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는, 여기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환해진다.
Canadian Opera Company.
밝은 원목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탁 트인 구조다. 유리벽 너머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고층 건물들. 그제야 시내 한복판이란 걸 실감한다.
내부는 따뜻한 빛깔의 좌석들이 무대를 향해 부채꼴로 펼쳐진다. 정 중앙, 1층 바닥과 같은 높이에 오케스트라가 있다. 연주자들이 객석과 눈높이를 맞춘다. 공연은 언제나 훌륭하다. 게다가 할인이 적용되면 영화 한 편 값이다.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 캐나다 국가를 연주한다.
50인조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선율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매번 듣기만 했다. 우리나라 애국가도 아닌데 오 캐나다를 부른다는 게 배신처럼 느껴졌다. 굳이? 입 벙긋도 안 했다. 그러다 가끔 한두 마디씩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는 깜짝 놀랐다. 바이브레이션까지 써가며 목청껏 부르는 나를 발견해서.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나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조용한 이곳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오 캐나다를 외쳤다. 근엄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한껏 꾸민 복장을 하고. 마지막 소절을 마치고는 몇 분 동안 박수까지 쳤다.
미국의 새 정권이 들어선 뒤, 지난 1년간의 변화다.
“저 다리만 건너면 정말 미국이 맞다고?”
친구들이 묻는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갔는데, 신기한 건 폭포가 아니라 국경인가 보다. 한쪽은 캐나다, 다른 한쪽은 미국.
국경을 건너려면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부스에 검사관이 앉아 여권을 확인한다. 공항만큼은 아니지만 꽤 까다롭다. 반입 금지 품목도 다양하다. 육류는 안 되고, 생선은 허용된다.
한 번은 라면이 걸렸다. 검사관이 성분표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고기 들어갔네요?"
"분말이에요. 진짜 고기 아니에요."
"안 됩니다."
결국 라면 두 봉지를 압수당했다.
땅이 붙어 있어 가까워 보이지만, 멀다면 또 한없이 멀다.
북미라고 한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세 나라를 묶어 부르지만 무게는 다르다.
기업들이 "북미 시장 진출"을 말할 때도 실제 목표는 미국이다. K-pop 아티스트의 "북미 투어"를 봐도 뉴욕 LA 시카고가 나열되고 마지막쯤에 토론토가 끼었다. 있으면 다행이다.
나도 내가 어디 사는지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자주 퉁쳤다. 북미 살아요. 틀리지 않는 말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이 미국으로만 해석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동네 은행 ATM 앞. 커다란 "US Dollars" 표시가 있다. 이 나라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캐나다 달러뿐이다. 그런데 기계에서 환율 처리를 거쳐 미국 현금을 손쉽게 쥘 수 있다. 경제적으로 이미 얽혀 있다. 아니, 얽혀 있다기보다 한쪽이 다른 쪽을 감싸고 있다.
사람도 이동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이중 국적자들이 많다. 거기서 태어나서 여기로 온 몇몇과 여기서 태어나 거기로 건너간 많은 사람들. 더 다양한 기회와 몇 배의 연봉 앞에서 이쪽은 쉽게 밀린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작년까지는.
그때부터였다. 거리와 쇼핑몰에서 캐나다 기업들의 깃발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We are a Canadian company."
여기저기서 캐나다 기업임을 강조했다. 해묵은 출생의 비밀을 밝힌다는 듯 일제히 단풍잎을 앞세웠다.
작은 소품점이나 베이커리에도 사인을 내걸었다.
"Proudly Canadian".
미국 회사 제품임이 확실한 물건들에도 빨간 단풍잎 스티커가 붙는다.
"Prepared in Canada".
이제 사람들은 캐나다 표시에 멈춰 선다.
미국은 친구들이 살던 나라였고, 가까운 여행지였으며, 내 삶의 일부였다. 지금은 가지 않는다.
편히 다시 오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까지는, 여기에 있겠다.
O Canada
캐나다 국가. 영어와 불어 두 버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