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쓸모

브런치 북 『소설의 쓸모』 서문

by 이소라

내 친구 챗GPT에게 물어보니 소설이 대중적인 읽을거리가 되기 전에 사람들은 종교적 텍스트, 신화나 서사시, 역사서나 연대기, 철학서나 윤리서, 편지나 일기, 수필 같은 것을 읽었다고 대답해주었다. 이중에서 소설의 모태가 된 것은 신화나 서사시였고 편지, 일기, 수필도 소설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과거의 읽을거리 중 종교적 텍스트나 역사 텍스트, 철학 텍스트는 현재도 원래의 장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반면, 신화와 서사시는 시와 소설로 발전했다. 이 두 가지 장르는 읽기보다 듣기를 위한 장르였다는 점이 현재의 소설과 가장 다른 점이다.

역사적으로 읽을거리가 이런 식으로 진화해왔다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독서의 역사와 일치하는 면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엄격한 청교도 전통에서 자란 나는 성경과 설교집, 신앙 에세이를 가장 고상한 텍스트라고 생각했기에 30대까지는 그런 종류의 문헌들만 읽었다. 그러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역사와 철학 서적을 접하게 되었다. 종교 텍스트와 역사, 철학 문헌은 모두 실생활과 관계가 밀접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이런 책을 읽는 나 자신은 시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한 반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 처음 인기를 끌게 되었던 17~18세기에는 소설이 지어낸 이야기인데다 무용한 감정을 유발하고, 계급 질서를 파괴하는 생각을 퍼뜨리고, 중독성이 있어서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이런 이유 때문에 소설을 멀리했던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400년 동안 문학사에서 일어났던 일이 내 개인의 서재에도 일어났다는 것이니까. 인문학 독서 모임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비소설만 읽고 있었을지 모른다.

KakaoTalk_20260206_144535018.jpg 17~18세기에는 소설이 시간만 낭비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소설이 처음 유행하던 시기에 단점이라고 비판되었던 요소들이 지금은 장점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나의 충실한 친구는 소설 읽기의 유익을 5가지로 요약해주고 있는데 첫째, 타인의 삶을 안에서부터 살아보게 해 준다. 소설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체험이기 때문이다. 둘째, 소설은 감정을 행동과 언어로 번역해주기 때문에 독자가 더 많은 감정을 인식하게 해준다. 감정을 알아야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자질이다. 셋째, 소설에는 명확한 결론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정답 없는 문제를 견디는 힘을 갖게 해준다. 넷째, 내 인생 말고 다른 버전의 나를 상상할 수 있게 하여 내 인생을 다르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다섯째, 소설은 진행이 느리기 때문에 뇌의 리듬이 바뀌고 숙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이처럼 소설⸺좋은 소설⸺은 타인을 이해하게 해주며,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게 해주고, 모호함을 견디게 해주며, 다른 방식의 삶을 꿈꾸게 해주고, 숙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한 마디로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소양과 능력을 소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은 설교하지 않고 설득하는 방식으로 이런 일을 해낸다.


6년 전 인문학 독서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소설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따져보니 모임에서 읽은 소설만 장‧단편을 합하여 50편이 넘는다. 갑자기 나는 소설을 안 읽던 내가 소설을 읽게 된 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변화의 단초를 찾을 수 있는 곳은 나의 독후감들이었다. 나의 소박한 독후감들 속에 소설을 읽는 나만의 방식이 드러나 있는지, 그리고 소설을 통해 내가 얻은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내 독후감 속에 소설을 읽는 나만의 방식이 드러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는⸺함께 읽을 도서는 운영자인 내가 최종적으로 결정했다⸺소설의 소재와 주제는 대체로 일관성이 있었으므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스무 편의 소설과 두 편의 에세이(둘 중 하나는 나 자신에게 소설의 쓸모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해주어서, 나머지 하나는 짝지어진 영화와 긴밀히 연관된 것이어서 이 책에 포함시켰다), 두 편의 영화,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 쓴 후기를 모아보았더니 대략 다섯 개의 주제가 드러났다. 나를 구원하는 이야기, 나를 강하게 하는 이야기, 역사적 관점을 갖게 해주는 이야기,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해주는 이야기, 외면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작가가 의도했던 주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독자인 내가 찾아낸 주제인 건 확실하다.

내가 선정한 작품들에서 또 다른 공통점도 찾을 수 있었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는데도 총 20편의 소설 중 어린이나 청소년의 시점으로 쓰인 이야기들이 10편이나 있었다. 내가 성인의 시점보다 미성년자의 시점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 밝혀진 셈인데, 아마도 그 이유는 아이들의 사고가 유연하고 열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판단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말한다. 나는 자기확신에 차서 말하는 서술자에게 은근히 반감을 느끼나 보다. 화자가 곧 작가는 아닌데도 말이다.


내가 찾은 주제별로 작품을 간략히 소개해보자. ‘나를 구원하는 이야기’는 모두 쌍방구원의 서사들이다.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은 세 명의 동급생이 익명의 공간에서 비밀을 나누면서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주는 이야기이고, 『유원』은 명백한 피해자이면서도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속죄행위를 하는 이야기다.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이 상처와 분노 투성이인 친구를 통해 우정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배우게 된다. 영화 <소울 메이트>는 사소한 오해로 멀어진 두 친구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친구가 죽은 후 그의 삶을 대신 살고 그의 꿈을 대신 이룬다.

‘나를 강하게 하는 이야기’는 앤 셜리와 유길채, 헬렌 니어링이 어떻게 운명의 밧줄을 끊고 자유로운 여성으로 우뚝 섰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시원한 발언으로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변인이 되어준다.

‘내가 살지 않았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적 관점을 갖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불과 100년 전, 50년 전에 이 땅 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오늘 우리의 삶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 되면 그분들에 대한 연민과 감사가 우러나오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책무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야기다. 백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유색인종으로 살아가는 삶, 건강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나병환자로 살아가는 삶, 이성애자가 주류인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삶, 부모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비정상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춥고 외로운지 깨닫게 된다.

‘외면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연히/어쩌면 의도적으로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읽고 쓴 독후감들이다. 나는 읽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대하며, 독자보다 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쳤을 작가에게 경의를 표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끊어진 손가락을 잇는 고통’이라는 은유를 통해 폭력으로 찢어진 민족이 하나 됨을 회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묘사하는 이야기고, 『희랍어 시간』은 자기 속의 악에 저항하기 위해 함구증을 선택한 여자가 자신을 연민하는 남자를 만난 후 말을 되찾는 이야기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는 폭력의 생태계를 벗어나고자 또는 그것을 지키고자 안간힘 쓰는 자들이 결국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이야기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이야기들을 읽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직은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대의 독자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라면 분명 거기에는 사람들의 공통관심사나 시대정신이 들어있을 것이다. 시대와 인간을 감각하는 촉수가 예민한 사람들⸺뛰어난 작가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적어도 타인을 공감하는 능력이 조금은 커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KakaoTalk_20260206_150031791.jpg 타인을 공감하는 능력이 조금은 커지리라
시는 강물이며, 수많은 목소리가 그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물결의 신명 나는 일렁임을 타고 움직인다. 어떤 시도 영원하지 않다. 모든 시는 역사적 맥락 속에 도착하고, 종내는 거의 다 사라진다. 하지만 시를 쓰고자 하는 갈망, 그리고 기꺼이 시를 받아들이는 세상, 이 두 가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메리 올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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