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쉐프랍니다.
아들은 마트에 가는 내내 매우 설레여 했다.
스스로 요리를 준비하고 가족들에게 자신의 음식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은 이미 쉐프였을것이다.
본격적인 솜씨를 발하기 위해 우선 메뉴를 선정해 봤는데 가장 자신이 있으며 노동대비 시각적 효과를 뽐낼만한 재료를 고민하다가 안심스테이크를 첫 요리로 선택했다.
본인의 손으로 준비하는 첫 요리라 막연할 수도 있을 듯 한데 나름의 호기로움을 뽐내는 걸 보니 고기 요리는 자신도 넘치고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라서 더 즐거웠을꺼라 생각한다.
식재료는 이마트에 가서 직접 재료를 비교해가며 골라보는데 다 똑같은듯 하면서도 다른 것을 찾으려 하니 조금 헷갈리는 듯 팁을 물어보기도 한다.
두 세가지의 식재료를 들고 꼼꼼하게 가격을 비교하며 살펴보는 것을 지켜봤다.
동일한 재료라도 그 중에 다름이 있음을 혼자서 찾아보고, 또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신선도와 금액을 비교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었을 것이다.
식재료를 사오고 나서는 주방에서의 요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요리를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재료 손질이다. 아들은 사온 재료를 꼼꼼히 세척하고 잘라서 요리의 사이즈에 맞게 준비했다.
야채를 먼저 손질해서 구워내고 고기는 제일 마지막에 구워 가장 맛있는 상태일때 그릇에 옮겨 담아 내놓는 것도 본인이 스스로 음식을 준비하는 순서를 고려하고 생각해 본 것이다.
준비한 야채는 데침류와 구이류 두가지 버전으로 나뉘었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좋을 법한 데친 브로컬리, 데친 아스파라거스도 함께 준비하고, 초록 야채와 어우러짐을 위한 파프리카와 방울토마토가 접시를 더욱 빛내주었다
고온에서 구웠을 때 단맛을 내는 것들이 프라이팬에 올라갔다. 그간 캠핑장에서 고기를 구웠던 경험을 토대로 대파구이,구운 새송이버섯/양송이버섯, 구운마늘, 구운 양파, 구운 가지를 준비했다.
이 정도 혼자서 준비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스스로 생각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모습에 아주 기특하고 뿌듯하다.
볼에 여드름이 올라온 아들의 앳띰은 어느 순간 의젓함과 진지함으로 변화되어 있었고, 말 없이 묵묵한 얼굴은 철없는 개구쟁이의 모습이 모두 빠진 진중함이 들어와 있었다.
무엇보다도 불에 직접 조리해야 하다보니 불의 양과 시간에 신중하고, 조리해서 접시에 올리는 순서도 중요했다.
아들은 본인을 포함한 다섯명의 고객을 위해서 플레이팅을 했다.
우리가족 세명과 아랫집에 살고 계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초대하니 합이 5명이다.
널찍한 흰색 접시에는 데친 야채들을 먼저 올리고, 이후 수분을 날린 구운야채를 올렸다.
이후 안심을 구우면서는 마이야르 반응이 잘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접시에 올린 다음 최종으로 관자까지 올리면 끝!
저녁상은 가족들이 함께 모임으로 더욱 풍성해지고, 가족들의 환호를 받으며 음식 접시를 가지고 나오던 아들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 차올랐다.
접시의 알록달록한 색깔들 덕분에 아주 맛있어 보인다.
데친 야채에는 무름이 없어서, 구운 야채도 타지 않게 아주 적당하고 잘 구워져서 외할머니가 깜짝 놀라셨다.
무엇보다 고기의 익힘은 강한 센불에 고기 겉면만을 익힌 미듐상태로 참 잘 구웠다.
관자의 익힘과 식감도 뛰어나다.
고기 한점 썰어서 먹어보니 캬라멜의 향이 살짝 느껴지는 고기의 향과 부드러운 씹힘이 아주 훌륭하다.
이렇게 성실하게 준비한 자리에 어찌 와인이 빠질소냐.
"아빠 와인 한 잔 받으세요"
아들은 처음의 약속대로 식사값을 제대로 받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의 식사값으로 5만원, 엄마에게 3만원, 아빠에게도 3만원을 받았다.
저녁 한상을 차리고 나서 받은 용돈이 11만원.
입이 귀에 걸려 헤벌쭉 해진 아들은 아빠의 특별선물로 컴퓨터게임 3시간까지 덤으로 받았으니 다음 요리가 벌써 기다려지고 있을 아들이다.
밥도 든든히 먹고 기분이 좋아진 아들은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물었다.
"엄마 다음에는 내가 어떤 요리를 해줄까? 뭐 드시고 싶어요?"
"오늘 고기 먹었으니깐, 다음에는 음... 물 속에 사는 걸로 생각해볼까?"
아직 어린 아이에게 별걸 다 시킨다고, 앞으로 요리로 진로를 정한거냐고 까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가 아들에게 요리를 만들어달라고 제안을 했던 이유는, 스스로 식재료를 사와서 재료도 손질하는 과정을 직접하고, 또 음식을 만드는 노고를 느껴보라는 것과,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가족들을 통해 베품의 즐거움을 배워보라는 것이었다.
요리 한번 한다고 진로가 정해진다면 참 좋겠다만 본인의 진로는 자신의 성향과 관심도에 따라 스스로 정하게 될꺼라 믿는다.
요리를 통해 의도적으로 자기 고민을 하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보게끔 끌어주고 싶었다.
내가 했으면 시간도 더 짧았을 것이고, 양념이 더해져서 더 맛있게 했을지도 모른다.(물론 아닐수도 있다)
아이는 재료 손질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오일과 소금 외에는 아무런 양념도 가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즐거운 느낌을 가지며 스스로를 대견해 했을 것이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줘서 그것도 기뻤을 것이다.
물론 용돈을 받는 것은 더욱 아이의 흥을 끌어 올렸을 것이다.
용돈이라는 매개를 이용해서 아이가 우리에게 노력하는 그 시간을 사줄 수 있어서 기뻤고, 부모의 의도를 잘 따라와주어서 고마운 녀석이다.
오늘 이렇게 훌륭한 식사를 대접했으니 다음에는 얼마나 더 노력하게 될지 기대된다.
다음 아들의 요리는 무엇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