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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Dec 04. 2024

살리고 돌보고 만드는 여자의 손

쓸고 닦고 지지고 볶고

  눈길 닿는 곳 모두 온통 연초록이 펼쳐지는 5월, 엄마와 얼갈이배추 두 단을 사 와 봄김치를 담갔다. 통통한 봄 부추를 넣어 만든 김치는 묵은 김치와 다르게 풋풋하게 맛있어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엄마의 보조 노릇이긴 하지만 배추와 부추를 다듬고 눈대중으로 김치를 담그는 집안일은 이젠 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겨우 이년 집안일을 하고 생색내는 것 같지만 살림 경력이 붙기 시작한 내 손은 이제야 ‘손다운 손’이 되어가고 있다. 프라이팬 기름이 튀어 살짝 화상도 입고 고무장갑 없이 물청소와 설거지를 해서 좀 거칠어지고 이런저런 생활의 군살도 생겼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각종 예술지원사업의 탈락으로 공적으로 그리고 사적으로도 저절로 주변이 정리되고 고요해졌다. 덕분에 내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꽤 좋아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내 손으로 만들어 먹고 집안의 소소한 일들을 챙기고 저녁 설거지를 하고 내 방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으면 평화롭고 때때로 충만하다. 더러 복잡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인생은 원래 단순한 듯 복잡하고 복잡하지만 또 사소하다. 


 그동안 동료 작가나 문화예술계 사람을 만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 기획들을 실행에 옮기면서 발생하는 여러 역동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맥락 속에서 나의 작업이 내 이름으로 결과를 내고 성취하는 것만이 성장이라고 여겼다. 공적인 성과를 우선하고 조직을 지키느라 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몇몇 페미니스트 동료들을 흉봤는데 가만 보니 나도 그들과 그리 먼 사람이 아니었다. 생산적이라는 것, 만들어 낸다는 의미를 내가 매우 ‘남성적’으로 ‘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집안일을 하면서 자주 느낀다.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 집 안을 청소하고 소박한 요리를 만들어 먹고 늙은 부모와 함께 지내는 날들은 기발한 발상의 프로젝트를 만들고 창작을 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성찰을 준다. 창조하는 삶은 예술가의 작업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음식을 만드는 부엌에서 철마다 하는 이불빨래에서도 일어난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내 손은 집안 살림을 하면서 비로소 일상과 삶의 근력을 기른다. 

 몇 년 전 국가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에서 다른 작가들과 예술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워크숍을 통해 1970년대와 80년대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며 고문피해를 입은 선생님들이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 노년에 접어드는 여성노동자들이셨는데 내가 짐작하던 것과 다르게 활달하고 익살스런 재치가 넘쳐서 워크숍 시간 동안 자주 웃었다. 서울 정릉에 있는 단체의 사무실까지 다들 멀리에서 오셨는데 이 산업화시대의 열혈 노동자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시작했다가 그림을 그리거나 흙 작업으로 생활소품들을 만들 땐 다들 조용히 집중했다. 

 워크숍을 마치면 금방 일어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나와 동료들과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분이 그림을 그리고 흙을 만지니 예전 공장에서 일하던 때가 떠오른다고 하셨다. 자투리 천이 적게 나오게 원단을 아껴가며 미싱질을 했는데 그때의 궁상스런 버릇이 남아 물감과 작업용 흙을 아껴서 사용했다고 소리 없이 웃으셨다. 작업을 하다 남은 마른 흙은 버리라고 흙 작업을 이끌던 동료가 이야기했는데 그 말을 듣고 버려질 흙이 아까워서 남은 흙을 모아 계속 만들게 됐다고 멋쩍어하셨다. 이 말을 한 선생님은 늘 차분하고 조용해서 오히려 눈이 갔는데 워크숍 기간 내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해 주는 고마운 분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흙 작업을 하면서 미싱 타던 때를 떠올린 선생님은 온갖 현학적인 수사가 넘치는 미학 책 따위를 단번에 넘어버리셨다. 노동과 예술이 한 뿌리라는 것을 직관으로, 그냥 손으로 알았다. 선생님의 말은 오래 남아서 그 뒤 작업을 할 때마다 자주 굴려보는 말이 되었다. 공장에서 미싱질을 해서 옷을 만드는 것과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멀리 있지 않고 노동과 예술은 동전의 양면 같은 거라는 걸 새삼 깨닫곤 한다. 


 나는 이때 예술 워크숍에 참여한 선생님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자신의 손끝에 시선을 두고 그림을 그리고 흙을 빚는 여성노동자를 그리는 것은 나에게 여성의 손과 여성의 노동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선배 여성이자 노동자 동료인 선생님들을 그리면서 배경엔 꽃을 그렸다.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걸 경계하지만 그건 여성을 꽃에 비유하며 비하하는 사람이 문제인 거지 꽃은 꽃일 뿐이니, 나는 선생님들이 걸어온 시간, 그 손으로 일군 것들이 꽃처럼 환하고 빛나길 바랐다. 쓸고 닦고 지지고 볶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여자의 손은 집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고 곁을 살리고 스스로를 살린다. 여성의 손은 입고 먹고살아있는 것을 돌보고 가꾸고 결국은 삶을 창조한다. 나의 예술 노동은 여기에 기대어 간다,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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