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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Mar 16. 2023

포수 안중근

김훈의『하얼빈』을 읽고

김훈 작가 필생의 대작 『하얼빈』은 철저한 고증에 기반한 역사 소설이다. 작가는 먼저 인물과 사건의 몽타주를 그려놓고  사실적 정보를 하나하나 소개하는 형식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유시민의 알릴레오 북스 78회). 의도적으로 작가 자신의 감정을 배제함으로써 독자가 글 안에서가 아닌 글 밖에서 안중근을 느끼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독자가 소설에 기대하는 드라마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이 안중근의 강철같은 의지와 실천력을 부각한 독보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안중근은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운 교육자이며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이후 의병활동도 했으며 1909년에는 ‘동의단지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이토 히로부미와 친일파들을 처단하기로 했고, 그 결과가 하얼빈에서의 거사였다.

안중근이 교육자와 사업가, 대한의병이라는 이력을 모두 삭제하고 법정에서 자신의 직업을 포수라고 한 것은 흥미롭다. 자신이 이토를 죽인 것을 마치 짐승을 사냥하는 포수가 짐승을 죽인 것처럼 묘사하고 싶은 의도가 읽힌다. 사냥이 죄가 아니라면 짐승같은 인간을 죽이는 일이 죄일 수는 없는 것이다.

검사 미조부치는 안중근이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신앙양심에 비추어 명백한 악을 행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그러나 인중근의 대답은 자신이 한 일은 일개 인간을 죽인 죄악이 아닌 더 큰 죄악을 제거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한 일은) 사람의 도리에 반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죄악이지만)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


안중근의 위대함은 애국애민정신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과 그 믿음을 흔드는 어떠한 시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에 있었다. 미조부치가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느낌을 묻는 미조부치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가 인륜을 저버린 것으로 비칠 수 있음을 안중근이 왜 몰랐겠는가? 그는 자신을 죽은 사람이나 짐승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짐승을 쏜 자기 자신 역시 짐승이라고 자처하지 않고는 검사의 날카로운 질문에서 마음이 동요하지 않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미조부치는 안중근의 이토 처단을 정치적 행위가 아닌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한 단순 범죄로 규정하기 위해 유도심문을 벌인다. 그의 정치적 의도를 인정하게 되면 일본 제국주의가 내세우는 대의명분에 커다란 흠집이 나기 때문이었다. 모든 제국주의가 대의 뒤에 야욕을 숨기듯이 일본도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동양평화의 기반을 놓은 숭고한 목적으로 포장하고 있었는데, 안중근 같은 무명인이 목숨을 걸고 일본의 정책에 도전한다는 것은 자기 나라의 도덕적 우위(를 점했다고 믿는 그들의 믿음)를 잃을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문명화교육을 명분 삼아 인질로 데려간 어린 황태자 이은은 일본의 사기극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서 메이지와 이토를 존경하고 따르게 되었으나, 호랑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쏘아보는 안중근에게는 그러한 계략이 통할 수 없었다.

안중근은 포수로 총을 쏘았고, 포수로 심문받았고, 포수로 죽었다.

안중근은 포수로 총을 쏘았고, 포수로 심문받았고, 포수로 죽었다. 그가 자신의 행동을 살인이 아닌 사냥(안중근 자신은 사냥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나 의미상 사냥 또는 사살이 맞다.)으로 불렀던 이유가 무죄선고나 감형을 바라서여서는 아닐 것이다. 실정법상 자신은 살인죄로 기소될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온 세상에 자신이 이토를 쏜 이유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훈 작가는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고 표현했다. 안중근의 총소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의 총소리는 하얼빈 역을 울린 것에 그치지 않고 조선반도와 일본 열도, 그리고 온 세상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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