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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까 Jul 06. 2016

오빤 강남스타일

미국 입성기

18개월을 계획으로 한국을 떠나왔는데도 그냥 잠깐 가까운 곳에 여행을 온 기분이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지, 앞으로의 생활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크기가 내가 상상하기에는 너무나 커서 잘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종류의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도착한 미국, 여느 여행 때처럼 항상 하는 걱정과는 달리 수하물도 안 잃어버렸고 입국심사 때도 아무 문제없었다. 단지 입국심사대 아저씨가 여권에 있는 내 사진을 못 알아보았다. 4년 동안 내가 그렇게 늙었나. 안경도 벗어보고, 머리도 묶어보고, 면허증에 있는 다른 사진까지 보여줬는데도 의심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그 사진 나 맞다고 했더니 다행히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리고는 하는 말, “오빤 강남스타일”!! 한국에서 싸이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다룬 뉴스를 접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 덕분에 경직되었던 분위기는 풀리고 나도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미국 땅에 발을 내디뎠다.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그렇게 입국심사를 마치고 국내선으로 사우스벤드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빈 좌석이 많은 작은 비행기에서는 나이 지긋하신 스튜어드 아저씨 혼자 모든 서빙을 다 해주셨다. 젊고 예쁜 승무원만 보다가 흰머리에 금방이라도 쓰러지실 것 같은 승무원 아저씨를 보니 나도 일어나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공항에는 콜롬비아인 안드레스와 호세가 날 마중하러 나와주었다. 스페인어 할 수 있는걸 숨기고 싶어도 아직 내 영어실력이 그닥 좋은 게 아니다 보니, 그리고 대화거리를 찾으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를 하게 되었고, 미국에서 만난 한국애가 스페인어를 한다는 사실에 콜롬비아 친구들은 무척이나 반갑고 신기해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내 영어실력은 늘지 않았고, 미국에서 영어보다 스페인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왔다.)




미국 미시건(Michigan) 도와지악(Dowagiac)에 위치한 IICD(Institute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Development)는 아프리카 자원봉사자(DI, Development Instructor)를 양성하는 대안학교이다. IICD는 1970년 덴마크에서 시작된 국제 DRH운동의 하나로서 글로벌 이슈, 국제개발, 빈곤퇴치를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DRH는 덴마크어 Den Rejsende Højskole의 약자로 세계를 여행하는 학교라는 뜻이며,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미국 미시건, 메사추세츠, 그리고 세인트빈센트에 DRH School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기관 이름이 IICD에서 One World Center로 변경되었다.)


IICD Michigan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총 18개월로, 미국에서 6개월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아프리카로 건너가 6개월 동안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6개월 동안 프로젝트 결과를 보고하고 추가 활동을 계획하게 된다. 프로그램은 10명 내외의 팀을 구성하여 진행되며, 매년 2월, 5월, 8월, 11월에 팀 활동이 시작된다.

 

아프리카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은 Humana People to People이라는 NGO단체와 함께 TCE(Total Control of the Epidemic), Children Town, Child Aid, HOPE, Farmers Club, Teacher Training 등의 프로젝트 중 하나를 선택하여 수행한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다소 빡빡하게 짜인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07:30 아침식사

08:00 Morning Course 

(Teacher들이 준비하며 글로벌 이슈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을 접하고 같이 이야기한다.)

09:00 청소

09:30 Team Meeting/Study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며, 각종 행사나 Fundraising을 준비한다.)

13:00 점심식사

14:00 Team Meeting/Study

17:00 Sports Time

19:00 저녁식사

20:00 Evening Course (다 같이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의 활동이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Teacher 및 DI 모두는 식품/식사관리, 건물/차량 유지, 청소/위생, 팀 총무, 팀 펀드레이징 관리 중 각자 하나의 임무를 맡고 있다. 식사 준비와 청소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Teacher 및 DI 모두가 참여하며, 식사관리와 청소담당 DI가 매주 만드는 스케줄에 해당하는 사람이 그것을 수행하면서 학교가 운영된다.

 

18개월 프로그램을 완수하면 아프리카 모잠비크에 위치한 One World University로부터 Fighting Poverty Certificate를 받게 된다. 그래서 준비기간 중 모든 학생들은 OWU 서버에 접속해 매주 주어진 스터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나는 2012년 11월 아프리카팀으로 이곳에 왔다. 대학교, 대학원, 외무고시 준비, 인턴, 회사생활을 거쳐 20대 후반에 1년 반이라는 시간을 외국에서 보낼 결정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 생활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대학생 때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자원봉사단체를 찾지만, 처음 이곳에 와서 느낀 건 교육자, 공무원,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와서 다른 종류의 조직과 교육방식을 배워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학생들이 와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강인해져 가는 것도 좋은 일이다. 국적, 문화, 가치관, 성격 등이 다른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오랜 기간을 함께 생활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 만은 아니지만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나만의 기준을 깨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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