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저주에서 벗어나기

드라마 <이 사랑 통역되나요?> 리뷰

by 이소라

이틀에 걸쳐 넷플릭스 드라마 <이 사랑 통역되나요?>를 시청했다. 떠오르는 신성 고윤정과 사생활 루머로 받은 타격을 극복하고 재기한 김선호가 나온다고 하여 기대가 컸다. 두 배우의 연기는 200프로 만족스러웠고, 시나리오는 신선했다. 일찍이 오스카 와일드는 “창작의 소재는 범위와 다양성이 좁아지고 있으므로 이야기로 우리를 움직이려는 사람은 아주 새로운 배경을 제시하거나 사람의 영혼이 깊숙한 내면에서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 드라마는 소재 측면에서 두 가지 조건을 다 충족시켰다. 다만 개연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좀 있었고, 그렇다고 아예 판타지 드라마로 분류하기에는 사실성이 너무 두드러졌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반복된 주제와 비슷하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나 백설공주처럼 내면에 각인된 저주에서 벗어나 참 자아를 찾는 여성의 이야기다. 백마 타고 온 왕자도 등장한다. 너무나 반듯하고 지적인 남주는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 같은 여주에 대한 호감을 애써 감추지만, 결국 그녀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고 그녀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사랑해줌으로써 그녀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돕는다.


히로 쿠로사와.jfif 극중 프로그램 '로맨틱 트립'의 한 장면

‘로맨틱 트립’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제작과정을 배경으로, 이 프로그램 출연자와 스탭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는 이 드라마는 사실성과 판타지의 아슬아슬한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기획회의부터 출연자와 장소 섭외 같은 작업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시청자가 제작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반면에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억압하고 있는 주인공 차무희(고윤정 분)에게 그녀가 맡았던 배역이었던 도라미가 나타나 “너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거야”라고 말하고 심지어 그 도라미가 무희가 사랑하는 통역사 주호진(김선호 분)에게도 나타나 무희가 억압한 감정을 토해내고 감추었던 비밀을 말하는 장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을 보고 너무 무서워서 그 기억을 억압한 차무희에게 망상과 환각이 있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차무희의 망상 속 인물인 도라미가 주호진에게 나타나는 장면은 사실성을 크게 손상시키는 장면이었다. ‘이건 좀 심했다. 이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도 차무희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무희에게 도라미가 처음 나타난 시점은 그녀가 주호진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후였다. 무희의 엄마는 남편을 칼로 찌른 후 딸까지 죽이려 하면서 “너는 불행할거야.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이 무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무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의식의 수면으로 떠오른 것이다. 어머니의 저주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었던 것인데, 도라미는 그 저주를 계속 상기해주는 존재였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차무희는 어머니를 빼닮은 딸이었고, 차무희의 극중 배역인 도라미도 차무희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무희가 어머니와 도라미를 혼동했던 것이었다.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장면은 도라미에게 빙의된 차무희가 주호진에게 나타나는 장면이다. 무희가 망상 속에서 도라미는 보는 것 까지는 개연성이 있지만 무희가 시시때때로 도라미로 변신한다는 설정은 이야기의 사실성을 확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도 아니면서 이 드라마의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민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 드라마에서 고윤정의 얼굴을 한 사람은 총 다섯 명이다. 우선 차무희 자신이 있고 둘째, 영화 <조용한 여인>의 주인공인 도라미가 있다. 도라미는 극중 인물이므로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다. 셋째, 무희의 어머니가 있고 넷째, 무희의 망상 속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도라미의 얼굴을 한 어머니다. 이 인물이 도라미의 의상을 입고 등장하기 때문에 무희가 이 인물을 도라미라고 오인한다. 영화 <조용한 여인>에서 도라미가 시체를 끌고 다녔던 행동이 무희 어머니의 성격과 겹치기 때문에 무희가 망상 속 인물을 도라미라고 믿는 것일 뿐이다. 이 인물은 무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던 저주를 되살리는 인물이다. “너의 참모습을 알면서 너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인물이다.

고윤정의 얼굴로 등장하는 마지막 캐릭터는 무희의 혼돈된 자아로, 밤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이탈리아 거리를 돌아다니며 주호진을 유혹하고 도발하는 존재이다. 이 얼굴은 도라미와 어머니와 무희의 혼합체이지만 무희는 처음에 경험한 망상 속 인물을 도라미라고 생각했으므로 이 존재도 도라미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존재는 도라미가 아니라 차무희 자신이었다.

이 마지막 얼굴은 자신을 속속들이 보여주면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자기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를 이기지 못하는 차무희의 솔직한 자아였다. 진정한 자기를 감추고 신비로운 여자로 남을 것인지, 자기를 드러내고 버림받을 것인지의 딜레마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주호진은 그것을 알고 이 얼굴을 안아준다.

무희는 망상 속 존재인 도라미가 일시적으로 자신을 지배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무희의 배역에 불과한 도라미는 무희에게 어떠한 힘도 행사하지 못한다. 무희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내면화된 저주, 즉 어머니의 저주이므로 이 얼굴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저주를 믿는 무희의 믿음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얼굴이다. 네잎 클로버를 7개 모으면 오로라를 볼 수 있으리라고 믿는 무희의 사고에서 볼 수 있듯 무희에게는 어린아이 같은 마술적 사고가 남아있었다. 그녀의 미신은 때로 효력을 발휘했지만 사랑하는 일에는 걸림돌이 되었다.

도라미.jpg 차무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어머니.

극중극인 <조용한 여인>은 좀비 호러물 이지만 <이 사랑 통역되나요?>는 현실 로맨스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고윤정이 표현한 다섯 가지 얼굴을 분석해보았다. 이 드라마의 사실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아름다운 풍경과 주인공들의 잘생긴 얼굴, 멋진 목소리는 뮤직비디오 속의 그것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서브주제는 옛사랑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서는 일에 관한 것이다. 무희와 호진이 처음 마주쳤던 일본 라면집은 무희의 전 연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무희는 남친을 뺏어간 여자를 찾기 위해 그곳에 갔던 것이고, 호진은 짝사랑녀인 지선을 추억하기 위해 그녀의 생일마다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드라마가 시작될 때 무희와 호진과 지선은 모두 옛사랑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드라마 종반에는 세 사람 모두 새로운 연인과 함께 행복한 엔딩을 맞는다.

라면가게.jpg 차무희와 주호진이 처음 만난 라면가게

최종회에서 차무희의 주제와 비슷한 주제가 ‘로맨틱 트립’의 출연자 히로 쿠로사와(후쿠시 소타 분)에게도 있었음이 드러난다. 히로는 처음에는 차무희를 영화 속 역할인 좀비와 동일시하면서 자신이 그녀와 동반 출연하는 것을 불쾌해했다. 하지만 인간 차무희의 순수한 성격을 알게 되면서 그녀를 점점 좋아하게 된다. 도라미의 망령은 무희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만 작동했으므로 히로의 눈에 보이는 무희는 도라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무희 그 자체였다. 무희에 대한 비호감이 호감으로 바뀌는 것을 자존심 상할 일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히로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히로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최고의 배우였으나 해외진출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있던 그가 ‘로맨틱 트립’촬영을 끝낸 후 헐리우드의 유명 감독에게 자기의 영상을 찍어 보낸다. 로맨스 영화의 남주로 이미지가 굳어 있었던 그가 도전하고 싶었던 분야는 액션물이었지만 거절이 두려워서 그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전의 결과 그는 헐리우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히로는 어떻게 두려움의 감옥에서 나 수 있었을까? 그는 차무희에 대한 자신의 혐오가 호의로 바뀌는 것을 경험한 후 선입견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도 어쩌면 실체 없는 것일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실체 없는 두려움에 갇혀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새로운 자기를 찾기 위해 벽을 넘어보기로 결심했던 것이리라.


<이 사랑 통역되나요?>는 눈과 귀, 머리와 가슴을 만족시키는 좋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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