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3
매일 오전 시간중 1시간 가량 어김없이 머무는 공간이 있다.
나는 오늘 아침도 그곳이다.
아침에 일찍 눈을 뜨면 '오늘은 주방일 하지 말고 꼭 아침에 책읽자'하고 세번 다짐하지만,
눈에 걸린 설겆이, 냉장고에 들어가야 할 식재료, 냉장고에서 며칠째 잠복중인 야채들이 갑자기 떠오른다.
정성껏 가족들이랑 먹으려고 구운 계란 해놨지만 왜그런지 가족들의 외면을 받기가 일수다.
얼마전에 구워놓았던 계란도 그대로, 인덕션 위 김치찌개도 그대로, 냉장고에 밥도 며칠째 그대로...
찬장에서 당면을 꺼내 끓는 물에 살짝 데치듯이 삶아두었다.
김치찌개에 바로 넣어 먹을수도 있을테니 아침에 당면넣고 김치찌개로 먹여야지.
계란도 껍질을 까두면 좀더 집어 먹지 않을까.
냉장고 그릇마다 무엇이 담겼는지 내 나름의 친절을 베풀어서 그릇별로 라벨까지 붙여두었다.
오랜 나의 습관이기도 하고, 이렇게라도 써놓으면 나 역시 구분하기가 편하다
이렇게 그릇마다 무엇이 담겼는지 라벨을 붙여두지만 무심한 시각으로 또 무심하게 지나친 시선에 아주 조금 서운할뿐...
냉장고를 활짝 연 가족들의 눈에는 이중에서 뭘 골라먹을까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내 마음은 그게 무엇이든 잘 먹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 별친구는 1박2일 워크샵에가고, 아들은 아침 8시까지 침대 곁에서 바디필로우 인형을 꼭 끌어안고 있다.
나는 10시까지 도착해야 하는 외부 일정이 있어서 곧 외출을 해야한다.
오늘 아침도 먹을 사람이 없는 것인가.
과거, 주방은 나의 숨결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었다.
예전에는 주방에 머무는 내 모습이 결혼한 여성으로서 가장 적합한 공간으로 생각하면서,
가족들을 위해서는 으례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여기던 공간이었다.
육아를 할때도, 회사를 바쁘게 다닐때도 주방에서 내 역할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보니 주방은 내 사욕이 불러낸 곳이자, 내 욕심을 채우는 곳이었다.
그 곳에 서 있는 시간보다 가족옆에 더 많이 앉아 있는것이 필요했고,
음식을 들여다 보는 시간보다는 가족들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뒤늦은 깨달음을 얻고서야 나의 행동이 바꼈다.
내가 어릴적 우리 엄마는 늘 주방에 있어서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때가 훨씬 더 많았다.
지금의 나는 가족들에게 뒷모습만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주방보다 마루에 더 많이 머무르고,
가족들과 TV 를 보면서 히히덕 별 의미없는 장면에서도 함께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때로는 아들의 옆에 앉아서 그의 음악을 들어주기도 한다.
오래 머무르던 주방은 나의 공간이 아니었다.
나의 공간은 가족들 곁이었다.
참 다행스럽게 남편의 속도는 나와 다른 시계로 움직이고 있는 천천히 사는 사람이었고, 아이도 아직은 어렸다.
그리고 나의 변화는 그리 늦지 않았다.
이제는 주방에서 하루 1시간 이상 머물지 않으려 한다.
이 곳 주방이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공간인 것은 맞으나,
나에게 더 중요한 공간은 함께 머무는 공간이므로,
오늘도 우리의 공간을 향해 나의 시선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