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멈출 수 없는 먹이고 살리는 노동, 밥 하는 노동
매일 밥을 먹는다. 살아있는 모두는 하루 세끼 밥을 먹지만 밥상을 차리는 건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여성이다. 집 밥은 사랑으로 포장되어 여성의 노동을 숨기고 매식에서조차 엄마밥상, 이모 집이라고 간판을 내건 백반 집에서 밥을 먹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밥을 하고 상을 차리는 건 여성이다. 결혼한 여성들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고 한다. 어느 곳에서 무얼 먹든 내가 아닌 남이 해주는 밥이면 다 맛있다는 것이다.
운전하는 여자들을 비꼬며 김 여사라고 부른 던 때가 있었다. 김 여사라고 불리는 운전하는 중년여자들이 자주 겪는 폭언 중에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는 말이 있다.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는 말은 밥이 상 위에 오르기까지 여성의 수고와 노동을 하찮은, 가치 없는 일로 만들어 버린다. 여성에게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는 망발을 일삼는 이들은 밥 한번 해보지 않는 남성들인데 이들은 집에 가서 엄마나 아내, 그가 아니라도 어쨌든 여성이 차린 밥을 먹을 것이다.
엄마는 요즘도 나갔다 들어오는 나에게 늘 밥을 먹었냐고 물어본다. 늦은 나이까지 엄마의 밥상을 받던 나는 가족 중 두 사람이 일주일 간격으로 코로나로 확진되어 격리를 한 탓에 이주가 넘게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상을 차렸다. 아침 먹고 치우면 점심이 돌아오고 점심을 먹고 돌아서면 저녁을 차려야 했다. 밥상을 차리기 위해선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듬고 쌀을 씻어 밥솥에 안쳐야 한다. 그렇게 밥상을 차려 밥을 먹고 난 뒤에는 밥상을 차리는 동안 벌린 것들을 치워야 했는데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섬세한 노동이다. 나는 겨우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밥 하고 상을 차렸지만 엄마는 이 노동을 50년이 넘게 해 왔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일상과 삶을 유지하는 여성의 재생산 노동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5차 산업혁명이 와도 사람 손으로 해야 할 거 같았다.
선배 여성예술가 정정엽(1962 -) 화가의 <식사준비>라는 그림이 있다. 1995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세 개의 캔버스를 이어 그린 대작이다. 그림 속에는 어느 동네에서나 봄직한 여자들, ‘아줌마들’이 한결같이 검거나 투명한 비닐 봉다리를 손에 들고 장을 봐서 집으로 가는 중이다. 집안일을 하다가 나온듯한 차림의 여자들은 슬리퍼나 편한 신을 신고 있고 표정은 덤덤하거나 무심하다. <식사준비>에는 일곱 명의 여성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 한 여성은 아이를 포대기로 둘러업고 있다.
나도 어린 시절 학교에 다녀온 오후엔 엄마를 따라 하루 일과처럼 장을 보러 갔다. 엄마와 단 둘이 갔던 장 보는 시간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엄마는 거의 매일 장을 보고 새 반찬과 국으로 밥상을 차렸다. 어느 여름날 오후, 저녁 장을 보고 오는 <식사 준비>의 여성 군상을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 목울대가 시큰했다. <식사 준비>가 환기하는 것은 내 유년의 기억이기도 했지만 밥 하는 여자들이 주인공이 된 이 장엄한 장관을 보기 전까지 엄마의 밥 하는 노동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식사 준비>는 나이 든 여성,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여성을 화면 중앙에 배치했다. 화면의 여성 중 가장 크게 그려지기도 해서 마치 무리를 이끄는 노련한 리더처럼 보인다. 중앙에 그려진 이 여성을 중심으로 양 편의 여성들은 조금씩 작아지다가 끝의 두 젊은 여성은 상대적으로 가장 작게 그려져 있다. 그림 속 일곱 여성들은 횡렬로 브이 자를 이루며 걸어가고 있는데 철새가 집을 찾아 날아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채도 낮은 황토색 바탕에 갈색의 모노톤으로 채색된 밥 하는 여자들은 잘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여성의 노동을 상징하는 것 같다. 여성들보다 눈에 띄는 건 손에 든 비닐 봉다리 속의 식재료들이다. 푸르게 생기 넘치는 이 푸성귀들은 곧 식구들의 입으로 들어갈 것이다.
8,90년대 민중미술의 세례 속에 대학을 다닌 나는 남성노동자가 주인공인 그림에 익숙하다. 공장 입구 출퇴근하는 노동자 군단을 그린 그림은 민중미술의 흔한 소재이다.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쓴 남성 노동자들이 일군의 무리를 이루고 있는 그림은 노동과 노동자의 힘을, 일하는 자가 세계의 주인임을 상징처럼 보여준다. <식사 준비>의 여성들은 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팔뚝질도 하지 않지만 먹이고 살리는 세계, 하루도 멈출 수 없는 밥 하는 노동의 풍경을 보여준다. 눈 밝은 이에게 보이는 애틋하고 덤덤한 장관은 조용해서 역설적으로 크고 힘차다. <식사 준비>의 밥 하는 노동의 장대한 광경은 내가 밥 하는 여자가 되었을 때 더 잘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림 속 일곱 여성에게 엄마를 보던 나는 이젠 이 그림 속에 엄마가 아닌 여성도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비혼으로 살아도 가사와 돌봄 노동을 책임지는 여성은 얼마나 많은가. 장 보고 돌아오는 저 여성들을 정상가족의 엄마라고만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협소한 상상인가.
식사준비 정정엽 1995년 서울 시립 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