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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Jun 13. 2023

내 마음대로 칠하고 먹는 케이크

색다른 재미가 있는 방콕의 아트카페

 

FUN Café Bangkok - 먹을 수 있는 내 작품


커피를 마시며 페인팅을 할 수 있다는 방콕의 아트카페를 찾았다. 근데 그 페인팅을 하는 캔버스가 독특해서 눈길을 끈다. 다름 아닌 케이크와 초콜릿으로 만든 조각상이기 때문이다.


방콕에 살면서 칵테일을 마시며 페인팅할 수 있는 바, 케이크 아이싱 하는 법을 배우는 워크숍 등은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케이크와 초콜릿에다 붓으로 페인팅을 한다니 이건 금시초문이다. 그럼 마지막에 씹어 삼켜서 소화시키는 것으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일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이 신선한 아이디어가 내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서정적인 풍경화를 그리고 있던 손님들
카운터에 진열되어 있는 초콜릿 비너스 조각상
11시 쯤엔 한산하다가 정오를 넘기자 거의 모든 테이블이 찼다.




페인팅 메뉴 고르기


조각케이크 캔버스의 가격은 155밧 (약 5,800원)으로, 시그니처와 초콜릿 두 가지 중에 고를 수 있다. 나는 현란한 색감에 홀려 시그니처 캔버스를 골랐다. 사실 맛은 포기한다는 생각으로 골랐는데 의외로 라임, 패션프룻, 딸기 맛의 조합이었다. 화려한 시트의 색감과 맛이 아주 잘 어울렸.

Fun 시그니처 조각케이크 캔버스. 가장 윗층부터 차례로 라임, 패션프룻, 딸기 맛이다.


초콜릿 비너스 조각상은 Blanc Chocolate (블랑 초콜릿, 화이트초콜릿+아몬드)과 Marron Espresso (마론 에스프레소, 다크초콜릿+에스프레소) 이 두 가지 옵션 중에 고를 수 있다. 가격은 155밧 (약 5,800원)으로 조각케이크와 동일하다.

Blanc Chocolate 비너스 조각상. 아래에는 아몬드와 라이스 크리스피가 흩뿌려져 있다.


원하는 메뉴를 골라 음료와 함께 주문한 뒤 결제를 마치면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그리고 흰색의 물감(처럼 보이는 식용 색소가 들어간 휘핑크림)이 얹어진 팔레트를 붓과 함께 건네준다. 그다음은 이제까지 내 안에 감춰왔던 화가의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줄 차례다.


나는 개나리색, 다홍색, 진홍색같이 따뜻한 계열의 색을 좋아한다. 딱 내가 고른 시그니처 캔버스의 색감처럼 말이다. 내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노오란 해바라기를 케이크 위에, 그리고 석양빛을 닮은 드레스를 비너스에게 입혀주었다.

심혈을 기울여 꽃잎 결을 살려보았다. 붓으로 섞을수록 휘핑크림이 덩어리지는 바람에 색을 섞기가 쉽지 않았다.
완성된 해바라기 케이크와 석양빛 드레스를 입은 비너스.  초콜릿이 확실히 난이도가 높았다.





재밌는 게 제일 좋아! FUN Café Bangkok의 콘셉트


"FUN"이라는 카페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안내해 주시는 직원분들의 톤, 공간 디자인과 색감, 메뉴 구성, 곳곳에 비치된 슬로건들 등 카페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재미"에 초점을 맞춘 콘셉트임을 강조하고 있. 카페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도 마치 "우리 재밌는 거 하고 놀자!" 하는 외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funcafebangkok 인스타그램  피드


막 도착해서 가게 외관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직접 문을 열어주러 저 안쪽 카운터에서부터 마중 나온 직원분과 마주친 이 순간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곳임을 느꼈다.

멀리서 친절히 마중나와주신 직원분..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주문을 하러 카운터 앞에 서자, 그 뒤에 옹기종기 모인 직원들 대여섯 명이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다 같이 "오오오-" 하면서 쑥스러운 듯 꺄르르 웃는다. 나도 쑥스러워 짧게 미소 짓고 말았지만 그 무해하고 꾸밈없는 반응이 귀여워서 속으론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그중 여기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된다는 미영 씨 (심지어 한국식 닉네임을 쓰고 있다!)는 한국어 전공자다운 유창한 한국어로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손가락 브이를 하며 사진에 기꺼이 담겨준 미영씨


FUN Café는 원래 호스텔 사업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로 여행 산업이 위기를 맞자 카페로 업종을 전환한 것이다. 손님들이 카페에 방문해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케이크와 초콜릿에 페인팅을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콘셉트를 그대로 모방한 다른 카페들이 방콕에 여럿 생겨나 FUN Café 아이디어의 참신함과 그 인기를 방증하고 있다.


핼러윈, 크리스마스 등 시즌마다 다양한 테마를 바꿔가며 운영하고 있어 페인팅 외에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의 테마는 점술이었다. 직원 한 분이 점서를 들고 내 테이블로 와서 지금 나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를 떠올린 뒤 책의 아무 페이지나 무작위로 펼쳐보라고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실망스런 문장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내 멋대로 이 점은 신통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리기로 했다. (그래도 재미는 챙김.)

 

현재 1층은 케이크/초콜릿에 페인팅을 하며 놀 수 있는 카페 공간이고, 4층에는 애견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올 8월부터는 지금은 비어있는 2층 공간에 티셔츠나 다양한 소품에 페인팅을 할 수 있는 아트 스튜디오 공간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4층 애견카페의 직원들을 소개하는 포스터




이런 여행자들에게 추천합니다.


방콕 여행 중 조용히 앉아서 내 안에 있는 예술가의 혼을 한 번 끄집어내 보고 싶다 하는 홀로 여행자에게도, 친구나 연인과 함께 색다른 추억을 만들고 싶은 그룹 여행자들에게도 모두 추천한다.


나는 혼자 방문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 시간이나 앉아 공예 활동이 주는 진한 기쁨들을 톡톡히 누렸다.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동시에 성취감으로 충만해지는 그런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여럿이 방문할 경우 함께 추억을 남기기에 제격인 포토부스도 준비되어 있다. 실제로 내가 방문한 날 나를 제외하고 모든 테이블이 2인 이상 손님들이었다. 대부분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와르르 들어와서는 그림을 그리고 셀카를 찍으며 수다 떠는 모습들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이런 표현을 쓰지만,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건전한 재미를 아는 방콕의 젊은이들이 여기 다 모여있네, 싶어서 말이다. FUN 카페의 재미를 추구하는 의도가 그대로 잘 실현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예약 없이 오픈 시간 중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방콕 여행 중 아트 워크숍이나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는 건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번거로워 망설여지지만, 짧게 한두 시간 손을 꼼지락거리며 집중하고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가벼운 액티비티를 찾는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선택지다.


오른쪽이 포토부스
건전하고 생산적인 재미를 아는 방콕의 젊은이들로 카페가 오후 내내 붐볐다.




영업시간

10AM - 7PM, 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funcafebangkok


위치

MRT 후아람퐁역에서 도보 7분

미드 수쿰빗 지역 (프롬퐁-텅러-에까마이)에서 택시로 25-30분


구글맵 링크


먹어버려 다시는 볼 수 없는 내 작품 한 번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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