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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리나 Jul 31. 2018

사유하는 건축가 승효상을 만나다

문화예술인열전 1

그 길에 서면, 나는 그들의 삶이 만드는 일상의 예기치 못한 풍경에
새롭게 감동받는다.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삶에 의해 완성된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중에서


건축가 승효상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이다. 1952년생, 그의 건축 인생은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한 뒤 1975년 한국 건축계의 거장인 김수근 문하로 건축계에 입문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15년간 공간건축에서 일했으며, 1989년 독립한 이후로는 ‘이로재履露齋, 이슬을 밟는 집’이란 뜻을 지닌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덧 45년의 세월을 바라보고 있는 승효상의 건축인생에는 주목할 만한 굵직한 건축물들이 많다. 공간건축 시기에 수석 디자이너를 맡아 지었던 국립청주박물관과 마산 양덕성당, 서울 경동교회 등은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건축물로 이름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들은 이로재 사무소를 열어 독립한 후에 지은 수졸당과 수백당, 웰콤시티 사옥, 쇳대박물관, 대전대 혜화문화관, 부산 구덕교회, 전통불교문화원 등이다. 그중에서도 유홍준 장관의 집인 수졸당은 건축가 지망생들이 전설로 꼽는 건물이며, 여러 개의 마당이 독특한 공간체계를 이루는 수백당, 공간을 비워 숨쉴 수 있는 도시를 표현한 웰콤 시티, ‘비움’을 중시하는 불교의 색깔을 그대로 녹여 낸 전통불교문화원 등이 역작으로 손꼽힌다.        

파주출판도시의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던 승효상은 건축계에 세운 큰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건축가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로 뽑혔다이어서 2009년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설계했으며,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총 지휘하는 등 한국 건축계에서 그야말로 중추 역할을 해오고 있다승효상의 명성과 활약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중국에 진출해 베이징 첸먼 지역을 재개발하는 설계프로젝트를 따냈고만리장성 팔달령 인근에 들어선 부티크 호텔 코뮨 바이 더 그레이트 월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12명의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초청받아 클럽하우스를 설계하기도 했다.  


승효상은 독특한 건축철학으로도 유명하다. 1992년 30~40대의 실력파 건축가들 몇몇이‘43그룹을 결성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전시회를 했는데그때 그가 내세운 철학이 바로 빈자(貧者미학이었다이 말은 가짐보다는 쓰임이 중요하고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채움보다는 비움이 더 중요하다는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즉 절제의 미학을 말한다이후로 이 말은 그의 건축의 지표가 되었으며많은 젊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그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공간을 창조하며보기 좋은 건축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인간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Man exists through dwelling, 
거주는 건축함으로 장소에 새겨진다. which is inscribed in place through building.
........
시적으로, 인간은 거주한다. Poetically, man dwells
- 하이데거의 『집 짓기, 거주하기, 생각하기』 중에서


하이데거가 인간의 존재를 규정한 위의 말은 승효상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승효상에게는 사유하는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이로재 사무실 서가에 있는 장서는 무려 8천여 권에 달한다물론 건축 관련 서적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사상과 철학에 관한 인문과학 서적들과 예술 서적들이 즐비하다그는 건축을 시작하면서부터 예술과 인문과학에 대한 관심이 각별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건축설계라는 일이 남의 삶을 조직해 주는 것인 만큼건축가가 좋은 집을 설계하고 짓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집에 사는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가져야 하며이는 우리의 삶에 대한 지극한 관심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그래서 바른 건축 공부란 우리 삶의 형식에 대한 공부일 수밖에 없다남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문학과 영화 등을 보고 익혀야 하며과거에 어떻게 산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들추지 않을 수 없고나아가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를 알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하므로건축을 굳이 어떤 장르에 집어넣으려 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승효상은 건축을 공부하려는 학생들과 젊은 건축가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건축가는 다른 사람의 집을 지어야 하므로 세계를 객관화시켜 볼 줄 알아야 합니다자기를 타자화(他者化할 줄 알아야 하며 경계 밖에 있어야 합니다내가 스티브 잡스의 말을 변형해 쓰는 말이 있습니다. 'Stay out, stay alone!' 경계 밖에 머물고 혼자가 되라는 뜻입니다책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건축은 예술이나 기술이 아니라 인문학입니다닥치는 대로 책을 남독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건축가는 예술가나 기술자가 아니라 지식인이며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유하는 건축가 승효상그는 오늘도 삶이 이루는 실체적 풍경을 만나기 위해단단히 현실의 땅을 디디고 현장에서 건축의 실체와 만나기 위해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이 땅에 새겨진 수많은 건축물들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건축여행을 떠나고 그 관찰과 사유의 기록을 멋진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승효상(1952~ )
빈자의 미학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건축가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빈 공과대학에서 공부했다. 15년간 김수근 문하에서 일했고, 1989년 설립한 이로재의 대표이며, 4·3그룹에 참여하였다파주출판도시의 코디네이터로 새로운 도시 건설을 지휘한 그에게 미국 건축가협회는 2002년 명예 펠로우의 자격을 부여했다같은 해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건축가 승효상전을 가졌으며,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대표 저서>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2012),노무현의 무덤(2010), 북위 50도 예술 여행(2010), 지문(2009), 건축사유의 기호(2004), 빈자의 미학(1995) 등이 있다.
<대표 건축물> 수졸당(1993), 수백당(1998), 웰콤시티(2000),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2003), 노무현 대통령 묘역의 전체 공간디자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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