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말을 다 쏟아부은 후
나의 일성은 “엄마, 나는 평생 엄마와는 대화다운 대화를 못 해 본 것 같아요!”였다. 엄마는 자기 방어에 능한 사람이라 어떤 말로 공격받아도 일순간에 전세를 뒤집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러므로 무슨 말로 시작하는가가 너무나 중요했다. 그러나 첫 말은 내가 골랐다기보다 저절로 터져 나왔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급박함과 간절함 때문에 입이 아니라 가슴에서 말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사실 그날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은 뒤죽박죽, 두서가 없었기에 내 말과 엄마의 반응을 순서대로 복기하기가 불가능하다. 글로 쓰기 위해서 사건을 논리적으로 배열하려다 보니 그날의 온도를 그대로 재현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내가 지금 쓰는 이야기는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나는 평생 엄마와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했어요.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일방통행이었어요. 나는 엄마가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말을 바꿀 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몰라요. 오랜 세월 비슷한 상처를 반복적으로 받다 보니 그런 기미만 보여도 너무나 예민해져요.”라고 나는 말했다.
전에는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했었다. “엄마 제발 제가 말할 때 말을 바꾸지 말아 주세요”라고. 그러면 엄마는 “내가 언제 말을 바꿨노? 그리고 말 좀 바꾸면 어때서?”라고 되받아쳤다. 엄마는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는 동시에 자신이 그 행동을 했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이중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엄마가 말을 바꿨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지, 아니면 말을 바꿀 때 내 기분이 어떤지를 알려주어야 하는지 몰라서 말이 막혔다.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20년 전 대학원에서 이상심리학을 공부할 때 부모의 이중 메시지가 자녀에게 조현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을 배우고 나서는 엄마의 말 바꾸기와 동생의 이상행동을 연결시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지식으로는 엄마를 비난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은연중에 엄마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엄마에게 말할 때 자꾸만 비난하는 어조를 띠게 되었다.
그날의 대화로 다시 돌아가자.
“엄마는 나를 위해 몸이 부서지게 일해주셨지만 내가 정말로 원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엄마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를 원했어요!”라고 나는 말했다. 엄마에게 추궁당할 때 느꼈던 두려움과 긴장, 그리고 엄마가 내 말을 더 이상 듣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될 때 느꼈던 슬픔과 분노가 되살아나 눈물이 쏟아졌다.
과거에 내가 고민이 있어서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그깟 일로 힘들다고? 그러니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었겠나!”라고 말함으로써 내 입을 막아버렸다. 그때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는지를 처음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리고 내 마음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서 나는 엄마와 말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내가 우울증에 걸려 일 년간 상담을 받으러 다닐 때도 엄마는 얼마나 힘든지, 뭐가 그렇게 힘든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그런 엄마를 내가 어떻게 좋아할 수 있었겠냐고.
전에 나는 엄마가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 싫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몹시 서운했을 테지만 사위가 불편해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였다. 진짜 이유는 엄마가 우리 집 살림을 참견하고 나의 일상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는 것이 싫어서였는데 나는 비겁하게 남편 핑계를 댔다. 내 생활을 미주알고주알 캐묻고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주는 것이 엄마의 낙이었는데 육십이 넘어서까지 내 사생활을 포기해가며 엄마를 기쁘게 해 주기가 싫었다. 엄마가 나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해주는 일들은 더 이상 나에게 필요한 일이 아니고 엄마의 만족감만 채우는 일이었다. 물론 내가 엄마를 좋아했다면 엄마와의 대화는 나에게도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에 대한 거부감이 가득한 채로 주고받는 이야기는 그저 마지못해 하는 감정노동에 불과했다.
엄마와 나 사이의 벽이 너무 높아져서 과연 그것을 허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여동생은 엄마가 변할 사람이 아니라며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더 늙기 전에 꼭 말하고 싶었다. 더 늙어서 치매에 걸리기 전에 말하고 싶었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때, 당신의 잘못을 인정할 정도의 인지능력이 있을 때 말하고 싶었다. 엄마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더 늙으면 나의 진심을 털어놓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 같아서 오늘은 말해야겠다고. 그러니 제발 내 말을 끝까지 들어달라고.
나는 엄마가 내 말을 듣다가 딴청을 할 때뿐만 아니라, 엄마가 다른 사람 험담을 할 때도 상처받는다고 말했다. 엄마는 친척이나 지인 중에서 부자로 살고 자식이 효도하는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그것이 내 눈에 빤히 보였다. 엄마가 시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는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고 비아냥거림이 느껴졌다. 누구든 시기 질투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렇게 입 밖으로 다 내놓지는 않는다고, 성숙한 사람들은 그런 감정을 느낄 때마다 뉘우치고 반성한다고 나는 말했다. 교회 권사인 엄마가 그렇게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는 상처받는다고 말했다.
나는 할 수 있는 독한 말은 다 했다. 엄마의 아킬레스건인 아들과 관련해서 그동안 참았던 말을 다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엄마의 태도에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미국에서 동생의 소식이 날아왔을 때라고 말했다. 아들이 자살 충동으로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도 “입원해서 다행이다”라는 말 밖에 못하는 엄마를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냐고. 올케가 나에게 동생 소식을 전할 때 엄마가 상처받을까 봐 말을 못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엄마의 감정이 얼마나 중요하면 자식의 목숨보다 중하냐고 나는 따졌다. 엄마에게는 자존심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올케도 알고 있어서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소리를 질렀다.
20년 전 동생이 미국행을 감행하기 직전 이상행동을 보였을 때 조치를 취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도 했다. 그때 나는 엄마더러 동생과 같이 상담받으시라고 했는데 엄마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상담받으면 뭐 하겠노? 나보고 변하라고 안 하겠나? 나는 못한다.” 그때 엄마가 한 말을 나는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기억한다.
그때 왜 그러셨냐고, 자식을 고칠 수 있다면 부모가 목숨이라도 바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어떻게 나는 변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는 당시 내가 동생의 문제를 모두 엄마 탓으로 돌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엄마 성격을 뻔히 아는 내가 엄마 탓을 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남의 비난에 너무나 민감한 나의 엄마는 내 태도에서 그것을 읽었던 것이다.
“엄마, 자식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면 일단은 부모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 아니에요? 엄마가 원인제공자든 아니든 자식을 고쳐놓고 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엄마에게는 자식보다 엄마의 자존심이 더 중요했어요?”라고 말하며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엄마도 울었다.
몇 번의 변명 기회를 내가 차단해버리자 끝까지 눈감고 듣고 있던 엄마는 그럼 당신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처럼 내 말을 그냥 좀 들어주세요. 엄마가 화내지 않고 내 말을 한 시간 동안 들어준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힘없는 노인의 처지가 되어 젊은 나에게 꿀린다고 생각해서 꼬리를 내리는 것인가 염려되었다. 엄마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본인도 잘못 살아온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나에게 용서하라고 말했다. ‘용서’라는 말이 엄마 입에서 나오다니!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나는 기계적으로 말했다. “엄마가 나에게 하신 일은 다 용서했어요. 하지만 동생에게 하신 일은 동생의 용서를 받아야 해요”라고.
엄마는 동생의 입원 소식을 듣고 편지로 사과했다고 말했다. 엄마가 죄가 많아서 네가 고통을 받는다고 썼다고 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두루뭉술하게 사과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동생이 원하는 사과를 하시라고 했다. “동생에게 엄마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어보고 사과하세요.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물어보고 그 말을 해주세요.”라고 했다. 놀랍게도 엄마는 “그렇게 할게”라고 했다.
변명과 합리화를 하지 않는 엄마는 퍽 낯설었다. 죄책감으로 공격하지 않는 것도 너무 이상했다. 내가 이긴 것일까?
속에 있는 말을 엄마에게 쏟아붓고 난 직후의 느낌은 ‘시원하다’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꼭 그렇게 했어야 했나?’하는 생각이 나를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힘없는 노인을 궁지에 몰아넣고 잘못했다는 말을 들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누군가가 나의 행동을 지지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큰딸에게 말했더니 정말 큰일을 했다고 위로해주었다. 그래도 자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는데 나는 오랜 세월 벼르고 별러 말해놓고 이렇게 고민해야 하는가? 나도 이 정도의 이야기를 할 자유는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미움과 분노의 연쇄를 끊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런 부정적 감정에 시달려왔다. 나 자신을 바쁜 일의 쳇바퀴 속에 집어넣어 정신없이 지내지 않으면 엄마에 대한 미움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하고픈 말을 하고 나니 내 마음속의 독소가 많이 빠져나간 것 같다. 엄마가 정말로 동생과 진지한 대화를 시도할지, 내가 싫어하는 언행을 고치려 애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내 마음은 다소 편해졌다.
그러나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단지 내 마음 편하자고 엄마에게 독설을 퍼부은 것은 아니다. 엄마를 좋아하고 싶어서였다. 엄마가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을 때, 나보고 용서하라고 말했을 때, 동생에게 용서를 빌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에 대한 미움이 빠져나가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빵빵하게 부푼 풍선에서 바람이 슈우욱 하고 빠지는 것 같았다.
미움이 차지했던 자리에 사랑이 찾아오면 좋겠다. 엄마에게 연민 말고 사랑을 느낀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는 나도 엄마를 사랑한 적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