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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19. 2022

당신, 그런 사람 아니잖아?

『인생 우화』독후감


    "당신 그런 사람 아니잖아?" 

    전에는 이런 질문이 내게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나는 쩔쩔매며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변명하려고 했다. 남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란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지키고자 애썼던 나의 이미지와 관련된 특성들이다. 예컨대 나는 친절한 사람, 양보하는 사람,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보이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보고 “당신 ‘그런’ 사람 아니잖아?”라고 할 때 이 말은 나에게 커다란 압력을 행사한다. 그 말속에는 그 사람이 나에게 모종의 기대를 갖고 있다는,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어떤 행동이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착한 어린이와 착한 여자로 보이고 싶었던 시절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맞으며, 현재의 행동은 예외적이고 부득이한 경우’라고 해명하기 급급했다. 사실 육십 평생 그런 질문을 받은 횟수는 최근 몇 년 동안 받은 횟수보다 적었다. 어쩌면 내가 정말로 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질문을 몇 번 받으면서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대답하게 되었다. 원래 그런 사람인데 나를 감추고 살았던 거라고 대답한다.  

    나는 '원래' 친절하고 양보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인데 스트레스가 심해서, 바빠서, 에너지가 소진되어서 예외적인 행동을 했다고 더는 변명하고 싶지 않다. 나는 대체로 친절하고 양보하고 이해심을 발휘하지만 언제나 그럴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것을 보면 과거에 나는 거의 과대망상 환자였던 것 같다.

     

    헤움의 바보들이 자신을 자신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라고 결론짓는 것을 보면서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앞에서 쓴 것처럼 오랜 세월 나는 남들의 평판이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이라고 믿고 살았던 것 같다. 남들의 평판이란 남들이 내게 입혀준 옷과 같다. “너는 착해, 너는 이해심 많아, 너는 효녀야, 너는 유능해.”라는 말들이 쌓여 내 피부를 감싸는 옷이 되어주고 있었다. 따라서 타인들이 나에게 그런 인정을 그칠 때 내 옷이 헐고 구멍나고 찢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남들이 입혀준 옷 말고 내가 고른 옷, 내가 지은 옷을 입고 싶다. 그 옷이 유행에 맞지 않고 계절에도 맞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화롭지 않아 보이더라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싶다. 『인생 우화』를 읽으며 헤움 사람들이 내놓는 엉뚱한 해결책을 읽어보니 그들의 지혜를 빌어오고 싶은 점이 많았다. 

    완전히 대치되는 두 가지 사실을 모두 수용하는 루블린 선지자의 지혜, 더 큰 문제 앞에서는 문제가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전염병 사건 이야기, 책을 좋아하는 것이 단점이었던 의사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는 말로 헤움 주민들의 걱정을 불식시키는 이야기, 기도 시간에 도망간 꼬마들을 꾸짖는 대신 사고를 당한 척하는 랍비의 이야기는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과는 다른 종류의 지혜를 던져준다. 이들은 일시적으로 루블린이나 바르샤바, 미국 등 외지의 문화를 동경하여 그것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기들의 방식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헤움 사람들의 이야기는 작가가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꼬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시대 불문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빠져들 수 있는 오류를 지적하면서도 직관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소개해주기 위해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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