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시작하기 전의 일이다. 방콕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인촌부리출신 동료가 주말 동안 본가에 다녀왔다며 동네 '명물' 간식을 팀원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코코넛이 들어간 디저트이려나?'
아마도 그날 하루 중에 가장 총명한 눈을 하고 쫑긋 관심을 가지던 내 얼굴에 곧 커다란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녀가 가져온 박스 안에는 전혀 태국스러워 보이지 않는 캐러멜 색의 케이크가 들어있었다. 촌부리 유명 맛집의 토피케이크라고 했다.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나에게 토피케이크 하면 떠오르는 건 영국식 스티키 토피 푸딩인데, 그게 촌부리 유명 간식이라니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한국으로 치면 마치 직장 동료가 본가인 천안에 다녀와서는 "우리 지역 명물 간식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라며 동료들에게 나눠주는느낌이었달까. 모두의 마음속에 있었을 호두과자 대신 말이다.
내가 떠올린 영국의 스티키 토피 푸딩은 이렇게 생겼다. (사진 출처: The Great British Bakeoff)
하지만 이건 다 내 짧은 먹지식과 편견이 낳은 오해였다. 대체 누가 태국 디저트는 다 코코넛, 망고, 찹쌀, 판단잎, 바나나 같은 재료가 들어가야만 한다는 그런 무식한 생각을 품었단 말인가? (나다!)
알고 보니 영국식 토피 케이크와는 완전히 다른 태국식 토피케이크가 따로 있고, 이를 전문으로 하는 제과점들도 태국 곳곳에 있단다. 쫀득한 대추가 들어간스펀지케이크 위에 토피 소스를 붓는 영국식과달리, 태국의 토피케이크는 커피 향이 나는 촉촉한 모카 케이크 위에 꾸덕한캐슈넛 캐러멜 레이어가 올라간다.
태국식 토피 케이크는 요렇게 생겼다. (사진 출처: cooking.kapook.com)
게다가 동료가 토피케이크를 사가지고 온 촌부리 지역의 베이커리는 태국 관광청 웹사이트에 사람들이 줄 서서 케이크를 사가는 맛집으로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가게였다. (Toffee Cake Chonburi by Mattana)
그날 처음토피케이크의 존재를 알게 된 뒤로 어딜 가도 토피케이크가 마치 나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계속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걸 바더-마인호프 현상이라고 한단다.) 알고 보니 태국에서 토피케이크는 인기 메뉴라 베이커리 및 카페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단골메뉴라는것. 하지만 그존재 자체를 몰랐던 때에는 신기하게도 아무리 온 지천에 널려있어도 한 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은 당신도 다음번 태국여행 때는 토피케이크를 온갖 카페와 베이커리에서 마주치게 될것이니 기대하시라.
태국식 토피케이크의 원조 - Suan Dusit Home Bakery
태국식 토피케이크를 가장 처음 개발한 곳은 멀리 가지 않고 방콕에서 찾을 수 있다. 거의 40년 가까이 태국 현지인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토피케이크 맛집으로 불리고 있는, 쑤언 두싯 홈 베이커리 (Suan Dusit Home Bakery)가 그 원조다.
1986년 베이커리 설립 당시 관계자 여러 명이 공동으로 개발한 토피케이크 레시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곧 사람들이 줄을 서서 토피케이크를 사가는 맛집으로 자리매김했다. 초기 베이커리 설립 목적이 쑤언 두싯 교육대학의 가정학과 학생들을 위한 인턴쉽 장소로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도 학생 및 발달 장애가 있는 청년들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쑤언 두싯 홈 베이커리는 쑤언 두싯 대학교 (Suan Dusit University) 캠퍼스 내에 위치하고 있다.
태국식 토피케이크의 근원지답게 가장 클래식한 메뉴인 캐슈넛뿐 아니라 아몬드, 마카다미아, 허니까지 더해 총 네 가지 버전의 토피케이크를 판매한다.
허니 캐슈넛 토피 케이크 150g, 60밧 (약 2,200원)
아몬드 토피 케이크 140g, 65밧 (약 2,400원)
다양한 사이즈의 토피케이크가 진열되어 있다.
이전까지 내가 먹어본 기타 베이커리의 토피케이크들과 비교해서 다른 점을 꼽자면 우선 모카 케이크 식감이 아주 포슬포슬하고 가볍다는 것. 그리고 캐러멜 층에 짭조름한 맛이 더해져서 단맛이 더 극대화되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띈 것은 최근 많이 오른 방콕 물가에 비해 비현실적으로 저렴한 케이크 가격이었다. 가장 작은 네 개들이 상자가 42밧 (약 1,600원)부터 시작해 20조각 들이 큰 상자도 210밧 (7,800원)에 불과하다.
포슬포슬 촉촉하고 가벼운 식감의 모카케이크 위에 단짠 밸런스가 완벽한 캐슈넛 캐러멜이 올라가 있다.
베이커리에서는 토피케이크 이외에도 쿠키, 스콘, 롤케이크 등 태국의 일반 동네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메뉴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한두 가지 먹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토피케이크 한 상자를 손에 넣은 탓에 망설이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다양한 버터쿠키가 진열되어 있다.
알록달록 말린 과일이 들어간 미니 롤케이크
주먹만한 스콘
베이커리에서 빵을 구입한 뒤에 바로 옆에 연결되어 있는 카페에서 음료와 함께 시식할 수 있다.
베이커리와 연결되어 있는 카페
베이커리에서 구입한 토피케이크와 카페에서 구입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런 여행자에게 추천한다
두싯 지역에 다른 볼 일이 있다면 지나다 들러볼 만하다. 태국 현지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가 어떤지 구경해 볼 수 있고, 또 두싯 지역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구경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두싯 지역 근처에 딱히 올 일이 없다면, 방콕 도심에서 대형 세븐일레븐 매장을 찾아볼 것. 베이커리 섹션이 따로 있는 세븐일레븐 매장에 쑤언 두싯 베이커리의 토피케이크가 납품되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 들러 발견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 박스 집어보기를 권한다.
세븐일레븐 편의점 베이커리 섹션에서 판매되고 있는 쑤언 두싯 홈베이커리의 토피케이크
그리고 꼭 쑤언 두싯 홈 베이커리의 토피케이크가 아니더라도, 일반 카페나 베이커리에서 토피케이크를 발견한다면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태국 전역에서 사랑받는, 그리고 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 간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