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여자도 아닌
설 연휴를 지나고 오래 묵은 친구들을 만났다. 스무 살 무렵 만나 쉰 살을 넘긴 지금까지 드문드문 만나는 사이들이다. 이 여자들은 결혼하지 않았거나 이혼을 하여 독신의 삶을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혼한 적 없는 세 여자와 이혼을 한 한 여자는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만 같을 뿐 기질도 성향도 하는 일도 다 다르다.
재작년 겨울 엄마가 돌아가신 친구 1은 같은 과 동기이다. 엄마가 마흔을 훌쩍 넘겨 나은 늦둥이로 아흔여섯의 노모가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엄마의 유언은 이제 더 이상 늙은이랑 살지 말라는 거였는데 돌보기 좋아하는 성정의 친구가 일흔이 넘은 언니 오빠를 돌보며 살까 봐하신 말씀 같았다. 친구 1은 생활력 갑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이다. 까다롭지 않고 상황에 적응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나 삶의 가치관은 나와는 많이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서로 갈등이나 대립한 적이 없다. 육 남매의 막둥이인 친구 1은 나이 많은 언니와 오빠, 조카들에게까지 믿음직한 상담사 역할을 하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는 아파트가 넓어 빈 방에 시설에서 독립한 청년을 들여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하는 친구 1의 선량한 오지랖은 끝이 없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미술교육 관련 기획 일을 하는 친구 1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간다. 친구 1은 혼자 살지만 음으로 양으로 많은 이들을 책임지는 여자이다.
친구 2는 이른바 운동권 선배였다. 순하고 조용한 친구 2는 학교를 정리한 후 공장에 내려가 오랫동안 있었다. 자신이 운동가인지 그냥 공장에 취업한 노동자인지 잘 모르겠다고 일 년에 두어 차례, 명절이면 올라와 고민 많은 침착한 얼굴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 고민을 말똥말똥 듣는 나에게 책과 밥을 사주고 종종 용돈도 주었는데 겨우 두어 살 많을 뿐 친구 2도 서른이 채 안된 어린 여자였다. 지금은 언론사에서 일하는데 그날 모인 여자들 중 가장 높은 연봉의 유일한 정규직이다. 십 년 전 고독사한 시나리오 작가의 황망하고 슬픈 뉴스를 본 친구 2는 언제든지 어려우면 급전이 필요하면 부끄러워 말고 자기를 찾으라고 말해주었다. 명색만 작가인 나는 생계로 하던 일이 정리되고 구직 중이었지만 일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날 친구 2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면서 청승맞은 기분도 들었고 안심도 되었는데 다행히 아직 돈을 빌려 본 적은 없다. 친구 2는 팔순의 노부모를 책임지고 결혼한 형제들이 낳은 조카들의 은행 노릇을 하는 것 같았다. 같은 대학을 나온 여자들 중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있는데 나도 친구 2가 어렵고 고단할 때 먼저 떠올리는 친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빌려 줄 돈은 없지만 이야기는 잘 들을 수 있는데 말이다.
친구 3은 그날 모임에 공간을 내어 준, 모인 여자들 모두의 선배이다. 유일하게 결혼을 했고 오래전 이혼을 했으며 이젠 성인이 된 두 아이가 있다. 친구 3 역시 학교를 정리하고 친구 2와 공장에 내려갔다. 공장시절 만난 노동자와 결혼과 이혼을 지나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웠다. 친구 3의 이 시기를 나는 구구절절 알지 못한다. 재작년 25년 만에 친구 3을 다시 만났는데 그 사이 사주명리를 공부해 상담을 막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노동운동을 하던,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가진 친구 3과 사주 명리는 잘 연결이 되지 않았지만 친구 3은 예전처럼 차분하고 어른스러웠다. 이십 대와는 다른 어른스러움이었는데 스무 살에는 좀 어렵던 친구 3은 넉넉한 어른 여자가 되어 있었다. 성년의 두 아이와 비혼의 여동생과 같이 살면서 떨어져 사는 노부모를 돌보는 친구 3은 느긋하고 낙천적이다. 친구 3에게 사주명리와 유물론은 서로 이웃해 잘 사는 듯했다.
이 여자들과의 만남에는 부동산과 주식 이야기가 없고 결혼 후 이룬 가족 이야기로 비혼인 내가 소외될 일이 없다. 세상은 나이 든 비혼 여성을 골드미스라고 부르던데 대부분 나이 든 독신의 여성들은 원가족을 돌보고 주변을 살피느라 ‘골드’가 될 여력이 없고 나이 들어 밀려나지 않으려고 자기가 선 곳에서 고군분투한다. 세상은 남성들만 가장으로 인정하지만 늘 여성가장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한국 전쟁 통에도 산업화, 민주화 시대에도 아이엠에프와 세계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에도 여성들은 늘 가정을 책임지고 있었다. 이 여성가장들 중 많은 수는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사는 비혼의, 혹은 독신의 여자들이다. 결혼하지 않거나 혼자가 된 나이 든 여성의 늙은 부모 돌봄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누구의 여자도 아닌, 남편 없는 여성들을 공공재로 여기는 가부장적 문화다. 경제력이 되는 여성은 돈으로, 아닌 여성은 잉여노동력으로 취급되며 갖은 감정 돌봄까지 담당한다. 사회가 돌보지 않은 빈구석을 여성들에게 던져 놓고 멋대로 라벨링을 하는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서도 잘만 사는 여자 셋과의 만남은 즐거워서 심야까지 이어졌다. 누구의 아내와 엄마로 살지 않는 이 여자들 덕에 올해가 막막하던 프리랜서 예술 노동자의 심란함도 좀 누그러졌다. 다들 제 이름하나로 혼자 걸어가는 이 여자들을 앞으로도 응원하고 싶다, 물론 나 자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