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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08. 2019

비가 와도 꽃은 피듯이

치매 걸린 아버지를 사랑하는 방식(독후감)

  아름다운 실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동의 물결이 인다. 나와 비슷한 사정을 지닌 사람들이 사랑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문제를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문제 속에 빠져 허우적대며 주변 사람을 원망하고 나 자신을 혐오하고 있는데 나보다 어린 사람이 지혜와 상상력을 발휘하여 어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 진다.


  '비가 와도 꽃은 피듯이'는 평범한 직장인인 작가가 치매 아버지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자신보다 타인을 더 생각하고 타인을 위한 헌신을 희생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이타심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연민을 연민으로 끝내지 않고 적극적인 태도로 아버지의 남은 시간을 행복으로 채우려는 작가와 언니의 노력은 참으로 경탄스럽다. 단기 기억이 쇠퇴한 아버지의 반복되는 질문에 지치지 않고 같은 대답을 해주는 끈기와, 때로는 거짓말로 아버지의 두려움을 다독이는 작가와 언니들의 기지는 사랑의 힘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요구하는 일을 당연하게 볼 수 없는 세상이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볼 수 없는 시대이다. 오히려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아놓고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해진 세상이다. 모두들 각박해진 세태를 한탄하는 사이, 작가와 그 가족들은 각박해진 세태가 문제가 아님을 몸으로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나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문제는 세태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진정한 사랑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우리는 확고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세상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사랑이 참 고맙다.      


  나의 친정아버지는 파킨슨과 치매의 이중고를 겪고 계신다. 걱정이 많은 아버지에게 찾아온 첫 번째 몹쓸 병은 우울증이었다. 그 걱정이 사랑으로 인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걱정은 좀 지나친 면이 있었다. 자식들의 인생설계도를 본인이 그려놓고 거기에 맞게 자식들을 끌고 가셨다. 우리 삼 남매 모두 순한 성격이라 아버지께 순종하였으나 외아들인 남동생은 아버지의 설계도대로 건물을 다 지어놓고는 그것을 다시 허물어버렸다. 아버지는 분노하고 동생은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가버렸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는 늘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동생이 떠났으나 아버지 마음속에는 여전히 동생과 동생의 가족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들을 끊임없이 걱정하며 손자들의 교육을 위해 돈을 부쳐주고 계신다. 파킨슨병과 치매는 아들 걱정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협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남동생이 밉고 아버지가 밉다.


  그리하여 병든 아버지의 거취걱정하는 것은 나와 여동생의 몫이 되었다. 아직은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우리가 전적으로 아버지를 부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삼분의 일이 되어야 할 자식 노릇의 분량이 이분의 일로 늘어난 것에 대한 불만이 나와 여동생을 괴롭히고 있다. 남동생이 없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기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남동생은 여전히 아버지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어 있으니 그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남동생이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기 전에는 이 난국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감정이 이렇듯 좋지 않으니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지가 않다. 아버지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은 나였는데도 현재의 아버지를 보면 받은 사랑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이런 시점에 작가와 언니가 아버지의 남은 시간을 사랑으로 채우는 이야기를 읽으니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들의 사랑이 내게 전염되는 것을 느낀다. 특히 작가의 언니는 아빠를 위해 창의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작가는 언니가 거짓말의 달인이라고 썼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놀라운 상상력이 발휘된 창조적 활동이었다. 병원에 입원하기 싫어하는 아빠를 설득하기 위해 작가의 언니는 아빠가 병원장으로 초빙되었으니 환자들의 생활을 체험해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또한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아빠에게 말을 시키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나가야 한다며 연설 연습을 시킨 일, 가족이 주는 밥은 먹지 않으려는 아빠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동생에게 변장을 시켜 밥을 먹인 일 등 언니의 상상력은 끝이 없었다.


  한술 더 떠 작가는 웃음을 잃어버린 아빠를 웃게 하기 위해 시험관 아기 시술까지 한다. 내리사랑이 대단했던 아빠에게 새 생명의 소식은 가장 큰 기쁨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임신은 실패했으나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했던 자매의 분투가 눈물겹다. 간병인을 쓸 수 있었음에도 자기 사업을 쉬면서까지 아빠 옆에 있으려고 하는 언니와 주말에라도 밤샘 간호를 하려고 하는 작가의 행동은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도 몰랐던 나에게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사랑은 감정이나 생각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몸으로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작가는 아빠를 노망 든 노인으로 대하지 않고 건강했을 때와 다름없는 존재로 대한다. 게다가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아빠를 자식 다루듯 소중하게 대하고 있다. 딸들의 진심 어린 간호를 받은 그들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이 없는 것이 행복이 아니었다. 돈이 많은 것이 행복이 아니었다. 진심 어린 사랑을 하는 가족으로 사는 것이 행복이고 인생의 성공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자기 아버지에게 하듯 내가 내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아버지만의 행복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더할 수 없는 행복이 될 것이란 것이 문득 깨달아졌다. 남동생에 대한 원망을 계속하는 것은 내게서 사랑할 능력을 빼앗아 간다. 남동생을 불우이웃이라고 생각해야겠다. 나까지 동생에게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것에 감사해야겠다.

 

  이렇게 좋은 책을 읽는 일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라고 나를 격려한다. 작가가 이런 삶을 살아주어 고맙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주어 더욱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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