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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27. 2019

책과 나

도서관에 가는 이유

  내가 도서관에 가는 이유는 정해져 있다. 첫째는 반납 기일이 된 책을 돌려주기 위해서이다. 반납을 하는 것은 내가 그 책을 빌렸기 때문인데, 나는 처벌을 회피하도록 조건화되어 있어서 반납기일이 되었다는 문자를 받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난다.   


  이처럼 정해진 날짜 안에 책을 반납하도록 하는 도서관의 대여 서비스는 이용자가 도서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이 시스템은 도서관을 방문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에 정체될 수도 있는 삶에 리듬을 제공한다. 책을 빌린다. 책을 읽는다. 앉아서 읽는다. 누워서 읽는다. 걸어가며 읽는다. 책을 반납하러 간다. 다시 새 책들을 빌려온다. 2주 후에도 완독 하지 못했을 때는 전화로 연장 신청을 한다. 대출 제한 권수가 찼는데 다른 책을 또 빌리고 싶을 때는 빌린 책 중에서 가장 흥미 없는 녀석을 퇴출시킨다.             


  도서관에 가는 두 번째 이유는 읽고 싶은 책이 생겼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읽고 싶은 책이 생기는 경로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이다. 읽고 있던 책에서 다른 책을 소개받는 경우도 많고 강의나 설교를 통해 소개받기도 한다. 일단 그 책이 도서관에 있는지 알아보고 없으면 인터넷 서점을 검색한다. 인터넷 서점의 책은 목차부터 시작하여 주요 내용과 독자들의 서평까지 실려 있어서 책을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한 데이터를 통해 내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판단되면 보통은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세 번째 이유는 푹푹 찌는 여름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책을 읽는 것 만한 피서는 없다. 그러나 천정형 에어컨 바로 아래서 오랜 시간 책을 읽는 것은 피해야 한다. 작년에는 시원하게 여름을 보낸 것 까지는 좋았는데 목 디스크에 걸려 고생을 많이 했다. 치료받느라 돈과 시간을 엄청나게 소모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도서관에 가는 네 번째 이유가 생겼다. 주의를 빼앗아 가는 집안의 잡다한 일거리와 소음을 피해 조용히 글을 쓰러 가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도서관은 대단지 아파트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있어서 사시사철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을 접할 수 있다.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면 새소리가 들려온다. 새소리를 더 잘 들으려고 걸음을 늦춘다. 아주 잠깐의 여유가 흐른다.

 

  오늘은 남편이 트레킹을 떠나서 저녁밥을 신경 쓰지 않고 책 읽고 글을 쓴다. 아이가 돌아올 시간에만 맞춰 가면 된다. 루틴한 일과 일 사이에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는 도서관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공공도서관이 생긴 것은 백 년이 조금 넘었고 해방 직후 도서관의 수는 불과 16개였다고 한다. 도서관이 없던 시절 개인 서재를 가질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여유가 있었던 사람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의 서재를 개방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고 한다. 유명 작가들 중에는 그런 분들의 서재에서 책을 읽고 문학가의 꿈, 학자의 꿈을 키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나에게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 준다.

 

  소장한 책에 대한 애착과 욕심이 큰 나로서는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소중한 장서를 빌려준 그들의 행위가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책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그 시절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준 그들은 책이나 지식이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져야 하는 공공재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분들을 일러 선각자라 하는 것일 터이다.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나도 소소하게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내 것을 먼저 챙겨놓고 크게 손해가 없는 한도 내에서 지식을 나누는 얄팍한 봉사를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렸을 때 길 건너에 있는 친구네 집은 벽면을 돌아가며 책이 가득했다. 책을 보러 그 집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어느 날은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내가 방 한쪽 구석에 쳐 박혀 소리 없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 모두들 내가 이미 집에 갔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친구 어머니는 큰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놓고 아이들 옷을 벗겨 씻기기 시작했다. 물 붓는 소리에 눈을 비비며 나오던 내 눈에 친구의 발가벗은 모습이 들어왔다. 그 친구는 남자아이였다. 나는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그 친구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학교에 갔었다.

 

  나는 그때부터 이다음에 크면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가게에 있는 책을 모두 읽고 그 책을 팔면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도시마다 한 개 이상의 공공도서관이 있고 도서관마다 책이 가득 찬 이런 세상에 사는 것이 정말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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