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용한 언니 Sep 11. 2024

아는 여자의 노동이력

아줌마로 퉁쳐지는 중년여성의 노동

지원서와 구직의 날들이 가고 있다. 스멀거리는 불안에 인터넷 화면을 스크롤로 내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받는 중이라 일단 교육을 마치고 생계노동을 알아보자 했지만 아는 선배가 급히 알려준 알바노동에 일단 지원서를 보냈다. 통계청의 조사원 모집이었는데 채용마감에 닥쳐 급하게 핸드폰으로 신청했더니 며칠 후 면접 날짜와 시간을 문자로 알려 왔다. 


 면접일, 십여 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구청의 후미진 복도 구석에 임시로 마련한 면접 대기실이 있었다. 의자에 가 앉으니 먼저 와 있던 중년 여성 두 어 명이 손짓과 표정으로 대기표를 받아오라 신호를 보냈다. 대기실의 열 명 남짓한 여성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모두 50대로 보였다. 대기실 한편에서 번호표를 발급하는 직원은 이 일을 여러 해 해 본 사람으로 보였는데 연신 이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반복해서 말하는 중이었다. 그때 젊은 여성이 하늘거리는 핑크빛 원피스를 입고 들어섰다. 그 젊은 여성 역시 번호표를 받아 갔는데 대기실 직원의 태도와 말투가 유독 살갑더니 급기야 그 여성 옆자리에 가서 대화를 이어갔다. 


 내 번호가 불리고 면접실로 들어가니 중년 여성과 젊은 남자 한 명이 면접관으로 앉아있었다 내 엉덩이가 의자에 채 닿기도 전에 “밤 10시까지 근무가 가능한가요?”, “주말에도 근무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라는 질문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업무의 특성상 가게나 기업으로 직접 가야 하고 그들의 근무 시간에 맞추거나 요구하는 시간에 설문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휴일은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거기엔 답하지 않고 가게나 기업의 일정에 맞춰 조사원들이 움직여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코로나로 다들 힘든 상황이라 가더라도 좋은 말은 듣긴 힘들다, 문전박대는 감수해야 한다, 때론 거칠게 욕설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면대 면으로 하는 조사 작업과 컴퓨터 서류 작업도 틈틈이 해야 하고 지도에 기입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조사 기간은 여름 장마 기간이라 고생스러울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내내 말이 없던 젊은 남자 면접관은 숫자랑 친하냐, 재무제표는 볼 줄 아냐고 물었다. 


 면접관들은 세상에 은둔하던 능력자 슈퍼우먼을 찾는 듯했다. 이 노동의 대가는 하루 8시간 기준, 최저임금으로 계산된다. 밤 10시까지 일해야 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데 초과근무 수당이 있다는 말은 없었다. 상해나 산재보험도 의무가입으로 37일이라고 명시된 조사기간 내내 외근을 해야 하니 그 기간에 대비한 보험일 텐데 이 보험마저 개인이 알아서 가입하고 비용 역시 개인부담이었다. 저소득층, 장애인, 다자녀, 북한 이탈주민은 우선으로 채용한다고 고지되어 있으나 온갖 증빙 서류를 떼어 면접에 와야 했다. 밤 열 시까지 일하고 주말도 없이 장마기간 내내 밖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다자녀를 둔 여성이나 장애인이 얼마나 지원할지는 모르겠다.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을 민간에게 위탁하여 진행되는 이 일에는 대부분 경력이 끓긴, 그러나 일은 갈급한 중년 여성들이 주로 온다. 사흘 뒤 탈락 문자를 받았다. 이미 면접 중 떨어질 걸 눈치채서 실망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노동조건이 어디 있냐고 한마디 할걸 잠시 후회는 했다.   

에밀리 메리 오스본(1828~1925)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Nameless and Friendless)’

 

얼척 없는 면접 후 지금까지 일한 생계노동들을 떠올려 보았다. 대학 졸업 후 처음 일한, 모든 직원이 여성이었던 작은 디자인 회사에서는 매일 야근을 했다. 매주 순번을 정해 한 사람씩 더 일찍 출근해서 디자인실과 재료실을 청소했다. 직장을 그만둔 후에는 주로 강사로 일했는데 이 일에는 돌봄과 감정노동이 기본 값으로 따라왔다. 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 각종 공기관과 사설기관의 미술 강사, 그리고 마지막은 방문미술 강사로  짧게 일했는데 정말 형편없는 급여조건이었다. 한 번은 오래도록 일한 초등학교에서 오 년이 넘도록 그대로인 강사료를 올려야 한다고 의견을 내니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해 달라는 교감의 기막힌 말도 들었다. 거의 대부분 기혼여성들인 강사들을 반찬값 벌려 나온 ‘아줌마’로 취급했는데 이 ‘아줌마’들 중에는 가장도 있었고 혼자 살며 생계를 꾸려야 하는 비혼 여성도 있었다. 


 아줌마로 퉁쳐지는 중년여성의 노동을 어딜 가도 만난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무상으로 이용하는 중산층 전업주부인 아줌마들의 노동이 있고 각종 직능 가장 아래, 가장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는 일자리에 ‘아줌마’ 노동자들이 있다. 이 아줌마들의 노동 없이 한 일터가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갈지 늘 의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세상은 이 아줌마들의 노동을 무시하고 지우려 든다. 그러면서 또 알량한 일자리를 제공하며 쥐꼬리 보다 적은 급여를 주면서 여러 자격을 요구한다. 이번 조사원 채용지원서엔 각종 자격증, 컴퓨터 사용능력, 학력 란엔 대학원 이상까지 있었다. 굳이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없더라도 가능한 일이고 대학원 석사 역시 하등 필요 없는데 말이다. 중년 여자들이 가지는 부지런함과 성실함, 친화력이 제일 필요한 일이지 싶었는데 이 성실함과 중년여자 특유의 편안한 친화력을 노동시장은 중요한 가치로 값을 처 주지 않고 그저 공으로 써먹으려고만 하는 것이다.  


-아는 여자의 노동이력 2로 이어집니다. 


이전 04화 혼자서도 잘만 사는 여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