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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Jun 09. 2023

빵순아 방콕 가자

방콕 빵지순례 가이드 | 식사빵 에디션


나는 방콕에 사는 빵순이다.


그렇다면 내가 빵순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1. 밥, 면, 빵 중에 절대 포기 못하는 것을 하나 고르라면 빵을 고른다.
2. 빵이라면 단맛, 짠맛, 매운맛 가리지 않고 일단 입에 넣고 본다.
3. 배달앱에 저장된 식당 목록 중 70% 이상이 빵집이다.


나는 확실히 빵순이가 맞다.




빵 중의 빵은 식사빵이다.


샐러드에 곁들여 먹고, 버터를 발라 먹고, 코코넛 오일에 토스트 해 먹고, 꿀에, 올리브 오일에도 찍어먹고, 그냥 홀린 듯 맨 빵을 뜯어먹기도 하는.


그 담백하면서 고소한 기본적인 맛에 빠지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또 먹고 싶은, 식사빵.


방콕에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도 많지만 여기 정착해 사는 유럽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베이커리들이 꽤 많다. 덕분에 온갖 종류의 식사빵 (바게트, 사워도우, 포카치아, 치아바타 등)을 여기저기 비교해 보고 취향에 맞는 곳에서 사다 먹을 수 있다.


만약 여행중 방콕 시내(사톤 또는 수쿰빗 라인 근처)에 머무른다면 하루 정도는 동선 안에 여러 빵집을 넣어 일일 투어를 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직접 방문하지 않고 배달앱 클릭 몇 번만으로도 여러 베이커리들의 따끈한 빵을 받아 볼 수 있다.


의외의 빵지순례 도시인 방콕의 식사빵 맛집 여섯 군데를 소개한다.


순서는, 뱃살에 손을 얹고, 가장 많이 사 먹은 순으로.




*이 글 맨 아래에 여기서 소개한 베이커리들을 포함해 방콕에서 가볼 만한 베이커리 약 스무 곳을 모아둔 구글맵 리스트를 링크해 두었다. 방콕 여행을 계획 중인 전국의 빵순빵돌이들께 바친다.




1. 에릭케제르의 호두 사워도우


전 세계 2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에릭케제르. 방콕에서는 현재 약 열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다. 그중 내가 애용하는 매장은 포장만 가능한 엠콰티어 지점.


시그니처 크라상, 까늘레, 휘낭시에 등 여러 베이커리 아이템을 판매하지만 내가 여기서 매번 사게 되는 메뉴는 딱 이거 하나다. 호두 사워도우 (Sourdough Walnut).

작년까지만 해도 한 덩이에 100밧이었는데. 그새 가격이 120밧 (약 4,500원)으로 올랐다.

프랜차이즈 빵집이라고 띄엄띄엄 봤다가는 이런 보물을 놓치고 마는 거다. 호두가 정말 많이 들어있고, 또 빵 자체에서 나오는 고소함까지 더해져서 정말 중독적이다. 빵 속 부분은 보드랍고 겉 부분은 바삭해서 씹을수록 그 고소함이 배가된다.


크기가 작아 보이지만 식사빵이 대개 그러하듯 꽤 묵직하고 양이 꽤 된다. 또 호두의 기름기 때문인지 한 두 조각을 먹으면 배가 불러온다.

먹지 않고 지나가는 주가 거의 없다. 주식이라고 봐도 무방.

그냥 손으로 뜯어먹기에는 겉 부분이 꽤 딱딱한 편이니, 구매 시 직원분께 썰어달라고 부탁하면 기계로 깔끔히 썰어주신다. 기계가 없어 칼로 직접 썰어주는 매장도 있다. 못생기게 썰릴 수 있음 주의. 래도 입에 들어가면 똑같이 맛있다.

어떤 재료 때문에 빵이 이런 연한 보라색을 띄는건지 궁금하다. 꼭 검정쌀이 들어간 밥 색깔 같다.





2. Beyond Bread의 썬드라이드 토마토 & 치즈 치아바타


2022년 초, 혜성같이 방콕에 나타나 지금까지 내 뱃살 지분의 반은 족히 차지하고 있는 프렌치 베이커리.

빵이 정말 먹고싶었던 날. 하지만 누가 봐도 너무 많이 시킨 것 같다.

식사빵의 근본인 바게트부터 로데브, 사워도우, 베이글, 크라상, 크러핀, 초콜릿브레드, 당근케이크, 브라우니, 샌드위치.. 이 집의 거의 모든 메뉴를 다 먹어 본 것 같다. 그리고 모두 다 실패 없이 맛있었다. 전반적으로 "이건 미친 맛이야" 까진 아니어도, 아주 기본에 충실한 맛.


또 이 집의 장점은 비슷한 베이커리들에 비해 가격이 전반적으로 착하다는 것이다. 바게트는 한 로프에 50밧으로 약 1,900원이니, 이게 최근 40밧에서 오른 가격임에도 다른 베이커리들에 비하면 절반 또는 그 이하 수준의 가격이다.


이 베이커리의 수많은 메뉴들 중에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싶은 빵이 하나 있다. 바로 이 놈. 썬드라이드 토마토와 바싹 구워진 치즈가 짭조름함과 바삭함을 더해주는 매력적인 치아바타.

봉투안에 가지런히 담겨 배달오는 선드라이드 토마토 & 치즈 치아바타. 가격은 80밧 (약 3천원).

나는 발효빵 특유의 향과 식감을 정말 좋아한다. 꼭 우리 술빵이나 술떡에서 나는 것과 같은 은은하게 시큼한 향기와 퐁신퐁신한 식감의 조합이 어쩌면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썬드라이드 토마토와 치즈가 들어간 이 치아바타는 샐러드에 곁들여 먹다가 주객전도 하고 마는 그런 마성의 빵이니 적극 추천한다.

구멍이 숭숭 난 저 단면에서 퐁신함을 짐작할 수 있다.




3. Sarnies Sourdough의 사워도우


Sarnies는 싱가포르에서 시작한 호주식 브런치 레스토랑이다. 방콕에는 2018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현재 총 다섯 개의 지점들 중 네 곳이 방콕에 있으니, 방콕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태국식 요소가 가미된 브런치 메뉴와 직접 로스팅하는 원두로 내리는 커피가 유명하다.

짜런크룽 로드에 위치한 Sarnies Sourdough

방콕에 있는 네 개의 지점 모두 이름이 각각 다른데 (Sarnies Roastery, Sarnies Bangkok, Sarnies Sukhumvit, Sarnies Sourdough), 그중 이름에 '사워도우'가 들어간 지점에서 매일 갓 구워내는 빵과 베이커리들을 다른 지점들에 공급하고 있다.

Sarnies Sourdough의 창가에 줄지어 있는 베이커리

사워도우는 로프 통째로 구매할 수도 있지만, 너무 커서 부담이라면 브런치 메뉴를 주문할 때 조각으로 곁들여 주문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래 사진처럼 브런치 없이 그냥 사워도우만 슬라이스당 50밧에 (약 1,900원) 주문할 수도 있다. 내 마음속 방콕 사워도우 1등은 여기다.

커피를 내어준 손잡이 없는 컵이 마치 사발그릇 같아서 웃음이 터졌다. 크라상과 사워도우로 맞이한 아침은 완벽했다.
황홀한 비주얼의 페이스트리들




4. El Mercado의 무화과 호두 빵


최근  (누가 방콕에서 팟타이만 먹으래?)에서 소개한 지중해식 레스토랑 El Mercado의 베이커리도 식사빵 맛집 추천 목록에 포함한다.


이곳에서 내 최애 메뉴는 바로 무화과 호두 빵 (fig walnut bread). 담백한 식사빵이 당기면서도 약간의 단맛을 원할 때, 그 갈망을 완벽하게 만족시켜 주는 빵이다. 무화과가 너무 많이 들어있지 않아서 단맛의 밸런스가 적당하다.


El Mercado의 무화과 호두 빵 (fig walnut bread)

식감은 에릭케제르의 호두 사워도우보다 살짝 더 묵직한 편이지만, 겉바속촉 식감도 놓치지 않았다. 바삭한 빵의 크러스트를 씹을 때 나는 꼬소함도 아주 아주 만족스럽다.

무화과는 겉 표면에만 붙어있다.




5. Never Mind German Bakery의 브레젤 빵


자그마치 75년 전 방콕에 정착한 독일 해군 장교 출신 오너가 세운 기업의 베이커리. 내 기억으론 원래 같은 위치에서 독일산 베이킹 재료를 판매하는 상점을 운영하다가 작년에 (2022년) 가게를 확장해 바로 옆에 베이커리를 오픈했다.


상상을 더해 비유하자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한국산 식재료를 수입해서 식당에 납품만 하던 한국인 이민자가 두 팔 걷어붙이며 '진짜 맛있는 한국 음식이 뭔지 내가~~~ 보여줄게' 하고 한식당을 직접 차린. 그러니까 먹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상황인 거다. (내가 빵순이어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는 뜻).

브레드롤, 사워도우, 호밀빵 등이 진열되어 있다.

무튼 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왜냐하면 방콕에서 내가 아는 독일식 빵집은 코시국을 지나며 여러 번 문을 닫은 Bei Otto라는 식당이 전부였는데 (지난달에 새로운 위치에 다시 오픈함), 이 베이커리가 생기면서 다시 독일식 브레젤을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별거 없게 생겨서는 꼬소하고 짭쪼롬하고 아주 끝도 없이 들어간다.
아직 먹어보지 않아 맛있는지 모르겠는 왼쪽의 버터빵과 크라상
아쉽지만 이 집의 사워도우는 그저 그랬다. 하지만 그걸 버터가 살려냈다.
버터야 고생했어!
하나 하나 다 먹어보고 싶은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도 판매하고 있다. 생각난 김에 주말에 먹으러 가야겠다.





6. Larder의 포카치아


방콕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두 명의 폴란드 출신 셰프들이 오픈한 폴란드식 베이커리 및 샤퀴테리. 폴란드 식문화에 문외한인 나는 '폴란드식 베이커리'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모르면 먹어보면 알게 되지!' 하는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었다.


엠콰티어 쇼핑몰 뒷쪽으로 수쿰빗 35번 길과 39번 길이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했다. BTS 프롬퐁 역에서 도보로 5분에서 7분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다.

 

다양한 폴란드식 베이커리 메뉴 (브리오쉬, 흑호밀빵, 도넛, 케이크 등) 및 Kanapki (폴란드식 오픈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다.

사워도우, 흑호밀빵, 도넛, 버터번 등 다양한 베이커리 메뉴를 판매하고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비주얼에 비해 맛은 그저 그랬던 연어 Kanapki (폴란드식 오픈 샌드위치). 새로운 경험을 한 것으로 만족했다.
수제 살라미, 쵸리소 등을 이용한 메뉴를 식당에서 바로 맛볼 수도 있고 포장된 상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모든 메뉴들 중 이 빵순이의 가슴에 들어와 꽂힌 것은 포카치아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집은 포카치아 맛집이다!


내가 원하는 발효빵의 모든 요소(퐁신함 부드러움 새큼함)에 플러스알파를 이곳의 포카치아가 가지고 있다. 올리브오일의 산뜻한 기름짐과, 얇고 바삭한 껍질과, 허브, 그리고 마늘이 그렇다.


진열되어 있는 엄청나게 큰 포카치아 덩어리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4등분 해서 290밧에 (약 10,9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나는 빵순이답게 빵 여러가지를 주문해서 다 먹어봤다. 각 슬라이스당 40밧 (약 1,500원). 포카치아가 단연 일등이었다.
거대한 포카치아를 4등분해 포장해주고 계시는 직원분
방콕에 놀러온 친구에게 LARDER에서 포카치아를 사다 먹인 날. 반응이 아주 좋아 뿌듯했다.




아래 구글맵 리스트에 방콕에서 가볼 만한 빵집 약 스무 곳을 모아두었다. 빵순이 친구들의 방콕 여행길에 맛있는 빵이 하나라도 더 추가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맛있는 건 같이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


더 많은 방콕살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sorang.di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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