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파상 하면 흔히 단편 <목걸이>와 <비계덩어리>, 장편 <여자의 일생>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여고시절 우연히 아버지의 서가에서 발견한 녹색 하드커버 장정의 두터운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에는 <여자의 일생>과 <벨아미>가 함께 있었다. <여자의 일생>은 추천도서이기에 읽었다. 그러나 잔느가 남편 쥘리앙과 결혼하고 바람기가 시작된 순간부터 이 책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흔한 우리네 통속 드라마 <아씨>와 비슷한 설정이었지만, 더 답답한 것은 드라마의 주인공과 달리 단단하게 홀로서지도 못한 잔느의 모습과 끊임없는 불행에 화가 나서 분노의 독후감을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다소 지루한 마지막 장을 넘긴 뒤 다시 이어진 책의 제목이 바로 <벨아미>였다.
여고 시절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로 배웠고, 파리 사교계에 대한 환상이 있던 터라 '벨 아미(Bel ami, 아름다운 남자)'라는 제목도 파리 사교계의 불륜과 비틀린 욕망을 다룬 내용 전개도 흥미로웠다. 19세기 말의 화려한 도시 파리, 예술가들에게는 '벨 에포크'라 불리는 번영을 구가했던 파리에 나타난 농촌 출신의 가난하지만 야망 가득한 미남 청년 조르주 뒤루아. 하급 공무원으로 취직해서 근근이 살아가던 그는 우연히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복무했던 전우 포레스티에를 만나면서 파리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여자들을 유혹하는 조르주 뒤루와. 그에게 여성은 자신의 사회적 야망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충격적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출세를 향해 다가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이러한 행동에 대한 일체의 주관적 판단이나 개입을 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모파상의 세밀한 서술방식은, “가장 순수한 자연주의 소설가”라는 그의 명성을 입증해 준다.
당시 파리의 타락해 가는 정치, 사회, 문화를 해부하듯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벨아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 나가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 준 모파상은 선과 악의 경계가 허물어진 추한 인간 사회의 모습을 냉정하게 묘사함으로써 욕망으로 가득 찬 인생의 참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벨아미>를 처음 읽기 시작한 이후,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끔씩 다시 읽게 되었다. 나이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 충격과 놀라움이었다면, 20,30대에 들어와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그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탐구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여름 휴가지에서 이른 새벽에 잠이 깨어 빈둥거리다가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들어와 매일 아침 한 시간씩 3일에 걸쳐 이 책을 다시 완독했다. 2,30대에는 미처 이해할 수 없었던 주인공 주변 여인들의 마음과 행동이 이젠 유리알처럼 환히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지 마라'는 주의와 경고를 주면서 교훈을 얘기하면 아무도 그것에 주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수술하듯이 전개되는 모파상의 담담하지만 예리한 묘사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충격과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폭주할 수 있는 것인가? 욕망의 끝은, 악행의 끝은 없는 것일까? 마지막까지 파멸에 이르지 않고 오히려 바라는 모든 것을 얻어내는 조르주 뒤루아의 모습은 오히려 소설보다 현실적이다. 시대를 초월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그래서 <벨아미>는 클래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