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죽음을 떠올리며
나는 마흔 초반에 죽은 내 친구 윤경이를 생각한다. 내가 그 아이의 사망시점을 특정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미국에서 홀로 외로이 죽었고, 그의 가족인 남편과 아들은 그 소식을 내게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위에서 40년을 살았고,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아이의 엄마로서 20년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남편은 내가 윤경이의 절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윤경이의 죽음을 내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죽음을 하찮게 여겼다는 증거였고, 그 사실은 고인을 모욕하는 일이었다.
윤경이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가구를 정리할 때 나는 그 집의 책상과 장식장을 중고 가격으로 샀다. 십 년 이상 사용한 가구를 친구인 나에게 돈을 받고 팔아야 할 만큼 윤경이는 늘 경제적으로 쪼달렸다. 나는 가구를 옮기기 위해 픽업트럭 한대를 빌렸다. 트럭 기사가 짐꾼 한 명분의 노동을 해줄 것이라 생각하여 인부를 따로 부르지는 않았다. 그때 한 명을 더 고용했어야 했다. 한 명 분의 인건비를 절약한 대가로 내 다리 힘줄과 수백만 원의 수술비를 날렸으니 말이다.
책상 상판 유리가 문제였다. 기사가 책상을 옮기는 동안 나는 유리를 들었다. 내가 잠시 균형을 잃고 유리를 놓쳤을 때, 땅에 떨어지면서 유리가 깨졌고 날카로운 유리 단면에 내 왼쪽 종아리가 베어졌다. 다리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자 우리(나와 윤경이)는 겁이 덜컥 났다. 윤경이는 자기 차에 나를 태워 동네 외과 병원으로 갔는데, 거기서는 응급처치만 해주고 나를 상급병원인 목동선병원으로 보냈다.
그 난리가 벌어지는 동안 윤경이의 남편은 내게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았다. 처음에 가구를 들고 나올 때도 그랬지만, 내가 다쳤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나와 보지 않았다. 선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하기 위해 간호사가 내게 던진 몇 가지 질문 중에 임신가능성이 있느냐는 문항이 있었는데, 나는 잠시 주저한 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바로 임신 테스트를 했고 임신이 확인되자 수술에 사용할 약물의 종류가 모조리 바뀌었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급박하게 전개되었으므로 윤경이 남편의 태도에 대한 서운함은 금방 잊혀졌다. 그런데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그의 태도는 나를 무시한 것이기 전에 윤경이를 무시한 것이었다는 깨달음이 온다. 당시 나는 그저 그를 무례한 사람,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윤경이의 죽음을 내게 알리지 않은 것도 그의 무인격, 무교양의 증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는 개인적인 결함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그는 남존여비 사상, 요즘 말로 하면 가부장적 사고에 지배받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요즘 일련의 페미니즘 도서들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지금은 이민경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읽는 중이다.
이민경의 책은 옛날 사람인 내가 보기에는 매우 과격하다.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가?’하는 생각이 드는 구절도 많다. 이 책은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직후에 쓰인 책이라서 더 과격한 어조를 선택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여성혐오범죄’라는 범주가 없었기 때문에 강남역 사건은 정신이상자가 벌인 ‘묻지마 범죄’의 범주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여자라는 사실 말고는 범인이 피해자를 죽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혐오범죄라는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고, 그 결과 ‘여성혐오’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 친구가 남편으로부터 무시당한 이유는 여자라는 이유 하나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무식하지도 않았고 집안이 나쁘지도 않았다. 못생긴 것은 더욱 아니었으며 지나칠 정도로 남편에게 순종적이었다. 친구 본인은 대학 강사였고 아버지는 해군장성으로 퇴역하신 분인데다 미모는 여배우 급이었다. 그녀의 완벽한 스펙이 오히려 그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걸까. 그는 그냥은 생기지 않는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대 놓고 내 친구를 하대한 것 같은데 그가 그녀를 무시할 수 있는 조건은 오직 한 가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밖에 없었다.
그 남자가 내 친구를 무시했다는 증거 중 위에서 말한 두 가지는 가장 소소한 것이다. 그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여 더 이상의 고발은 하지 않겠다. 다만 내 친구의 일을 이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남녀차별, 여성혐오의 증거로서 제시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내 눈을 트이게 해준 페미니즘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공부해볼 생각이다. 페미니즘 덕분에 내 친구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젊은 부부들보다 노인 부부들 사이에 불평등이 더 만연되어 있으므로 페미니즘은 젊은 여성들보다 할머니들에게 더 필요한 사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평생을 남편의 노예로 살았던 내 어머니의 친구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