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한국 너머의 한국

by 소라비

내 한글 재데뷔 무대는 유튜브 댓글창이었다.
한글을 잊고 살았던 내게 그곳은 신세계이자 놀이터였다.


한국어와 나 사이에는 긴 공백이 있었다. 듣고 읽기만 했지 말하고 쓸 일이 많지 않았다. 가끔 한인마켓에서 "스크류바 세일 사인 붙어있던데 이거 적용 안 됐어요"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인디 노래 한 곡을 우연히 들었다.


우리말이 이렇게 예뻤나. 가사에 꽂혔다. 곡 해석을 뒤졌다. 댓글 몇 줄, 번역 한 곡, 짧은 감상문. 그렇게 몇 년을 썼더니 글이 익숙해졌다. 중학교 때 우리 반 인기 작가였다고 필명도 일찌감치 정했던 나였다.


작년 스트레이 키즈 공연.


토론토가 기다리던 대형 콘서트장, 그 첫 무대에 스키즈가 섰다. 야외 스태디엄에 5만여 명이 꽉 찼다. 한인 인구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숫자다. K-pop 공연장에서는 한국인이 철저히 소수자가 된다.


내 바로 앞에 앉은 캐나다인 가족. 부모와 아이 셋, 다섯 명이 전부 커스텀 의상을 입고 스키즈 타투까지 하고 왔다. 막내는 다섯 살도 안 된 것 같았다. 그 꼬마가 음악에 맞춰 폴짝폴짝 뛰는 걸 보니 이 아이는 자라서 나 같은 덕후가 되겠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공연이 시작되자 5만 명이 우리말로 노래를 불렀다. 다들 얼마나 많이 듣고 따라 했는지 발음도 귀여웠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한국어 그대로 함께 노래하는 모습. 나는 왜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코끝이 찡해오는지 모르겠다. 세븐틴, 에이티즈, 방탄... 매번 그랬다.


장장 네 시간의 공연이 끝난 일요일 밤 열한 시. 스태디엄 밖은 어린 자녀를 데리러 나온 부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여섯 시간 운전해야 하는 퀘벡 번호판도, 더 멀리 미국 번호판도 보였다. 긴 귀갓길, 그 아이들이 전할 열기가 그려졌다.


한국 가수가 부르는 팝이 아니라, 한국의 팝을 원해서 모인 사람들. 그 5만 명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한국과 가장 가까운 얼굴들이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기꺼운 선택이었다.


글로벌 아이돌 그룹만의 얘기가 아니다. 인디 가수의 공연에도 외국인들이 많다. 작은 소극장까지 어떻게 알고 왔을까 궁금해서 가끔 묻는다.


새소년 스탠딩 공연에서 세 시간 내내 방방 뛰며 나를 치던 바로 옆 관객은 스포티파이에서 소식을 얻었단다. OST로 카더가든을 알게 되었다는 팬과는 그 드라마 얘기를 한참 나눴다.


토론토에서 티켓 사는 건 간단하다. Ticketmaster 앱 열고 신용카드 정보 입력하면 끝. 미국이나 유럽에서 콘서트를 볼 때도 다 비슷한 방식이었다. 딱 한 나라만 빼고.


K-pop의 본고장에서 정작 나는 티켓 한 장 사지 못했다. 한국 핸드폰 번호, 한국 계좌, 한국 카드. 셋 다 없었다. 토론토 공연장에서 우리말로 떼창 하던 그 순간, 한국은 바로 곁에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나라 안에서 나는 거기에 닿을 수 없었다.


스포티파이는 알림을 보내고, 넷플릭스는 OST를 퍼뜨린다. K-pop은 한국 밖에서 더 가까웠다.


덕질이 세상을 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그날 모인 5만 개의 하루들은 구해졌다. 우리말과 글로 나를 다시 데려다주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