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또는 지배

자기기만에 빠진 나의 어머니

by 이소라

레스 패롯의 <지배광>을 읽으며 엄마를 떠올렸다. 지배광(the control freak)이란 ‘어떤 일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자기 방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람’이다. 나에게도 지배광적인 요소가 있지만 나의 엄마만큼 이 개념에 들어맞는 사람도 드물다.

나의 엄마는 우리 가족을 지배하고 우리의 영혼을 짓눌렀다. 집에서는 엄마가 신이었다. 그녀가 시키는 일은 모두 ‘우리’를 위한 일이었으므로 엄마의 지시에 대해 어떠한 질문도, 반항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녀는 외부의 위협에 대해서는 우리를 보호하려 했으나 집안에서는 전제적이었고 지나치게 엄격했다. 그는 자주 우리들을 비하하고 우리의 감정을 무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가족을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사랑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어머니의 사랑은 아이의 생명과 욕구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엄마는 그렇지 못했다. 엄마는 ‘애정은 있으나(또는 애정을 빙자하여) 지나치게 간섭하는 어머니’였다. 이런 어머니와 ‘약하고 냉담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은 어릴 때 어머니에의 애착에 집착하여 어머니에게 의존하고 무기력하다’라고 했는데 나는 내 동생에게서 이러한 의존적인 소년의 전형을 본다.


아버지를 보러 일시 귀국한 동생은 미국에서 다시 일자리 잡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시골 병원이라서 사택이 제공되기 때문에 주거비가 들지 않는다고 좋아하던 엄마는 동생에게 사택에 이불 등을 갖다 놓고 필요한 물건과 가구를 사주러 가야 한다며 내 차를 동생에게 빌려주라고 했다. 보험계약서에 운전자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동생이 차를 운전하는 것은 불가하건만 엄마는 자신의 소망을 달성하는 것이 우선인 사람이라 일단 말을 꺼내고 본다. 그전 같았으면 나는 거절을 하면서도 무척 마음이 불편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런 부탁을 하는 사람이 잘못이니까.

동생은 짐이 많으니 차를 하루 렌트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기가 막혔다. 버스로 가서 택시를 타면 된다며 내가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아직 고용계약서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돈 쓸 생각만 하고 있는 동생과 육십이 다 된 아들이 할 일을 대신해주려는 엄마의 콜라보가 환상적이었다.


어릴 때도 나는 엄마를 사랑하기 어려웠다. 엄마에게 느끼는 일차적인 감정은 두려움이었고 그다음은 미움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이란 마땅히 부모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믿었고 당연히 나와 동생들이 그럴 거라고 믿었다. 우리 형제들은 늘 양가감정을 가지고 살았다. 겉으로는 착한 아이들이었지만 속으로는 엄마와 아빠에 대한 반감이 점점 자라 갔다.

아픈 아빠를 돌보는 지금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한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 그녀는 자신이 남편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 사랑은 자기애에 불과하다. 아빠와 함께 있고자 하는 것은 돌볼 대상을 필요로 하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이다. 무기력한 아빠는 엄마 자신을 힘 있는 존재로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빠를 이용하고 아빠를 학대하고 있을 뿐이다.


지배광은 다른 사람에게 일을 위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 행동만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기 방식대로 하라고 강요한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병원과 간병인을 불신한다. 늘 아빠 입을 빌어 병원과 간병인을 비난하지만 거기에는 자신이 가장 유능하고 사랑 많은 보호자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은 뿌리 깊은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에릭 프롬은 모성애도 자기애적 욕구와 지배욕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자기애적 어머니가 무력한 아이를 돌보는 것은 지배욕과 소유욕을 충족시키므로 오히려 쉬운 반면, 아이가 유능해져서 자기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나의 엄마는 아들과 남편이 자기를 끝까지 의존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 자기가 위대한 여인인 것이 증명될 테니까 말이다. 겉으로는 사랑이 넘치는 아내요 어머니지만 그 속에는 지배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슬픈 것은 엄마가 자기 자신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다. 엄마의 지배적 태도가 나와 동생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하지 못했다. 겨우 몇 마디 시작했는데 자신을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엄마는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말이가? 부모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라는 말로 내 입을 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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