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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Mar 11. 2024

방콕 남의 집 정원 따라 걷는 꽃놀이

여섯 번째 산책길: 프라카농

꽃과 정원, 그리고 낭만이 있는 프라카농 산책길


2020년 5월은 한 달 동안 총 135km를 걸었다. 이 수치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 바로 전 달에 걸은 거리가 0km였기 때문이다. 그 해 4월은 코로나가 방콕에 급속도로 퍼지며 재택근무를 시작한 달이었다. 마치 찐 집순이임을 증명할 기회라도 얻은 것처럼 나는 자진해서 4월 한 달 동안 빌딩 밖으로 정말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집순이의 행복한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눈 깜짝할 새에 5월이 되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한 달째 별다른 움직임 없이 지내니 몸이 찌뿌둥한 수준을 넘어 점점 건강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도, 체육관 폐쇄도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재택근무 덕에 한결 여유로워진 아침 시간에 늦잠을 자는 대신 동네 산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가볍게 집 주변 산책부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시간에 걷는 방콕은 선선한 데다 고요하고 햇살로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이렇게나 좋은 걸, 진작 좀 나와서 걸을걸!


자진해서 방 안에만 갇혀 지낸 지난 한 달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아낼 기세로 5월은 거의 매일 아침마다 빠지지 않고 집 밖을 나섰다. 복잡한 출근길 대신 조용한 주택가 골목을 걷는 순간의 설렘은 갈수록 잦아들지도 않고 매번 새로웠다. 집 주변에서 시작해서 점차 옆 동네, 또 그 옆 동네로 나만의 산책로를 넓혀나갔다. 처음 가보는 길을 걷는 아침에는 특히 더 들떴다.

푸르게 반짝이는 방콕의 아침

그중에서도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길이 몇 군데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찾아도 매번 새로운 두근거림을 주는 길들. 이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온통 싱그러운 식물로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푸르고 무성한 나무와 색색깔 고운 꽃으로 수놓아진 골목길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황홀한 광경에, 향긋한 풀내음에, 그 순간만큼은 일상의 모든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우리의 비밀스런 여섯 번째 방콕 산책길은 내가 2020년 5월 어느 아침에 처음 만난 길 중 하나다. BTS 에까마이역과 프라카농역 사이에 위치한 쑤쿰빗 65번 길을 통해서 들어간다. 귀가 먹먹하게 시끄러운 쑤쿰빗 대로변에서 고요한 주택가 골목으로 쏙 숨어들 듯이 시작하는 산책이다. 저층 주거 빌딩과 개성 있는 단독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고즈넉한 길을 걷는다. 보석 같은 카페들이 곳곳에 숨어있어 지칠 틈이 없는 산책이 될 예정이다. 그렇게 걷다가 쉬다가 또다시 걷다가, 마지막에는 맛있는 간식을 사가지고 뿌듯한 마음으로 산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적한 골목길을 따라 아름답게 흐드러진 꽃이 일 년 내내 우리를 반겨주는, 방콕의 도심 속 골목길 꽃구경을 떠나보자.

프라카농 산책코스 지도. BTS 에까마이역과 프라카농역 중간에 있는 쑤쿰빗 65번 길을 따라 올라가서 71번 길 대로변을 따라 다시 프라카농 역까지 내려오는 루트.
BTS 에까마이 역에서 프라카농 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65번 길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프라카농 산책루트 구글맵 리스트


이 글에 나온 모든 장소들 + 추가 장소들을 아래 구글맵 리스트에 넣어두었다. 저장해 뒀다가 여행할 때 참고하면 된다.





쑤쿰빗 65번 길 프라카농 산책길 (Sukhumvit Soi 65)


쑤쿰빗 65번 길 초입은 몇 년째 공사 중이다. '정말 이 골목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은가?' 싶은 다소 거친 분위기를 풍긴다.

이 길로 들어가는 것이, 의심스러울 수 있지만, 맞다.

의심을 거두고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곧 따스한 분위기의 복작거리는 아침시장이 나타난다. 주민들의 가벼운 아침식사가 되어주는 간단한 요깃거리들과 채소, 과일 등을 파는 작은 규모의 노점들이 줄지어있다. 이 조촐한 규모의 시장을 지나고 나면 비로소 진정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거기서부터는 걸어 다니는 사람보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자전거, 오토바이, 차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여느 방콕 동네처럼 인도가 따로 없으니 앞, 뒤, 양 옆을 잘 살피며 걸어야 한다.

조촐한 시장이 열리는 쑤쿰빗 65번 길 중간 길목
시장 근처에 위치한 사당 명당에 자리를 잡고 한창 꿈나라를 헤매는 중인 고양이
이 코너를 돌면 진정한 고요함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턴 걸어 다니는 사람보다 자전거, 차, 오토바이가 더 많다. 주위를 잘 살피며 걸을 것.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도저히 빨리 걸을 수 없는 구간들이 나온다. 지나치는 모든 집의 정원이 내 시선을 잡아끌어서다. 가정집에서 가꾸는 나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하고 울창하게 뻗은 나무, 열대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태어나 처음 보는 모양의 꽃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고개를 뒤로 한껏 꺾어 재껴도 그 꼭대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나무가 가정집에, 게다가 한 집도 아니고 곳곳에 있다니!

집집마다 정원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점도 재미있다. 질문과 상상을 멈출 틈이 없다. 이렇게 낭만적으로, 혹은 거칠고 야생적으로, 혹은 칼각으로 깔끔하게 정원을 가꾸고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런 정원을 만들었을까? 정원 관리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까? 앞마당에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르게 아름다운 식물과 함께 사는 기분은 어떨까?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식물이 없는 삶보다는 왠지 풍요로울 것 같다- 같은 시시콜콜한 질문과 생각을 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핑크색 우편함 위에 핑크색 덩굴이 하트가 쏟아지듯 흘러내리는 누군가의 담장
빼꼼! 하고 튀어나온 식물에서 재치가 느껴지는 또 다른 누군가의 담장
마치 식물로 알록달록한 프레임을 짜놓은 듯 안정감이 느껴지는 누군가의 대문
누군가의 정원에는 이렇게 탐스러운 잭프룻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있고
또 다른 담장에는 별사탕이 쏟아지는 것 같은 랑군 크리퍼 (Rangoon Creeper) 꽃이 한 무더기 있고
다른 누군가의 지붕 위에는 붉은 프랑지파니 나뭇가지가 도란도란 솟아나있다.

앞만 보고 걸어버리면 놓치게 되는 찬란한 광경도 있다. 고개를 뒤로 획 젖혀서 하늘만치 올려다봐야지만 자세히 볼 수 있는 꽃들이다. 땅을 보고 걷다가 만약 처음 보는 모양의 꽃잎 같은 것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면,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고 당장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봐야 한다.

담장에 실 같은 꽃잎이 잔뜩 떨어져 있는 모습에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아직 열매를 맺기 전인 로즈애플 꽃(시지기움 얌보스)이 피어있다.
고양이 발톱만 한 크기의 꽃 수백송이가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광경을 발견하고 위를 쳐다보면
눈송이 맺힌듯 만발한 스노우벨 꽃이 피어있다.
하늘까지 솟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트럼펫 모양의 골든 찰리스 바인 꽃(golden chalice vine)
담장 너머로 하늘 높이 뻗어있는 프랑지파니. 나는 이 나무의 힘 있고 곧게 뻗은 나뭇가지의 모양을 좋아한다.
붉은 프랑지파니 나무. 내 정원이 생긴다면 꼭 널 일순위로 심고 말겠다.
 홍콩의 상징인 양자형 꽃도 마주쳤다. 꽃잎이 활짝 펼쳐진 모양이 자유롭고 아름답다.
꽃에 검은 열매가 매달린 모양 때문에 미키 마우스 트리라고도 불린다는 오크나 세룰라타. 앙증맞고 귀엽다.
어느날 꽃구경 끝에 만난, 땀 흘리며 산책하는 휴먼을 경계하는 귀여운 냥이들. 안녕!


걷다 지친 산책러들의 쉼터가 되어줄 카페들


골목길을 따라 꽃구경을 하며 쉬지 않고 걷다 보면 땀도 좀 나고 더위에 지쳐서 쉬고 싶은 타이밍이 찾아온다. 그런 순간에 들어가 자리 잡고 앉아서 시원한 에어컨바람을 맞으며 열을 식힐만한 카페 네 곳을 추천한다.


오늘 우리가 걷는 프라카농은 '카페 호핑'에 최적화된 동네다. 커피가 맛있고, 자리도 편하면서, 공간 안팎의 풍경까지 아름다운 수많은 카페들이 골목 사이사이에 숨어있다. 취향에 맞는 곳들만 골라도 그 수가 넘쳐나서 오늘 산책 테마에 어울리는 곳들만 추려내려 해도 한 손안에 꼽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의 산책길 소개가 카페 추천 글로 변질되는 것이 우려되니, 아래 소개하는 카페 네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글머리에서 공유한 구글맵 리스트에 넣는 것으로 대체한다.

 



쉬어갈 카페 1. 쁘리디 (PRIDI)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에 비밀스런 정원이 딸린 브런치 카페다. 방문 전에는 여러모로 '인스타 핫플' 느낌이라 모델처럼 차려입고 사진을 수백 장씩 찍으러 오는 사람들로 가득할 것 같았는데, 내 오해였다. 의외로 혼자서, 친구 또는 커플끼리 평범하게 브런치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구성이 알찬 브런치 메뉴와 카페에서 직접 로스팅하는 원두로 내리는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카페 뒤쪽에는 풀이 무성하고 마치 오래 방치된 것 같은 스산한 분위기의 정원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 군데군데 누군가 살뜰히 돌본 흔적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레노베이션 중인 걸까? 탐정이 사건 현장을 샅샅이 훑어보듯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PRIDI 로고가 너무 앙증맞고 귀엽다.
오래된 가정집 공간을 개조했다.
방치된 것처럼 스산한 느낌이 나는 카페 뒤편 정원. 연못이 말라있다.
영화 기생충 홍경표 촬영감독의 싸인이 담긴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탐스런 무화과가 올라간 페이스트리
사워도우 맛집이 분명하다. 샌드위치, 파스타 등 다양한 브런치 메뉴가 있다.


영업시간: 8:30 AM-5:30 PM, 월요일 휴무


구글맵 링크



 

쉬어갈 카페 2. 크름 카페 (Kreum Cafe)


아늑하고 감각적인 공간에서 마치 방콕의 한 가정집에 놀러 온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카페다. 기업 인사과에서 오랜 기간 재직하다 은퇴하신 사장님이 카페를 직접 운영하신다. 식물로 빼곡히 수놓은 입구에서부터 카페를 둘러싼 수려한 정원까지 정성과 심혈을 기울인 디테일이 느껴진다. 건축가인 사장님의 남편분께서 직접 설계부터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맡아 손수 제작한 공간이라고 한다. 현재는 사장님 부부가 생활하는 집이자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사장님이 직접 태국의 제철과일을 활용해 만드는 디저트도 맛볼 수 있어 마치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홈카페에 온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커피를 내리시는 사장님의 뒷모습
크름 카페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초록초록함이 느껴진다.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시는 홈메이드 디저트
2월에서 4월까지만 나는 태국의 여름 제철과일 마용칫으로 만든 치즈케이크


영업시간: 10 AM-5 PM


구글맵 링크




쉬어갈 카페 3. 이키하우스 (ikihaus)


식물과 정원을 활용한 공간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주는 카페다. 넓은 부지에 온갖 식물들이 널려있는 널찍한 정원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카페 바로 앞에는 반려견들이 뛰어놀 수 있는 야외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가 하면, 카페 건너편에는 소규모 유기농 농장과 염소와 돼지들이 살고 있는 사육장도 있다. 카페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어디에서 찍어도 그림같이 나오는 멋진 공간 덕에 인생샷을 남기러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간이 꽤 넓고, 반쯤 프라이빗한 구석 공간도 있어 촬영 인파를 피해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도 방문을 추천한다.

무성한 나무와 정원 덕에 도로 건너편에서 바라보아도 눈에 확 띄는 외관이다.
모든 공간에 창이 크게 나있어 카페 내부가 전체적으로 밝고 오픈된 느낌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르른 정원이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카페 앞 정원에 2월에 한창 피었다가 벌써 다 져버린 해바라기들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상큼하면서 신선한 맛이 완전히 취향저격이었던 아보카도 토스트 Poached Egg & Avo on the Bed. 260밧(약 9,700원)
따끈하고 바삭한 웨지감자 160밧(약 6,000원)
다른 손님들의 포토타임을 피하고 싶다면 저 카운터 뒤편 공간에 앉는 것을 추천한다.
옆집 유기농 농장에 살고 있는 아기돼지와 염소들
카페 옆에 위치한 나이 쑤언 유기농 매장(Naii Suan Organic Farm Store) 채소와 달걀 등 신선제품을 판매한다.


영업시간: 화-금 8 AM-5 PM, 토일 9 AM-6 PM, 월요일 휴무


구글맵 링크




쉬어갈 카페 4. 노 튜즈데이 인 쁘리디 (No Tuesday in Pridi)


위에 소개한 카페들과 달리 푸른 정원은 없을지라도, 편안한 분위기와 잔잔한 플레이리스트가 매력적인 카페다. 무엇보다 2층에 큰 테이블이 있어 자리 잡고 앉아서 일하기에도 좋다. 카페 이름 그대로 화요일에는 문을 닫지만, 화요일을 제외한 평일에 손님이 많이 없어 오래도록 앉아서 차분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배가 고파 주문한 샌드위치와 디저트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산책 중간에 잠시 들러 작업도 할 겸 머무르다 갈 공간을 원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지다.

햇살이 비출 때 유리창에 붙은 타이포그래피가 카페 내부 바닥에 이탤릭체로 떨어지는 모양이 꽤 멋졌다.
'NO TUESDAY IN PRIDI' 카페 주인이 화요일을 특히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 반대로 좋아하는 것일까?
밖에서 보면 이렇게 건물 코너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2층에도 자리가 있어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널찍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여기에도 식물! 아아. 너무 좋다.
평범한 척하는 비범한 디저트. 저 흰 스쿱이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차갑고 꾸덕한 크림치즈다! Caramelized Banana Cream Cheese 180밧(약 6,700원)
케첩과 머스터드를 함께 내어주는 속이 실한 샌드위치, Ham & Cheese. 가격은 180밧(약 6,700원)


영업시간: 8 AM-5 PM, 화요일 휴무


구글맵 링크





산책의 마무리는 달달한 간식과 함께


비밀스런 방콕 산책의 이전 글을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이제 간식은 우리 산책의 필수코스나 다름없다는 것을 진즉 간파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 끝에 맛있는 간식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날 하루 느낀 설렘과 즐거움이 귀가를 한 뒤까지 이어지는 느낌이 든다. 프라카농 산책을 마무리하면서 오늘의 흥을 연장시켜 줄 간식을 사러 마지막 발걸음을 옮겨보자. 태국, 이탈리아, 그리고 중동식 간식을 맛볼 수 있는 베이커리 세 곳을 아래 소개한다.




간식 방앗간 1. 쁘라짝 베이커리 (Prajak Bakery)


문을 연지 자그마치 40년이나 된 태국식 동네 빵집이다. 방콕에서 북서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수판부리 지역 출신 가족이 3대째 운영하고 있다.

빵집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단조로운 외관이다. 내부도 클래식한 동네빵집 그 자체.

나는 이런 오래된 동네 빵집이 보이면 꼭 참새가 방앗간 지나치지 못하듯 들어가야만 하는 병에 걸렸다. 꼭 간식을 한 두 개 사가지고 나와야만 직성이 풀린다. 동네에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사랑받는 빵집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결이 뭔지,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뭔지, 이것저것 사장님께 물어보는 순간이 즐겁다. 보통 오래된 가게 사장님들은 이런 관심을 반기시는데, 자주 없는 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무튼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니 서로에게 잘 된 일이다.

이 빵집의 스테디셀러는 사장님 가족의 고향인 수판부리 지역의 명물인 싸리수판 케이크다.
한 봉지에 35밧(약 1,300원). 카스테라보다 가볍고 퐁신하다. 왠지 식감이 우리 술빵 같을 것 같이 생겼는데, 그보다 더 입에서 잘게 흩어지는 독특한 식감이다.
색감이 강렬해 눈길이 가는 빈티지 케이크가 진열되어 있다.
태국 동네빵집 국룰 = 튀긴 바나나와 튀긴 고구마 간식이 있다.
코코넛 케이크 55밧(약 2,000원). 판단향 스펀지케이크 위에 보들보들한 생 코코넛 과육과 연유맛이 나는 부드러운 크림이 올라가 있다.

쁘라짝 베이커리의 단골손님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간식을 사 먹으며 자라 수 십 년째 방문하는 분들, 그리고 이제 그 자녀들까지 포함이다. 눈길을 끄는 화려함이나 유행하는 디저트는 없을지라도, 동네 사람들의 오랜 취향이 묻어나는 간식과 사장님 가족의 따스함이 어려있는 정겨운 공간이다. 힙한 카페와 디저트 가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이 생겨나는  주변에 잘 없는, 역사가 있는 동네빵집.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켜주시기를.

사장님께서 본인의 이모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쿠키라며 시리얼 쿠키 두 개를 선물로 주셨다. 먹어보고 맛있으면 또 오라는 따뜻한 말씀과 함께.


영업시간: 8 AM-8: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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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 방앗간 2. 파티서리 비앙꼬 에 네로 (Patisserie Bianco e Nero)


태국인 오너와 이탈리안 셰프가 함께 운영하는 이탈리안 카페/베이커리 겸 식당이다. 딱 도착하면 작고 조촐한 가게 외관에 실망할 수 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에, 어떠한 인상적인 인테리어 디자인 콘셉트 같은 것도 없다. 그냥 하얀 간판에 하얀 내부, 그리고 대충 놔둔 테이블 두어 개가 있는 정도.


하지만 이런 외관에 실망해서 발길을 돌리면 아쉬울 수 있다. 여기가 방콕에 거주하는 이탈리안들이 고향의 맛이 그리울 때 찾는 찐맛집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탈리안 회사 동료와 그녀의 지인들도 디저트뿐만 아니라 식사류까지 이 작은 제과점에서 주문해서 먹는다. 또 여기서 만든 디저트를 방콕에 있는 다른 이탈리안 식당들에 납품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픽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식 크로아상인 코르네또
페이스트리 류는 100g당 120밧 (약 4,400원), 쿠키 류는 100g당 100밧 (3,7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다양한 쿠키와 페이스트리들이 진열되어 있다.

가게에서 매일 직접 만드는 이탈리안식 크로아상 (코르네또), 케이크, 미니 페이스트리, 쿠키 등을 맛볼 수 있다. 참고로 매주 일요일이 휴무라, 바로 직전일인 토요일에는 고를 수 있는 페이스트리 종류가 한정적이다. 더 다양한 페이스트리를 보고 고르고 싶다면 주중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또 최근에는 인력 부족으로 2층 공간에서 작업하시느라 1층은 종종 비워져 있는 날도 있다. 문을 닫았다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도착해서 전화를 걸면 친절히 문을 열어주신다.

커피를 마시러 들렀던 토요일 아침. 다양한 페이스트리를 한 박스에 골라 담아서 매일 달달한 아침식사를 하는 이탈리안 동료의 집으로 배달을 보냈다.
나는 이탈리안이 아니니까.. 아메리카노와 쿠키!


영업시간: 7:30 AM-8:30 PM, 일요일 휴무


구글맵 링크




간식 방앗간 3. 씨 스위트 (Sea Sweet)


레바논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가게다. 켜켜이 쌓인 얇은 페이스트리 안에 호두나 피스타치오 등 다진 견과류를 넣고 시럽을 잔뜩 뿌린 디저트인 바클라바를 비롯해 쿠키, 케이크 등 다양한 아랍식 디저트를 판매한다. 한입 딱 먹으면 엄청나게 강렬한 단맛과 기름기에 '이것으로 이번주 디저트 할당량은 끝났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는 하지만, 따뜻한 커피나 차를 곁들여 먹으면 또 술술 들어가는 맛.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직접 만드는 다양한 디저트를 먹어볼 수 있다는 것이 방콕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니, 중동 간식이 궁금하다산책 끝에 방문해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페이스트리가 진열되어 있어 눈이 돌아간다.
왼쪽은 호두, 오른쪽은 피스타치오
내 입맛에 제일 맞았던 것은 이것!
원하는 간식을 고르면 무게를 달아 가격을 매긴다. 기준은 100g 당 100밧(약 3,700원)이다.
한국의 양산형 과자 '마가렛트' 맛이 났던 월넛 쿠키. 심지어 마가렛트가 더 맛있다.
대추야자 페이스트가 들어간 마물(Ma'moul) 쿠키
민트 차와 함께 다양한 바클라바 종류 하나씩 맛보기
차 없이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엄청나게 달달한 쿠키들


영업시간: 11 AM-1 AM


구글맵 링크




프라카농 산책루트 구글맵 리스트


이 글에 나온 모든 장소들 + 추가 장소들을 아래 구글맵 리스트에 넣어두었다. 저장해 뒀다가 여행할 때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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