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라 May 23. 2024

미셸 자우너의 간병기를 읽으며 감사를 느끼다

    나 자신의 투병기를 쓰기 위해 혈액암에 걸렸던 사람의 글을 찾아보니 소설가 허지웅의 책 한 권(『살고 싶다는 농담』)밖에 없었다. 그런데 독서 모임을 위해 『H 마트에서 울다』를 재독하고 보니 이 책이야말로 작가 어머니의 투병기와 작가의 간병기 그 자체였다.      


    어머니의 유별난 K-양육방식과 딸의 유난히 예민한 성격 때문에 애증의 관계였던 미셸 모녀의 관계는 미셸이 대륙 반대편으로 떠나면서 많이 나아졌다. 멀리서 바라보는 엄마, 가끔 만나는 엄마는 훨씬 더 이해할 만한 존재였다. 그런데 미셸이 집을 떠난 지 7년 만에 어머니는 췌장암에 걸리고 만다. 두 번의 항암치료는 암세포는 죽이지도 못하고 극심한 부작용만 일으켰다. 희망 없는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떠난 한국 여행도 수포로 돌아간 후 미셸은 모든 일을 접고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 스물다섯 살의 그녀가 쉰세 살의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6개월의 시간 동안 미셸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알뜰히 돌보았던 어머니의 심정이 되어 매 순간 어머니의 증상을 관찰하고 식사와 투약 내용을 기록한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남부에서 날아온 계씨 아주머니는 유능한 요리사이자 간병인이었지만 어머니의 곁을 미셸이나 아버지에게 양보하지 않고 자신이 어머니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 양 어머니를 독차지한다. 자녀가 없었던 계씨 아주머니는 남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온전히 기대는 누군가가 있다는 데서 만족감을 느꼈나보다. 나중에는 어머니도 그녀의 집착과 독점욕을 알아채고 그만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결국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들은 미셸이 혼자서 지켰다.      


    간병이라는 힘든 일을 누구든 피하려고만 하는 줄 알았는데 계씨 아주머니를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가 봉사를, 희생을 경쟁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인가 보다.  

     내게는 환자를 두고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는지 경쟁한다는 개념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팠을 때 엄마는 간병인과 요리사 역할을 완전하게 해내셨고 아빠는 엄마의 조수 역할을 잘 해주셨다. 시어머님과 가사도우미는 막내를 돌봐주고 우리 집안일을 건사해주었다. 물론 남편은 이 모든 일에서 재정을 담당하고 제자리를 지켜주었으니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각자 역할이 달랐기 때문에 나를 둘러싸고 사랑을 경쟁하는 일은 없었을까? 뒤늦게 감사할 일 하나가 추가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스탄불 행 비행기 안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