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반의 요양병원 생활 끝에 흡인성 폐렴으로 보훈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아빠는 중환자실을 거쳐 열흘 만에 일반실로 옮겨졌다. 음식 삼킴 기능이 약화되어 흡인성 폐렴이 온 것인 만큼 콧줄(비위관)을 삽입하여 식이와 투약을 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을 때 엄마는 강력히 거부했다. 콧줄을 꽂으면 마지막이라는 말을 지인에게서 들었다는 것이었다. 비인간적인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집에 모시고 가서 '깨끗하게' 보내드리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쓰는 '깨끗하다'라는 말은 남 보기에 비참하지 않다는 뜻이다.
엄마 말대로 집에서 깨끗하게 계시다 가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신 다음에 일어날 일은 너무나 뻔했다. 아빠가 음식을 삼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싶은 엄마는 아빠가 불쌍하다며 토마토 고구마 범벅을 먹일 것이고, 그러면 아빠는 또다시 폐렴에 걸릴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빠는 수시로 119에 전화하라고 할 것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가로막고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하겠다고 했다. 아직 폐렴이 낫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것이 콧줄을 꽂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엄마 말을 너무 심하게 묵살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내 지인의 어머님이 콧줄로 1년을 연명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그녀에게 물어보니 자기 어머니의 1년이 너무 비참했다며 우리 아빠도 콧줄을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콧줄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니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이면 콧줄을 끼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기사를 읽으니 마음이 약해지면서 엄마 뜻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콧줄을 끼우지 않는다는 것은 환자를 굶겨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콧줄을 끼고 있어도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그런 사람에게 음식을 주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리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중환자실에서는 아빠에게 콧줄을 삽입해버렸다.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의 치료가 시급한데 보호자의 결정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던 것이리라. 콧줄로 투약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빠의 병세는 일반실로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엄마는 며칠만이라도 아빠를 집에 모시고 갔다가 일반실로 입원시키면 안 되겠느냐고 의사에게 간청했다. 아빠가 이제는 영영 집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그런 것이리라. 집에 가서 좋아하는 음식을 해드리고 며칠만 있다가 다시 모시고 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콧줄, 소변줄, 중심정맥관을 매달고 있고 수시로 가래를 기계로 빼내야 하는 환자를 집에 모시고 가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그건 나도 동의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그토록 주장하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도 아빠는 이미 드실 수 없는 상태였다. 매일같이 엄마와의 신경전을 벌이던 중에 일반실에 자리가 났다고 하여 아빠를 그리로 옮겼다. 간병인도 소개받았는데 좋은 사람 같았다. 그녀는 아빠가 좋아지면 콧줄도 뺄 수 있고 삼킴 연습을 하면 다시 음식을 드실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거반 의료인이라 할 만큼 전문적이어서 신뢰가 갔다.
요양병원에 있을 때는 면회가 불가했는데 보훈병원 일반병실에 있는 아빠는 면회가 가능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빠가 일반실에 들어가신 후에 엄마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면회를 가셨다. 나는 아빠에게 음악을 들려드리면 좋겠다 싶어 이어폰을 사서 간병인에게 전달하고 아빠가 좋아하는 찬송가와 가곡 찾는 법을 알려드렸다.
일반실에 입원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두 달이라고 했다. 두 달 동안이라도 아빠를 간병인에게 맡겨놓고 엄마를 좀 쉬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간병비 부담이 생각보다 컸다. 일당 11만 원에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격주 휴가 수당을 보태니 350만 원이 넘었다. 간병인이 휴가를 쓰는 날 엄마와 내가 교대로 간호했는데 엄마는 아예 가래 흡입기를 사용하지 못하여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다. 결국 나도 항복하고서 쉬고 있는 간병인을 다시 불렀다. 휴가 수당을 주면 간병인을 휴일에도 쓸 수 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자 엄마의 불평 목록이 재생되었다. 간병인이 하는 일도 없는데 왜 그 큰돈을 주냐는 것이었다. 결국 아빠를 다시 요양병원으로 모셔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