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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an 28. 2023

여행의 이유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독후감

    2019년 발간되기 전부터 주문이 쇄도했다는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기 시작했다. 평이한 문장, 일상적인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매력이 금방 느껴지지 않아서, 나는 속이 상했다. 단지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써낸 유명 작가의 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나도 이런 글 쓸 수 있는데, 하면서 시샘을 했다. 김영하 작가는 일찌감치 자기의 흥미와 적성을 발견해서 글쟁이가 되었고,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그랬다면, 일찌감치 나의 글솜씨를 인정받았다면 진작 글쓰기의 길로 나섰을 것이라고, 늦깎이 작가의 되지 않는 합리화를 해본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광고 카피는 부러워하는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만들기 때문에 부럽다는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입을 앙다물게 된다. 그러나 사실 부러워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글을 계속 읽기로 한다.


    중국 공항에서 비자 미소지로 입국이 좌절된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첫 번째 이야기는, 자신의 소설 쓰기가 미지의 장소를 탐험하는 여행을 닮았다는 암시를 거쳐, 이십 대 초반 이상한 이유로 참여했던 공짜 중국 여행의 경험을 소개하는 것으로 넘어간다. 

    첫 번째 중국 여행에 참여할 무렵 그는 몰락해가는 사회주의라는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소액주주였다. 자본주의의 뒷모습에 염증을 느껴 사회주의에서 구원을 찾고자 했던 젊은 문학도는 천안문 사태와 베를린 장벽 붕괴를 뉴스로 접한 후에는 사회주의도 맹신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직감했지만, 사회주의 이념을 배교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부족했다. 결국 그의 무의식은 현장에 가서 그 증거를 찾으려 했다. 

    이야기는 희비극으로 끝난다. 사회주의를 추앙하던 한국 젊은이는 자본주의 미국을 동경하는 중국 젊은이와 대면한다. 그는 한편으로는 중국 젊은이가 천안문 사건을 변명해주길,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이념이 허상이었음을 밝혀주길 바랐다. 중국 젊은이는 둘 중 어떠한 대답도 시원하게 해주지 않았으나 그는 무엇보다도 중국 젊은이의 태도에서 자신의 질문에 대한 확답을 얻는다.       

    그리고 작가는 마침내 여행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행에는 외면적 목표와 내면적 목표가 있다. 잘 쓰인 여행기는 ‘주인공이 외면적으로 추구하던 목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달성하도록’ 한다. 대개 내면적 목표는 여행자 자신도 모르는 것으로 뜻밖에,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당초 그것을 원할 수도 없다. 인생에서 중요한 깨달음은 의도된 교육과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 여행에서 작가가 얻은 뜻밖의 수확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이었다. 자신을 감시할 목적으로 동행한 경찰과 친해지면서, 수배자로 검거될 뻔한 순간에 그의 도움을 받으면서, 스스로 배교자라고 자책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이었다. 당시 중국 여행을 기획하고 후원했던 집단의 의도를 빤히 알았기에, 작가는 자신이 그들의 바람대로 전향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는 전향한 것이 아니었고 그냥 숨어 있었다. 그러다 대학원에 가고, 대학원에 다니며 쓴 작품으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자연스럽기에 더 설득력이 있다. 이것이 바로 많이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의 힘이구나, 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러움에 빠진 나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를 계속 부러워하면서 그처럼 되려고 할 것인가? 문제는 내가 아무리 기를 써도 김영하처럼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김영하의 필력은 그에 상응하는 습작과 고뇌, 번민의 결과일 터인데 그가 겪은 모든 곤란을 부러워하지 않으면서 그의 필력을 부러워할 자격이 내겐 없다.      

여행의 목적은 인생의 목적과 같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작가는 자신이 여행하는 또 다른 이유가 낯선 곳에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통해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익숙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서 나는 영원히 익숙한 것들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작가의 숙명 같은 것을 본다.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작가가 된 것 같다. 글쓰기 자체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작가 자신이 말하지 않았던가.

    여행의 이유는 뜻밖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낯선 곳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그리고 익숙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이고, 문학의 이유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이다. 결국 여행의 목적은 문학의 목적과 닿아 있고 인생의 목적과도 닿아 있다. 작가는 여행하는 자이다. 그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이자 어디서든 환대받기를 원하는 자, 그러면서도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는 자이다.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서 보편적 공감 지점을 찾아내는 김영하 작가의 능력이 경탄스럽다. 내가 부러워해야 할 점은 바로 이것이다. 나의 이야기에서 다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을 만한 공통의 이야기를 뽑아내는 것. 한없이 부러워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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