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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Mar 22. 2023

발효된 김치처럼

『H마트에서 울다』 독후감

    『H마트에서 울다』는 회한의 사모곡인 동시에 위트 넘치는 K-푸드 에세이다. 

    혼혈아로 태어나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던 중 록 음악으로 구원받은 미셸 자우너는 미 대륙 반대편으로 가서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분투한다. 자기 힘으로 돈을 벌며 록 밴드 활동을 계속하던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엄마의 췌장암 소식이 날아든다. 

    K-엄마의 대표자 격인 미셸의 엄마 이정미 여사는 하나뿐인 딸에게 집착이 심하다. 그렇지 않아도 외모 열등감이 있던 미셸은 엄마의 통제와 지적질 때문에 청소년기에 극한의 반항을 하고 심한 우울증을 겪는다. 그러나 하마터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할 수 있었던 미셸을 대학에 진학시킨 것은 순전히 엄마의 한국식 교육열 덕분이었다.

    엄마로부터 떨어져 살면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가던 미셸에게 엄마의 발병 소식은 죄책감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미셸은 있는 힘을 다해 엄마의 치료를 도왔고, 엄마에게 마지막 기쁨을 주기 위해 무리한 결혼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한다. 

    엄마와 딸의 역할이 하루아침에 반전되었다. 미셸은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받았던 보살핌을 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엄마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국 음식을 배워서 장례식에 온 이모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주고, 나중에는 배추김치까지 담그게 된다. 미셸은 소금에 절인 배추가 발효되어 색과 질감이 변하고, 톡 쏘는 새콤달콤한 맛이 나게 되는 현상을 통해 인간이 죽은 후에 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방식의 삶을 얻는다는 통찰을 얻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이 완전한 소멸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남아있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엄마와의 기억은 어떻게든 미셸 본인이 돌봐야 하는 것이었다. 엄마와 미셸이 공유한 문화를 잘 붙들고 키우기 위해 미셸은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작곡하고 글을 썼다. 돌아가신 엄마를 절절히 그리워하던 그녀는 엄마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 터였다.” 

    큰 사랑을 받았던 사람은 사랑을 주었던 이를 그리워하다가 문득 그 사랑이 자기 속에 심겨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기 속에 있는 그 사랑의 나무가 마침내 다른 존재에게 사랑의 씨앗을 퍼뜨리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이 죽은 후에는 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방식의 삶을 얻게 된다. 

    엄마를 잃은 슬픔은 미셸을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숙하게 했다. 그녀의 앞길에 잘 익은 김치처럼 맛있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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