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

이 도시와 친해지기

by 소라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게 된 건 일출을 날마다 보면서부터였다.

50층 콘도의 첫날 아침. 발코니에 나가 요가로 우아하게 하루를 시작하려던 계획은 처참히 무너졌다. 탁 트인 위치라 전망은 좋았지만 호수 바람이 매서웠다. 발코니에 내놨던 슬리퍼들이 풍선처럼 날아다녔다. 우산은 흉기가 돼서 제멋대로 허공을 찔렀다. 나를 두고 가버린 카디건을 잡으러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골목을 헤맸다. 급기야 콘도 측에서 몇 파운드 미만의 물건은 발코니에 두지 말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비록 요가는 망했지만 대신 아침마다 해의 위치를 지켜보며 하루를 열었다. 해가 부채꼴 모양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며 펴졌다가 다시 오므라들었다. 12월에는 바로 눈앞에서 뜨던 해가 4월이면 저만치 달아나서 시야에 잡히지도 않았다. 태양은 색을 몰고 왔다. 타는 듯한 빨강부터 파스텔톤 핑크, 희미한 노랑까지. 일출과 일몰이 닮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발 아래로는 호수부터 토론토 대학교까지 도심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호수 위를 나는 비행기를 멍하니 눈으로 쫓기도 했다. 굳이 50층까지 날아와서 퍽 하고 유리벽에 부딪힌 새도 있었고, 근면성실한 모기도 가끔 보였다.

도시의 불빛이 밤새 창을 파고들었다. 블라인드를 쳐도 소용이 없어 한동안 애를 먹었다. CN 타워의 불빛을 매일 밤 바라보며 잠드는 건 그래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냥 휑하고 멋없는 타워가 늘 똑같은 색을 띤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블루제이스 경기가 있는 날에는 파란색, 캐나다 데이에는 빨간색 식으로 매번 색과 형태를 달리했다. 벼락이 하늘과 호수를 쩍 가르는 장면을 손가락 사이로 호러영화 보듯 숨죽이며 훔쳐보기도 했다.

날씨 가늠이 안 된다는 건 예상 밖이었다. 하늘과 가까울수록 더 잘 보일 줄 알았는데 50층에서 내다보면 맑은 하늘이 1층에선 비바람이었다. 다행히 길 하나만 건너면 회사라 몇 걸음 뛰면 닿는 거리였다. 일하고 먹고 자는 게 모두 반경 몇 킬로 안에서 이뤄졌다. 점심 먹으러 집에 갔다가 설거지 끝내고 누워서 쉬다 다시 회사로 갔다. 다운타운에 살고서야 이 도시와 제대로 친해진 기분이었다.

캠핑에서나 볼법한 풍경이 눈앞에서 늘상 벌어졌다. 작정하고 떠나지 않고 무심히 창만 봐도. 아이러니했다. 내가 자연과 가장 밀접했던 순간이 토론토에서 제일 번잡한 빌딩숲 한복판이라는 게.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 와 몇 주를 같이 지냈다. 방이 하나라 그 친구는 소파에서 잤다. 처음엔 그녀도 꿈에 부풀었다. 전망 좋은 발코니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일출을 보려는. 그러다 칼바람을 맞고 기겁을 하고는 금방 도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왜 확장공사를 안 하냐고 물었다. 캐나다는 발코니 확장공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완전히 금지다.

여긴 건물이 정한 날짜에 냉난방이 켜지고 꺼진다. 냉방에서 난방으로 전환하는 며칠간은 온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었다. 마침 친구가 온 시기가 난방이 들어오기 직전인 10월이라 오들오들 떨다 갔다.

헬스장과 사우나는 마음에 들어 했다. 콘도란 그런 부대시설이 딸린 아파트를 뜻한다. 작은 극장이나 파티룸, 개인 독서실까지 갖춰진 데도 있다. 사실 처음에는 자주 이용하다가 몇 번 가면 시들해진다.

캐나다가 첫 방문이었던 친구는 이 나라 환경을 걱정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국처럼 철저히 안 한다고. 여기는 각 층마다 쓰레기를 버리는 작은 공간이 있다. 벽에 있는 뚜껑문을 열고 집어넣으면 긴 통로를 따라 쓰레기장까지 떨어지는 구조다. Organics나 Garbage 버튼을 누르고 넣으면 된다.

흡연자였던 그녀는 담배 한 대를 위해 50층에서 1층까지 궁시렁거리며 내려갔다. 이 도시에서 제일 바쁜 거리였는데도 지상에는 작은 공원이 마련되어 있었다.

토론토는 콘도를 지을 때 주변에 어울리는 무언가를 함께 짓는다. 공간이 넉넉하면 공원이나 놀이터, 협소하면 소공원이나 스케이트 링크. 그도 안되면 조각이나 설치 예술을 거리에 세운다. 처음엔 개발사의 선심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토론토시가 요구하는 조건이었다. 새 건물을 지으려면 무언가를 동네에 돌려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그 공간은 입주민 것이 아니라 동네 것이라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같이 산책을 나가면 이곳은 아파트들도 모두 개인주의라며 친구가 웃었다. 각기 다른 개발사가 빌딩 한두 채씩만 짓는 구조여서 디자인도 높이도 제각각이다. 낙서 자국 선명한 낡은 건물 옆에 유리로 된 신축 빌딩이 붙어 있는 조합이 신기했나 보다. 나는 일률적으로 늘어선 한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낯설던데.

친구와 누워있으면 한국 우리 집 생각이 났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그녀는 거기서도 자주 자고 갔다. 버스 터미널 앞 상가주택이었다. 우리 가족이 아파트 생활을 한 건 캐나다가 처음이었다.

부모님은 전세 제도가 없는 나라라고 의아해하셨다. 렌트비는 일 년치를 개인수표로 끊어서 한꺼번에 낸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토론토는 목돈이 아무리 많아도 고정된 월급이 없으면 집을 구하기 어렵다. 신용 점수, 재직 증명서, 추천서까지 요구한다.

사람들은 콘도를 my home이라고 잘 하지 않는다. 소유했든 렌트했든, 대개 my place나 my condo라 부른다. 홈이라는 말에는 뭔가 더 단단한 게 담겨 있다. 쉽게 옮겨지지 않는 것. 뒤돌아봐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 내가 아무리 살아도 캐나다를 홈의 자리에 내어줄 수 있을까 망설이는 것처럼.




Parkette
Park보다 작은 소규모 공원. 자투리 땅이나 도로 모퉁이를 활용한 작은 녹지 공간.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