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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11. 2019

노인의 자서전 쓰기

노인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독후감)

   도서관에서 내 눈길을 끈 작은 책이 있었다. ‘고령사회에서 자서전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라는 제목이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몇 년 전 시어머니의 자서전 쓰기를 도와드린 것이 생각났다. 몇 달의 시간을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글을 쓰고 다듬고 했는데 그때 어머님은 전에 없이 활기가 넘치셨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5명의 자녀를 낳으며 대가족 살림을 감당하느라 약해질 대로 약해진 어머니는 기독교 신앙을 접한 후 기적적으로 건강해지셨다. 뿐만 아니라 병 고침의 은사(하나님의 카리스마적인 선물을 뜻하는 기독교 용어)를 받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셨다. 어머님의 기도는 효험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받으러 찾아왔고 멀리 심방을 가시는 일도 많았다. 


  어머님 때문에 온 가족과 일가친척이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시부모님의 고향마을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어머니는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보기 드문 어른이시다. 구십이 넘은 지금도 매일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고 여러 모양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신다. 그래서 자식들 모두가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막내며느리인 나는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큰 재미와 감동을 느꼈다. 


  어느 날 문득 어머님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께 같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들을 내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그대로 전할 자신이 없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만 머물다 잊히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유산이었다. 내 아이들과 손자들도 이렇게 훌륭한 할머니가 계셨다는 것을 알고 그분의 신앙과 삶을 닮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기억나는 대로 조금씩 글을 써보시라고 어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어머니는 옛 문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가셨다. 초등학교만 나오셨지만 어려서부터 총명하셨던 어머니는 글도 잘 쓰시고 무엇보다 기억력이 대단하셨다. 어머니가 그 이야기들을 평생 들려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많은 에피소드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 이름과 지명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계셨다.   


  옛일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그 당시는 시아버님이 말년을 보내고 계실 때라 어머니는 늘 지쳐 있었지만 글을 쓸 때는 힘이 난다고 하셨다. 그렇게 모여진 어머님의 자필 원고를 기초로 내가 책을 쓰기 시작했다. 책에 실을 사진을 추리기 위해 가족 앨범을 들추고 지인들에게 갖고 있는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어머님의 글이 이해가 안 되거나 전후 사정에 설명이 더 필요한 경우도 많아서 나는 자주 어머님 댁을 방문하여 어머니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무척 즐거워하셨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랑을 떠벌리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셨다.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불편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만들어진 어머님의 책을 출간하지는 않고 가족 친지 소장용으로 백 권 정도 찍어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본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구해달라고 요청하여 다시 백 권을 인쇄했다. 가족들 뿐 아니라 어머님의 교회 교인들과 지인들도 책을 더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책을 만든 후 한동안 집안에서 책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어머니는 자기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을 듣고 새로운 감동을 받으셨다. 노인의 자서전 쓰기가 본인의 정신건강과 가족의 연대감에 미치는 영향을 나는 그때 이미 경험했었다. ‘고령사회에서 자서전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이 저자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느꼈다.  

   

  이 책은 자서전 쓰기가 노인의 소외감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년의 가장 큰 숙제는 만족스러운 삶으로 잘 늙어가는 것인데 잘 늙기 위해서는 외롭지 않아야 한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특히 자신보다 젊은 사람이 도와주며 같이 쓰는 자서전은 누군가와 함께 과거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외로움이 해소될 뿐 아니라 젊은 날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미래의 노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표현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미래의 노인이 아닌가. 육십을 바라보는 나도 옛날 같았으면 이미 노인층에 속했다. 단순히 경제적 지원만 하는 것은 오히려 노인을 고립되게 하는 것이라는 말도 크게 공감되었다. 돈은 노인의 자립에 도움이 되겠지만 누구보다도 연대를 필요로 하는 노인들에게는 돈 이상의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회상 또는 회고 활동 자체도 큰 가치가 있었다. 회상이 생의 만족감 및 심리적 안녕감을 증진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써진 자서전은 후손들에게 노인의 경험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고 때로는 유언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의미 있는 이러한 작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 부모님부터 자서전을 쓸 수 있게 도와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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