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엉성한 경계들

by 소라비

본 적도, 만진 적도 없는 어떤 생명체와 함께 살고 있다.

파드득, 슈르릉. 정체 모를 소리가 십 개월째 들린다. 벽난로 안에서다. 다람쥐 아니면 새, 어쩌면 둘 다인지 모른다. 굴뚝을 타고 들어왔을 거라는 추측만 한다. 문을 열고 확인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처음엔 무서웠다. 이제는 익숙해졌고 어느새 정도 들었다. 자기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던데 기척이 없으면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닌가 걱정된다. 역대급 추위였지만 다칠까 봐 겨울 내내 벽난로 한 번 못 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펫 하나를 얻은 셈이다. 그럴 수 있다. 모르는 것에 온통 마음을 내어주기도 하는 나니까.

문 하나로 세상과 금을 긋는 콘도와 달리 주택은 모든 게 애매하게 얽힌다. 동물이 방문하고, 마당으로 이웃의 하루가 들려오고, 계절이 창문을 비집고 스며든다. 경계가 엉성하다. 그래서 너그러워진다.

왼쪽 옆집은 시끄럽다. 생활소음이 아니라 순전히 동물들 때문이다. 다섯 마리 정도 되는 덩치 큰 개들이 늘상 짖어댄다. 그 집 덕분에 새들을 자주 만난다. 커다란 새 모이통 여러 개를 세워두어서 온갖 새가 쉴 새 없이 오간다. 새들은 보통 옆집에서 잔뜩 먹고는 우리 집 울타리에 나란히 앉아 한참 수다를 떨다 간다. 명랑하게 지저귀는 소리를 듣다 보면 개들의 소란이 용서가 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즈음이면 오른쪽 옆집의 라일락 향기가 담을 넘는다. 동화 같은 정원이 훤히 내다보여 나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꽃구경을 한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그 집은 레노베이션이 한창이다. 가끔 빔으로 야간 극장을 만들어 마당에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 어른이 안 계신 날에는 십대 아이들끼리 밤새 파티를 연다.

옆집만이 아니다. 봄이 오면 온 동네가 분주해진다. 겨울 내내 닫혀있던 거라지 문들이 열리고 공구 소리와 페인트 냄새가 퍼진다. 이 나라의 국민 취미는 레노베이션이 틀림없다. 인건비가 비싸서 다들 유튜브를 보며 직접 고친다. 타일 하나로 시작해 어느새 주방을 뜯고, 다음은 화장실로 넘어가는 식이다. 슬그머니 Home Depot와 Canadian Tire가 절친이 된다.

주택가는 계절에 민감하다. 봄 주말엔 드라이브웨이에 거라지 세일이 펼쳐진다. 누군가의 거라지에서 나온 물건이 다른 사람의 거라지로 들어간다. 여름엔 바베큐 냄새, 가을엔 낙엽 태우는 냄새, 겨울엔 눈 묻은 부츠와 한기가 가시지 않은 코트가 현관까지 따라 들어온다.

그러다 앞마당에 사인이 꽂힌다. For Sale. 리얼터의 얼굴,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다. 매물은 MLS(Multi Listing Service)라는 시스템에 올라온다. 가격, 사진, 건축 연도, 지난 거래 이력, 주변 정보까지 누구나 볼 수 있다. 허위매물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캐나다 부동산 거래의 기본 원칙은 매도자와 매수자의 선명한 분리다. 리얼터도 변호사도 각자 자기 고객만을 대변한다. 협상은 두 중개인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변호사 선임은 절차상 필수다. 자금과 서류는 양측 변호사 사이에서 직접 오간다. 은행에서 몰기지를 얻을 때도 돈은 변호사의 계좌로 들어간다. 느리지만 투명하다.

전세 제도가 없어서인지 집을 부의 수단으로만 보는 분위기가 덜하다. 콘도는 투자 목적으로 사고 팔기도 하지만, 주택은 대부분 실거주의 영역이다. 나는 부동산을 대화의 주제로 올리는 사람을 주변에서 만나보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어디를 고쳤다거나 다음 프로젝트는 뭐라는 정도다. 집에 공을 들이는 건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다. 정서가 담기는 그릇을 빚으려고.

여기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집과 관련된 추억이 꼭 나온다. 개와 새가 많은 옆집만 해도 어릴 때 살던 집을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사서 다시 들어왔단다. 낡고 허름한 주택보다 신축을 사는 게 금전적으로 이득일 텐데도.

한국을 생각하면 당당한 광화문 광장이나 정갈한 한식이 떠오르는 게 아니다. 살던 집이 제일 생각난다. 시장 앞이라 엄마가 들고 오시던 검은 봉다리 속 순대는 식을 틈이 없었다. 순대 왔다, 그 한마디에 저마다의 방에서 뛰쳐나와 한데 모이던. 내게 집은 나라 전체이기도 하다.




Detached / Semi-detached / Townhouse
단독주택 / 한쪽 벽을 이웃집과 맞댄 주택 / 여러 세대가 옆으로 붙어 선 주택

Open house
집을 내놓을 때 날짜를 정해 개방하는 방식. 예약 없이 누구든 둘러볼 수 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