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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Jan 01. 2024

방콕 속 작은 유럽 & 베트남

세 번째 산책길: 두싯

유럽인듯 베트남 아닌 태국 같은 너, 두싯


이번 비밀스런 방콕 산책은 두싯 지역으로 떠난다. 방콕 여행자들의 성지인 카오산로드와 왕궁이 있는 올드타운 바로 위쪽 동네인데, 의외로 관광객들의 레이더망에서는 빗겨 나 있다. 주말에도 평화로운 정취를 느끼며 산책할 수 있는 동네다.


두싯은 유럽풍으로 설계된 태국의 왕실·정치·행정 중심지다. 이 지역이 태국 속 작은 유럽으로 재개발된 시기는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국 군주로서 최초로 유럽을 방문한 라마 5세가 유럽의 넓은 도로와 녹음이 우거진 도시 경관에 영감을 받은 것이 그 계기가 됐다. 그는 두싯을 웅장하고 현대적인 '로열 시티'로 재개발했다. 서울에 비교하자면 두싯은 행정 구역상 '구'에 해당하는데, 전체 구 면적의 1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왕실 단지와, 태국 총리관저,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기타 수많은 국가행정기관 청사들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유럽풍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어 이 지역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두싯 궁전은 총 13채의 각기 다른 왕실 저택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왕실 단지다. 사진은 그중 하나인 암폰사탄 대저택(Amphorn Sathan Residential Hall)
빠룻싸까완 대저택(Parutsakawan Palce)은 라마 5세의 아들과 그의 우크라이나인 부인이 함께 살았던 곳이다. 현재는 태국 국가정보원 본부 및 경찰박물관으로 쓰인다.

사진 출처: Ananta Samakhom Martinp1 & 태국관광청


두싯의 또 다른 한 편에는 방콕의 작은 베트남이라 불리는 반유안(Baan Yuan) 커뮤니티가 자리하고 있다. 200년이 훌쩍 넘은 베트남계 이주민들의 살아있는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만약 이번 여행을 태국으로 갈까, 베트남으로 갈까 고민하다 방콕으로 결정했다면, 반유안에 들러 태국 속 베트남까지 경험하는 것으로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려볼 수 있겠다.

두싯 산책길. 알차게 먹고, 알차게 걸을 예정. 선크림 필수!

오늘 우리는 유럽 같지만 유럽은 아닌, 또 베트남 같지만 베트남도 아닌, 태국스러운 길을 따라 걷는다. 경계에 걸쳐있는 그 모호함이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곳이다. 여기서 오늘 소울이 담긴 태국식 베트남 식사 한 끼, 태국식 서양 디저트, 그리고 책, 고양이, 술이 있는 독립서점을 만나러 산책을 떠나보자.

두싯 산책을 시작합니다!




두싯 산책루트 구글맵 리스트


이 글에서 다 소개하지 못한 장소들까지 포함해 전부 아래 구글맵 리스트에 넣어두었으니, 저장해 두었다가 여행 때 참고하면 된다.





1. 방콕의 작은 베트남, 일요일 아침 시장 (Baan Yuan Community)


오늘의 산책은 일요일 오전 8시 반에 시작한다. 자칫 늑장 부렸다가는 일주일에 딱 하루, 딱 그 시간대에만 구경할 수 있는 이 베트남 마을의 아침시장을 놓칠 수 있어서다. 반 유안(Baan Yuan)이라고 불리는 이 동네는 베트남 정부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1700-1800년대에 태국으로 피난온 이민자들이 대대손손 정착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천주교인들이 모여 일군 지역이기에, 자연스럽게 성당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두 성당이 골목 하나를 두고 나란히 위치해 있는데, 그중 원죄 없는 잉태 교회(Immaculate Conception Church)는 1674년에 지어진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당이기도 다.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성당. 1834년 당시 라마 3세 태국 국왕이 이 지역의 증가하는 가톨릭 베트남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땅과 건설비용을 기부하여 지어졌다.
일요일 오전, 성당 안과 밖에서 미사에 참여 중인 신도들

오늘 우리가 방문할 아침 시장 역시 두 성당 근처인 쏘이 삼센(Soi Samsen) 11길과 13길에서 열린다. 평일에도 몇몇 노점상들은 문을 열지만, 미사에 참례하는 교인들이 드나드는 일요일 이른 아침시간대에 가장 활발한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처음엔 호치민의 벤탄시장같이 북적이고 베트남스러운 분위기를 기대하고 왔다가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바쁘다는 일요일 아침에도 꽤나 조용하고, 베트남어로 된 간판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상인과 주민들 모두 서로 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의아했다. 방콕의 베트남 마을이라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제는 이 커뮤니티 내에서도 베트남 전통과 문화를 철저히 계승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소수라고한다. 베트남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은 이제 이 동네에 단 네 가족밖에 남지 않았고, 대부분이 태국 현지에 완전히 융화되어 태국 국적과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더 북적대던 일요일 아침 시장도 지금은 그 규모가 많이 작아진 편이다.


태국과 베트남 사이 어딘가에 걸쳐있는 그 모습이 바로 이 시장의 매력이다. 태국인과 베트남인의 정체성 모두를 가지고 살아가는 상인분들, 태국식으로 현지화된 베트남 길거리 음식, 그리고 태국 슈퍼마켓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찐 베트남 식재료들을 파는 식료품 노점상도 찾아볼 수 있다.


일요일 아침 경건한 분위기  성당 주변 골목길을 걸으며 시장을 구경해 보자. 상인분들과 대화를 해보면 시장의 에너지를 더 직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씬짜오(xin chào)'라고 베트남어로 아침 인사도 건네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음식이 보이면 이것저것 여쭤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주전부리가 눈에 띈다면 망설이지 말고 몇 가지 사들고 다음 장소로 출발해 보자.

반꾸온(Bánh cuốn) 카트. 부드러운 쌀가루 반죽 안에 다진 고기와 야채가 들어간다.
베트남계 이민 3세 야(Ya) 씨가 운영하는 식료품 노점상. 베트남식 소시지와 베트남에서 물 건너온 식료품들을 판매한다.
여기에서 베트남식 칠리솔트와 분보후에 육수팩을 득템했다.
성당 앞쪽에서 간식거리와 꽃을 판매하는 노점상
베트남 간식인 반가이 (bánh gai)를 비닐봉지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 채로 팔고 계셨다.
검정깨가 들어가 새카만 찹쌀 반죽 안에 부드럽고 고소한 녹두 소와 코코넛이 들어가 있다. 바나나향을 첨가해 식감은 우리 떡과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향과 맛이 났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태국 방콕에서 만나는 작은 베트남 글에서 읽어볼 수 있다.


운영시간: 일요일 6 AM-10 AM


구글맵 링크:




2. 빠 께 냄느응 (께 이모네 냄느응, Pa Ke Naem Nueang)


방콕의 베트남 마을을 산책하면서 베트남 식당에 들르지 않을 수 없지! 하지만 식사 전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베트남 음식은 흡사 우리나라의 짜장면 같다는 흥미로운 사실.

혼자 먹은 양이다 (자랑)

짜장면은 중국 산둥반도 출신 화교들에 의해 한국식으로 진화한 요리다. 그러니 중국 현지에서는 그 기원이라 할만한 짜장면과 비스무리한 음식은 찾을 수 있어도, 짜장면과 완전히 똑같은 음식은 찾을 수 없다. 이와 비슷한 결로, 태국의 많은 베트남 식당들 역시 이민자들에 의해 여러 세대에 걸쳐 태국식으로 현지화되었다. 때문에 베트남 음식 이름에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베트남으로 날아가면 이와 똑같은 음식은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소개하는 빠 께 냄느응(Pa Ke Naem Nueang)도 그런 식당이다. 식당의 주인이신 께 이모님(Pa Ke) 역시 베트남 이민자의 자손으로, 그녀의 가족은 이 동네에서 아직까지 베트남어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족들 중 하나다.


나는 이전에 방콕에서 '오리지널' 현지식 베트남 음식을 꼭 찾아 먹고 말겠다는 집념으로 이 식당 저 식당 전전하고 다닌 이력이 있다. 하지만 께 이모님의 소울이 담긴 손맛 앞에서 그간 내 멋대로 정의한 '오리지널'에 대한 집착 따위는 하등 쓸모가 없어졌다. 태국식 베트남 음식을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한 마디로 가짜라고 분류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태국식 베트남 음식에는 그만의 진짜배기 소울이 담겨있다. 그리고 잘하는 집을 찾으면 눈 뒤집어지게 맛있다. 딱 한국의 짜장면처럼 말이다.


게다가 방콕의 베트남계 이민자들의 자취를 따라 걸은 오늘 같은 날, 이모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시는 음식보다 적절한 아침 메뉴가 있을 리 없다. 가격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저렴하니 꼭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성당 앞 카트에서도 봤던 반꾸온(Bánh cuốn). 부드럽고 얇은 쌀가루 반죽에 다진 고기와 야채가 들어가 있다. 태국에서 먹어본 반꾸온 중에 제일 맛있었다.
돼지고기를 라이스페이퍼, 잎채소, 바질, 민트와 함께 쌈 싸 먹을 수 있는 냄느응. 야채를 길쭉하게 써는 대신 이렇게 깍둑썰기한 모양이 전형적인 태국식 냄느응의 모습이다.
파삭파삭하고 김이 나도록 뜨거웠던 스프링롤. 나는 여기에서 이 식당의 소울을 느꼈다.
모든 메뉴가 100밧(약 3,700원) 이하로 엄청나게 저렴하다.
쏘이 삼센 11길과 13길이 맞닿는 사거리에서 보이는 저 주황색 사인을 따라가면 된다.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이런 샛길이 나있다.  이 골목으로 주욱 걸어 들어가면
그 끝에 께 이모네 집이 나온다.


영업시간: 9 AM - 6 PM / 월요일 휴무


구글맵 링크:




3. 쑤안 두싯 홈 베이커리 (Suan Dusit Home Bakery)


배가 부르니 다시 일어나 걸어보자. 이제 해가 점점 뜨거워지는 시간대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지금 발걸음도 가벼운 디저트를 먹으러 가는 길이다. 태국의 근본 디저트라 할 수 있는 토피케이크 처음 개발한 베이커리가 우리의 목적지다. 빠 께 냄느응에서 약 10분 정도 큰 도로변을 따라 걸으면 나오는 쑤언 두싯 대학교(Suan Dusit University) 캠퍼스 안에 위치하고 있다.

태국의 토피케이크는 한국의 길거리 와플과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둘 다 본질적으로는 물 건너온 출신이 분명한데, 오래전부터 현지화되어 국민들 마음속에는 '우리 간식'으로 자리 잡은 주전부리라는 점이 그렇다.

 바삭하게 구운 와플에 생크림과 애플잼을 반반씩 펴 발라 접은 한국식 추억의 길거리 와플. 사진출처: Yum Honey 블로그

따지자면 유럽 출신인 우리 길거리 와플처럼, 태국의 토피케이크 역시 따지자면 서양식으로 구워내는 디저트다. 하지만 촉촉한 커피 향 모카 케이크 위에 꾸덕한 캐슈넛 캐러멜 토핑을 올리는 이 고유한 레시피는 1980년대에 태국에서 개발되었다. 해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독특한 토피케이크가 태국에서는 일반 베이커리나 카페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근본 디저트 메뉴로 팔리고 있다.


그리고 이 토피케이크를 가장 처음으로 개발한 곳이 바로 여기, 쑤언 두싯 홈 베이커리다. 80년대부터 줄곧 사람들이 줄을 서서 토피케이크를 사가는 전설의 맛집으로 불리는 곳이다. 예전에 태국 명물 디저트, 토피케이크라고 들어봤나 글에서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다.

포슬포슬 가벼운 식감의 모카케이크 위에 달콤, 짭쪼롬, 꾸덕한 캐슈넛 캐러멜이 올라가 있다.
가장 클래식한 메뉴인 캐슈넛뿐 아니라 아몬드, 마카다미아, 허니까지 더해 총 네 가지 버전의 토피케이크를 판매하고 있다.
가장 작은 네 개들이 상자가 42밧 (약 1,600원),  20조각 들이 큰 상자는 210밧 (7,800원)으로 최근 많이 오른 방콕 물가를 감안할 때 아주 저렴한 가격이다.

일정상 귀국이 머지않았다면, 이 베이커리에 들른 김에 몇 상자를 선물용으로 구매해 가는 것을 추천한다. 첫인상에 그 출신이 의심스러워 보일 수는 있어도, 알고 보면 찐 태국간식이라 태국 여행 선물로 아주 적절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인이 열렬히 좋아하는 단짠의 조화가 있는 맛이라는 점. 참고로 최근에는 세븐일레븐에도 납품되고 있다.

최근 세븐일레븐에서 판매되고 있는 쑤언 두싯 홈베이커리의 토피케이크 신제품. 가격은 52밧 (약 1,900원) / 사진출처: newsbeezer


영업시간: 월-금 7:15 AM-6 PM / 토일 7:30 AM-5 PM


구글맵 링크:




4. 엉꾼 카페 (Ongkul Cafe)


만약 앞 산책 일정을 모두 마쳤는데 아직 오후 12시가 되지 않았다면, 잠시 열 좀 식히고 숨도 돌릴 겸 들렀다 가기에 좋은 카페다. 오늘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가 딱 오후 12시가 되어야 문을 열기 때문이다.


엉꾼 카페는 '이런 곳에 이런 카페가 있다고?' 싶은 곳에 위치해 있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고 구멍가게가 한두 개 있는 주거지 골목길이다. 카페 자체도 가정집 일층을 카페로 개조한 것 같은 느낌이 난다. 하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두 가지에 놀란다. 아늑하고 세심하게 꾸며진 공간과, 맛있는 홈메이드 케이크.

사장님이 직접 만드는 다양한 케이크가 특별한 곳이다. 간단한 식사 메뉴(팟끄라파오, 닭고기 덮밥, 파스타, 등)도 있어서 식사를 하는 손님들도 간간이 보인다. 우리는 이미 든든하게 식사에 디저트 코스까지 마치고 온 상태이지만, 여기서 케이크를 안 먹고 나가면 또 아쉽다. 잠깐 앉아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케이크 한 조각 하면서 12시가 되기를 기다려보자.

이렇게 마카다미아가 산더미처럼 올라간 사장님 표 토피 케이크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꾸덕 촉촉 달콤 짭쪼름, 너무 맛있어서 혼자 먹기 아까운 맛
디저트 덕후라면 태국에 와서 이거 안 먹고 가면 진짜 섭섭하다. 부드러운 영코코넛과 우유크림으로 만드는 케이크.
오렌지 케이크도 태국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보이는 케이크 메뉴 중 하나다.


영업시간: 월-금 7:30 AM-4 PM / 토일 9 AM-4 PM


구글맵 링크:




5. 어 북 위드 노 네임 (이름 없는 책, A Book with No Name)


우리의 두싯 산책의 마무리를 책임질 곳은 바로 여기, 일명 책덕후들의 아지트다. 책과 고양이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숨겨진 보물 같은 장소다.

우뚝 솟은 커다란 나무 뒤로 빼꼼히 숨어있는 상점 하나. 아무리 은둔하고 있어도 그 강렬한 존재감을 감출 수 없다.

이 비밀스런 공간은 대학동기로 만난 두 명의 젊은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독립서점이다. 서점의 공동대표인 까(Ka)씨와 도넛(Donut)씨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2018년, 독립 서점 겸, 카페 겸, 책 덕후들의 모임공간A Book with No Name (이름 없는 책)이 탄생했다.

차곡차곡 진열된 책, 빈 술병, 식물, 그리고 책 표지와 작가들의 얼굴이 담긴 액자들이 그 위를 빼곡히 채운다.
정돈을 중요시하는 맥시멀리스트의 서재가 이렇게 생겼을까? 이 혼돈과 그를 지휘하고 있는 질서가 놀랍도록 조화롭다.

태국어로 번역된 전 세계 문학 및 철학, 정치, 예술 관련 서적을 판매하고 있다. 모든 책들은 사장님 두 분이 직접 읽고 선별한다. 본인들이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생생한 경험과 감정들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유심히 책을 고르고 구입해서 읽다가 나가신 손님

문학과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교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북토크, 라이브 재즈 공연, 시 낭독회, 영화 상영회, 책포장 워크숍, 등)를 주최하기도 한다.

지난 5월 개최한 개점 5주년 기념 낭독회 포스터

작가들의 최애 칵테일에서 영감 받은 음료 메뉴가 재미있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제목을 따라 토르티야 플랫(Tortilla Flat)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료는 그의 최애 칵테일인 잭 로즈(Jack  Rose) 레시피에서 영감을 받았다. 애플잭 브랜디를 에스프레소와 사과차로 대체했다. 도넛씨가 추천하는 메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가장 좋아한 음료인 모히또에서 럼주를 커피로 대체한 에스프레소 모히또(Espresso Mojito).

카페인이 그다지 당기지 않는 문학덕후들을 위한 음료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도넛씨는 톰과 제리(치즈 크래커가 들어간 밀크셰이크) 또는 해리포터의 버터 비어(캐러멜, 우유, 얼음을 갈아 만든 셰이크)를 추천한다.

왼쪽: 라임주스와 에스프레소의 조합인 Pisco Coffee / 오른쪽: 해리포터에서 영감을 받은 버터비어
홈메이드 레몬 파피시드 쿠키와 라떼
바쁘게 음료를 준비 중인 도넛씨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책 판매와 카페 수익만으로는 이 서점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서점 운영을 지속하기 위해 까씨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림 수업을, 도넛씨는 다국적 기업에서 헤드헌터 일을 병행하고 있다. 언젠가는 서점 규모를 키워 널따란 뒷마당이 있는 공간에서 서점과 화원을 함께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서점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작업도 하는 까씨의 작업공간

서점에서는 태국어 서적만을 취급하지만, 태국어를 모르는 이들도 언제든지 환영이다. 왜냐? 이 서점에는 또 다른 비밀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네 마리의 귀엽고 똥실똥실한 고양이들. 부드럽고 뽀송뽀송한 회색 고양이를 빼고는 모두 다 보호소에서 입양해 왔다.

11살 시목이. 이름은 태국어로 '안개색'이라는 뜻이다.

태국어 책을 읽을 수 없는 외국인 손님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즐기는 것이 좋겠냐는 물음에 까씨는 평온한 얼굴로 "이렇게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거기에 맛있는 음료와 맥주는 보너스다.

시목이를 쓰다듬는 까씨의 얼굴에 퍼진 가진 자의 미소
이 집의 막내, 3살 파묵이. 눈처럼 하얀 파묵이의 이름은 Snow 라는 소설을 쓴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이름에서 따왔다.
곧 여섯 살이 되는 이 따뜻한 색의 고양이 이름은 태국어로 오븐이라는 뜻의 따오.
4살 미츠. 태국어로 '이름 있음'이라는 뜻이다. 서점의 이름은 '이름 없는 책'이지만, 난 이름 있어!라고 외치는 익살스럽고 귀여운 이름.

가 이곳에서 목격한 손님들의 양상은 실제로 아주 다양했다. 혼자 창가에 몇 시간이고 앉아 가져온 책을 읽던 손님, 달달한 초콜릿 음료를 주문해 한 번에 쭉 들이키고 고양이를 한 두 번 쓰다듬고 나간 손님, 랩탑을 들고 와서 고양이가 자기 발냄새를 맡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일하던 손님, 휘리릭 책만 구입하고 바로 나간 손님..


학과 예술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사람들을 이어주는 장소이만, 이벤트가 없는 대부분의 날들에는 혼자 오는 손님들의 아지트 역할을 한다. 혼자 슬그머니 방문해 타인과 어떠한 교류도 없이 각자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얻어가지고 나갈 수 있는. 함께 속에 혼자일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은신처다.

그 안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서점의 이름 A Book with No Name (이름 없는 책)은 록밴드 America의 노래 제목 A Horse with No Name (이름 없는 말)에서 따왔다. 작사를 맡은 밴드 멤버 듀이 버넬(Dewy Bunnel)은 한 인터뷰에서 '이름 없는 말'이 은유하는 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삶의 혼란에서 벗어나 우리를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데려다주는 매개체

이 서점에 빗대어 봤을 때 꽤 정확한 은유인 것 같다. 바쁘고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 위로와 안정이 필요할 때 찾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니 말이다.

서점이란.
타임머신이자 우주선
이야기꾼이자 비밀수호자
드래곤 테이머이자 드림캐쳐.
그리고 안식처.


'당신의 꿈은 월급 받으면서 책 읽기'
'난 독서광, 후회 따위는 없다.'
안녕, 또 놀러 와!


영업시간: 12 PM-7 PM / 월요일 휴무


구글맵 링크:




6. 마켓 플레이스 두싯 (Market Place Dusit)


나는 산책을 이런 동네 쇼핑몰에서 마무리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마지막에 슈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고, 무거운 물건들을 들고 걸어 다닐 필요 없이 바로 택시를 불러 귀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책 중간에 들른다면 깨끗한 화장실도 사용하고, 시원한 물 한 병을 사서 목도 축이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열을 식히기에도 좋다. 마켓 플레이스 두싯에는 탑스 슈퍼마켓과 여러 프랜차이즈 식당 및 카페들이 입점해 있다. 두싯 산책은 시원하게 여기에서 마무리한다.


영업시간: 10 AM-10 PM


구글맵 링크:




두싯 산책루트 구글맵 리스트

이 글에 나온 모든 장소들 + 추가 장소들이 아래 구글맵 리스트에 저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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