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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10. 2019

사람의 향기

신영복이 보여주는 인간다운 삶(독후감)

  나이 들수록 그리워지는 것은 사람의 향기다. 어렸을 때는 사람에게 향기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멋진 옷이나 장신구밖에 없는 줄 알았다. 조금 자라서는 가문이나 혈통, 직업 따위도 무형의 장신구가 됨을 알게 되었다. 인간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에 대해서는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향수가 만들어진 본래 목적은 악취를 없애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대인은 짙은 향수 냄새 때문에 그 사람의 고유한 향을 느끼지 못한다. 이처럼 인격의 향기도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직책이라는 외피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젊은 교수였던 신영복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잃고 죄수가 된 후에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그의 향기는, 아니 어쩌면 사회적 지위를 잃었기 때문에 여과 없이 드러나는 그의 향기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투명하게 드러내 준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영복이 20년의 수감생활 동안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쓴 글들과 가족 지인에게 보낸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고결할 수 있는지에 경탄하였다. 수의(囚衣)도, 좁은 감옥 벽도 그의 정신을 훼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것들은 그의 정신을 단련하는 풀무불이 되었다.


  어쩌면 상아탑에 갇혀 파리하게 굳어질 수도 있었던 그의 사상이, 바닥인생들과 동고동락하는 동안 피와 살이 붙어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리라.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도 드러나는 보석 같은 잠언들은 감옥생활이 그의 인품과 사상의 온상이 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감흥은 이론과 실제가 분리되지 않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젠체하는 지식인 특유의 오만함이 없는 그의 글은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순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고미숙의 말처럼 글은 곧 그 사람이다.

 

  감옥에서 그의 글쓰기 도구는 원고지도, 한글 워드프로세서도 아닌 화장지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소중하였다. 이중섭이 담배 속지에 그림을 그리면서도 가족을 생각하며 행복해한 것처럼, 신영복은 얼어붙은 감옥 벽의 성에를 보면서도 아름답다고 느낀다. 아름답다는 말은 행복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무기수가 느끼는 이런 행복이 나의 마음에도 행복을 선사한다. 평생을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운명은 그에게 엄청나게 암울한 그림자를 던졌을 텐데 그는 어떻게 고요한 호수처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대체로 그는 자기 자신을 객체로 묘사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한 이성의 지배를 받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일광욕 투쟁’이나 ‘용변 투쟁’이라고 표현한 것들은, 바깥세상에서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던 기본생활조건의 결핍을 경험하면서 그가 느꼈을 비참함과 비굴함의 객관적 표현이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억압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내가 그의 인격에서 향기를 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자기 연민이 될 수도 있었던 그의 감성은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을 향한다. 농촌사람, 노인, 가난한 자, 어린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모두 살이’,  즉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 그의 사상의 기초이자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다.


  ‘청구회 추억’에서도 소외된 이들을 향한 저자의 연민을 보여준다. 고작 여남은 살 먹은 남자아이들에 대한 호기심은 아이들의 똑똑지 못한 행색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자랑하는, 아이들의 경계심을 푸는 자신만의 대화술은 사실 때 묻지 않은 영혼들을 향한 관심이며 사랑의 표현이었다. 누구나 쉽게 무시하기 마련인 아이들의 자존 욕구를 배려하면서 그는 짐짓 쿨하게 길을 물어보는 척하며 아이들의 호의를 이끌어낸다. 산동네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이 젊은 지성인과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간식거리 따위를 얻어먹는 재미도 있었겠으나 자기들이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받는 흐뭇함을 이 아이들은 계속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 이익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인간관계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운 이 시대에 나는 신영복의 관계 맺기 방식이 그립다. 그저 상대방의 기쁨과 성장에만 관심이 있는 그런 관계 말이다.

 

  나라면 하루도 견디기 어려웠을 감옥생활의 면면을 엿보며 지금껏 환경을 불평해왔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인간다운 삶이란 환경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사는 주체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신영복은 몸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해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삶의 방식을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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