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8년에 방콕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햇수로는 6년째 방콕에 살고 있다. 이제는 방콕살이가 꽤나 익숙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도시를 여행하듯이 즐긴다. 나에게 여행이란 거창한 계획이 필요 없는 산책 같은 것이다. 예컨대 처음 가보는 골목길의 새로운 풍경 속을 걷는 것. 자리가 편한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는 것. 근처 시원한 쇼핑몰에 들러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다시 길을 나서는 것. 그러다 발견한 맛있어 보이는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렇게 나는 여전히 틈틈이 여행을 하며 방콕에 살고 있다.
산책하듯 하는 여행은 오래도록 우리 기억 속에 남는다.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지도에선 보지 못했던감각적인 카페, 의외로 다정한 길고양이, 태어나 처음 보는 모양의 꽃, 기대하지 않았던 낯선 이의 친절 등과 마주친다. 그리고 여행을 마친뒤에는 그 모든 잔상이 이어서 펼쳐지며 마치 내가 그 동네에 살아본 듯 생생하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또 지도를 보고 얼마나 걸어왔는지 수시로 확인하며 누빈 길들은 그대로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오듯 오롯이 내 것이 된다. 택시를 타고 한 장소에서 다음 장소로 순간이동 하듯 다닌 여행은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 도시를 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데 말이다.
비밀스런 방콕 산책의 각 챕터는 방콕의 여러 동네를 구석구석 탐방하며 산책하듯 여행할 수 있도록 숨은 동네맛집, 카페, 공원, 쇼핑스폿 등을 걸어갈 수 있는 거리 내 한 동선 안에 묶어서 소개한다. 여유로이 걸으며 방콕의 한 동네 전체가 내 것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기를. 또 그렇게 걷다가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더 멋진 장소들을 발견하게 되기를. 그렇게 당신의 방콕 여행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땡볕에 땀을 흘리며 걷는 자유로움
내 취미가 걸어 다니면서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일이라고 하면 현지인이건 외국인이건 가리지 않고 내게 물어오는 질문이 있다.
방콕은 걸어 다니기에 너무 덥지 않아?
덥다. 그래 덥지. 그런데 더워서 좋다는 게 내 대답이다.
더운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올려다본 방콕 하늘. 손톱보다 작은 잎사귀들 수만 개가 촘촘히 모여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는 머리가 녹아내릴 만큼 무더운 한낮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나의 필명인 소랑은 '아주 밝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나는 방콕에 살면서 내가 아주 밝고 노오란 레몬색 아침햇살을 오렌지빛 지는 석양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그 밝은 햇살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걸어 다니는 것으로 삶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는 것도 방콕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다.
놀랍게도 나는 원래 여름을 강박적으로 싫어했다. 땀이 유난히 많은 탓에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이창피했기 때문이다. 온 신경이 땀방울에 가 맺히고모든 사고회로가 정지되는 것 같은 그당혹스러움은 겪어본 이들만 알 것이다. 나는 여름이 두려웠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방콕은 일 년 내내 최고기온이 32도를 넘는 열대지역이다. 더움을 피할 수 없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피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면 된다? 즐기면 된다.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마음을 고쳐먹었다.땀을 흘리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내려놓고, 아예 작정하고 '땀을 흘리러'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간단한 생각의 전환이었을 뿐인데 여기에서 나는 엄청난 자유를 얻었다. 이제는 내가 땀을 흘리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아 땀이 나네, 닦아야지.' 정도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더운 날씨나 흐르는 땀방울에 내 소중한 정신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집착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바깥세상에 내 정신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눈부시게 파아란 하늘, 다정한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 처음 보는 꽃의 코 끝을 간질이는 달달한 향기,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낯선 이의 따뜻한 미소가 내 마음에 한아름 들어온다. 그리고 이렇게 튼튼한 두 다리로 방콕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내가 아는 이 멋진 도시의 테두리를 조금씩 넓혀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좀 더우면 어떻고, 땀이 좀 나면 어때? 햇살 소랑한 방콕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걷는 자유를 느껴보고 싶다면, 그렇게 걷다 근사한 카페에 들러 숨 좀 돌리고, 동네 식당에 들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면. 비밀스런 방콕 산책 시리즈에 담긴 동선을 따라가면 된다.
미리 보기: 비밀스런 방콕 산책에서 소개할 장소들
무더운 방콕을 가벼운 마음으로 거닐다 보면
이런 낭만적인 풍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가
시내 한복판에서 누군가의 비밀 정원 같은 카페를 발견하기도 하고
한적한 골목에서 천국의 맛이 나는 홈메이드 토피케이크를 영접하기도 한다.
처음 보는 휴먼 앞에서 요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사랑스러운 냥이를 만나 같이 놀다가
열을 좀 식힐 겸 잠시 들른 동네 책방에서 얻은 뜻밖의 영감을
아트 카페에서 나만의 '먹을 수 있는 예술'로 승화시켜보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도시 곳곳에 뻗어있는 불꽃나무의 영롱한 자태에 시선과 마음을 홀라당 빼앗겨도 보고,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디저트 찐맛집에 들러 야무지게 간식 몇 개 사들고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귀가하는, 비밀스런 나만의 방콕 산책길. 망설이지 말고 따라오시라.
고마해라, 다 가봤다 아이가
이미 예상했겠지만 이 시리즈에 카오산로드, 왕궁, 텅러, 터미널 21은 없다. 그 대신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방콕의 매력 넘치는 장소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방콕 여행이 처음인 이들도, 방콕에 여러 번 다녀간 이들도 모두 방콕의 숨은 매력에 풍덩 빠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부디 새로운 방콕이 여러분들에게 펼쳐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