 참석하는 회원이 있는데, 그녀가 라디오를 듣는 것 같아서 좋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진행자로서는 회원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려운 책이었던 만큼 미리 독후감을 제출한 사람은 두 명에 불과했다. 둘 중 한 사람은 처음으로 기한 내에 독후감을 제출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나는 이런 일을 일종의 훈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독후감을 쓰라고, 그리고 제때 제출하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왔다. 그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자기를 성찰하고 사랑이 배워야 할 기술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죽을 때까지 연습해야겠다고 했다. 또 다른 회원은 부모로서의 자기를 성찰하고 사랑의 네 가지 요소인 보호, 책임, 존중, 지식을 잘 실천하고 싶다고 적용했다. 책 내용을 삶에 적용할 때 대체로 사람들은 한 가지 역할 정체성에 근거하여 적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전반적인 느낌 나누기에서 회원들은 사랑에 대한 개념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고했다. 한 마디로 사랑을 감정이 아닌 의지의 행위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사랑을 의지의 행위로 볼 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라거나 ‘사랑하지 않겠다.’라고는 말할 수 있으나,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라거나 ‘사랑할 수 없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한 회원은 이런 책은 여러 번 읽는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이해할 만큼 성숙했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젖과 꿀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할 때부터 의미 있는 토론이 이루어졌다. 저자는 어머니의 사랑을 젖과 꿀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나누었는데, 젖은 자녀를 보호하고 긍정해주는 측면을 나타내며 꿀은 어머니 자신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사랑과 행복감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젖을 줄 수 있으나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이다. 꿀을 주기 위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 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저자의 말은 모두에게 새로운 통찰로 다가왔다.
한 회원이 젖만 주는 것도 어려운데 꿀까지 주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에게 너무 큰 부담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그가 꿀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결과였다. 꿀을 준다는 것은 어머니 입장에서 또 다른 종류의 헌신이 아니고 어머니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 오는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머니가 행복한 척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어머니가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이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깊은 자아 속에 있는 행복감, 삶에 대한 충일감이 바로 꿀이다. 한 회원은 그런 행복감은 어머니의 지식수준이나 경제적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고 통찰했고 또 다른 회원은 꿀 개념이 어머니와 자녀의 분리까지 연결되는 개념이라고 보았다. 팩트 중심으로 볼 때 젖과 꿀이 필요한 시기는 각각 다르기 때문에 꿀은 기초적인 욕구가 채워지고 난 후 그다음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통찰한 회원도 있었다. 회원들의 다양한 관점과 깨달음을 들을 수 있어서 유익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저자는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반면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있는 사랑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한 회원은 아들을 편애하고 철저히 성취에 기초해서 상벌을 준 자기 아버지의 모습이 이 프로파일과 일치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한 회원도 유사한 경험을 나누었다. 그의 아버지는 심지어 밖에서 낳아 온 아들인데도 그 아들이 낳은 손자를 딸의 손자와 비교하며 ‘우리 누구누구는'이라고 말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싫었다고 고백했다. 한 회원이 지적한 대로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은 부모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지 어느 한 부모가 한 가지 사랑만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특히 전통사회에서는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이 지나치게 양극화되어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사랑은 거기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며,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즐거운 일인 이유는, 주는 행위가 잠재능력의 최고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즉, 사랑하는 자는 사랑을 하는 동안 자신의 힘과 부, 그리고 능력을 경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는 행위가 즐겁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적이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자기 자랑이 될까 봐 그랬는지 사례가 별로 나오지 않았고 실패한 경험들만 나누어졌다.
사랑을 기술로 보는 저자의 관점은 회원들에게 반성과 위안을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사랑이라 여겼던 것이 감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람이 있었고,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면 제대로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는 사람이 있었다. 사랑의 기술은 사실상 삶의 기술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말한 회원도 있었다. 그의 말이 오늘 모임의 결론이 되었다. 이렇게 「사랑의 기술」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과 고민거리를 던져준 좋은 책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흐르는 편지」를 함께 읽지 못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성찰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