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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노동자와 이모님 사이에서

자기 생활도 온전하게 꾸리지 못하면서 쓰는 글과 그림

by 조용한 언니

여름처럼 무더운 초가을 내내 불안에 시달렸다. 불안의 정체는 경제적 위기감이었다. 사실 이 위기감은 오래된 거여서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생활을 꾸릴 수 없다는 명쾌한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이렇게 저렇게 미뤄두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감각은 사람을 만날 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지 않는 일을 할 때도 따라다녀서 누가 뭐라지 않는데도 혼자 위축되다가 자격지심에 빠지곤 했다. 자기 생활도 온전하게 꾸리지 못하면서 쓰는 글과 그림이 다 허깨비 같고 위선 같았다.


일단 먼저 멀리 갈 거 없이 드로잉강습을 늘리는 방법을 찾았다. 지난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강좌를 만들어도 개강보단 폐강을 더 많이 경험해 다른 방법을 찾아보니 문화예술 강습 플랫폼이 여럿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다들 플랫폼에서 중고 거래도 하고 구직 구인도 하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취미 모임도 플랫폼에서 찾았다. 들어가 살펴보니 강습을 원하는 사람이 공지를 올리면 그 공지에 문화예술 강사들이 견적서라는 것을 보내는데 그 견적서를 보내는 것에 일일이 수수료가 나갔다. 혹 수업이 성사되더라도 수업료에서 또 수수료가 세금처럼 부과되었다. 그 플랫폼은 일을 구하는 사람들의 수수료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일이 급한 나 같은 이들이 많은지 각종 드로잉 수업이나 문화예술 강좌들은 차라리 무료 강좌를 하지 싶은 금액을 올려놓기도 했다. 제 살을 깎아 먹는 방식의 플랫폼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예술의 값이 이렇구나 싶은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나 자괴감도 사치여서 다음은 친구도 종종 한다는 쿠팡 알바를 알아봤다. 친구는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교육과 전시 관련 기획자로 일한다. 대학 강의보단 주로 전시기획과 지자체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생계를 꾸렸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전시기획과 프로젝트들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간단하게 인터넷으로 알바를 신청하니 며칠 뒤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담당자는 쿠팡 알바 신청 앱을 핸드폰에 깔아두라고 했다. 아침에 나가 오후에 오든, 오후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든 8시간을 일해야 했다. 더 짧게 일하는 것도 선택할 수 있지만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다. 쿠팡 알바도 한 달에 8일 이상 일하게 되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적용됐다. 마지막으로 중년여성의 대표적 일자리, 돌봄 노동을 찾아봤다. 시터란 이름을 달고 여러 플랫폼이 있었다. 그중 구직자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고, 혹시 모를 사고에 보험 가입이 되어있는, 인터넷 검색 맨 위에 올라오는 사이트로 들어갔다. 신생아부터 초등학생까지 시터 알바를 구했는데 신생아와 유아 돌봄이 가장 많았다. 간단한 구직 프로필을 올려놓자 시터들을 관리하는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몇 단계 더 구직 프로필을 완성하면 시터를 구하는 가정과 연결이 된다고 했다. 지금 하는 여성 노인과의 수업을 마무리하는 대로 업체가 요구하는 서류를 마련할 생각이다.

요즘 핸드폰에 깔아둔 시터 알바 앱에서 자주 알람이 울린다. 자신의 아이를 돌봐 줄 시터를 찾는 젊은 부모들은 한결같이 밝고, 위생 관념이 철저하고, 일하는 중엔 핸드폰을 하지 않는 ‘이모님’을 구한다. 핸드폰을 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곤 밝은 것도 위생 관념도 자신 없지만 이 일을 할 나를 상상한다.


아주 오래전 그림책 작업을 할 무렵, 표지에 사람의 뒷모습을 넣는 건 금기라는 말을 들었다. 한 인물의 특성을 분명하고 또렷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뒷모습이 표지에 나오는 건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의 뒷모습은 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약간은 쓸쓸하고 대체로 안쓰럽다. 속마음을 표정으로 감출 수 있는 앞모습과 다르게, 혹은 앞모습처럼 명확한 인상은 없지만 뒷모습엔 표정이 전하지 못하는 그 사람의 속내와 처지가 있다. 일을 구하는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자기연민으로 궁상맞지 않기를, 부디 씩씩하기를.


2025년이야기가있는그림_10월_그림.JPG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30화 이상이라 연재가 되지 않아서 그냥 올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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