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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Aug 17. 2024

환자를 존중하는 병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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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안과전문 병원으로


다음날 아침. 서울에서 2주 뒤로 수술 날짜를 받고 왔지만 오히려 더 불안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어제 도움을 받았던 동네 안과에 다시 들러 다른 병원에 진료의뢰를 부탁드렸다. 천만다행으로 어제는 전화를 받지 않던 안과전문병원에 연락이 닿았고, 바로 당일 오후에 진료 예약이 잡혔다. 게다가 부모님 댁이 있는 일산에 위치해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라는 장점도 있었다.


이때 나는 이미 모든 병원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질 대로 낮아져 있는 상태였다. 오늘 가는 병원에서도 어제와 다를 바 없이 귀찮은 짐짝 취급이나 당하겠지만,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빠른 시일 내에 치료를 받는 거니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병원에 들어선 순간부터 어제와는 모든 것이 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오시나요?

병원 건물 1층 접수처로 들어가자마자 안내 직원분께서 친절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처음 방문이라는 내 대답에 직원분은 번호표를 대신 뽑아 주면서 어디로 가라고 상냥하게 안내해 주었다. 순간 '어라? 뭐지?' 싶었다. 빠르게 날아올 원투 펀치를 기대하며 한껏 가드를 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날 살포시 껴안아준 느낌이었다.


얼떨떨한 상태로 접수를 마치고 난 뒤 순서는 어제 서울 안과병원에서 겪은 그대로였다. 기본검사, 특수검사, 진료, 내과검사, 수술상담까지 모든 과정을 똑같이 거치면서 자연스레 두 병원을 비교하게 됐다. 그리고 내 결론은 이랬다. 양쪽 다 환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것도, 의료진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이는 것도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환자를 흡사 성가신 일처럼 쳐내는 서울 안과병원 의료진들과 달리, 여기 일산 안과병원 선생님들은 환자들을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말하자면, 부담스럽게 넘치는 친절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제 겪은 바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환자 이름을 부르는 짧은 톤에도 배려가 담겨 있었다. 검사 안내를 할 때에는 어제처럼 무언으로 환자를 재촉하는 표정과 제스처를 볼 수 없었다. 내가 서두르자 오히려 '천천히 하세요' 라며 나를 진정시키는 선생님도 있었다.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더 우선순위인 것 같았다. 한두 명이 아닌, 내가 마주친 열 명도 훌쩍 넘는 의료진 모두가 일관된 따뜻함으로 환자들을 대했다. 병원 내부를 비추는 전체적인 조명마저 노랗고 따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얼떨떨했던 느낌이 점차 편안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따뜻한 조명이 비추는 일산 안과병원 대기실


진료, 레이저치료, 그리고 수술 예약


진료실 안쪽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망막전문의 선생님이 앉아있었다. 진료실 밖이 기다리는 환자들로 바글거렸지만 그녀는 바쁜 기색도 없이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2주 뒤로 수술 예약을 잡았지만 가능하다면 더 이른 날짜에, 기왕이면 집에서 가까운 이 병원에서 수술을 고 싶다고 설명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절박함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잠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당분간은 수술 일정이 꽉 찼다며 수술이 가능한 다른 선생님들과 먼저 의논해 보겠다고 했다.


짧은 기다림 후. 다른 진료실로 들어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번에 뵌 분은 망막센터의 원장님이었다. 그는 지금 내 눈 상태가 어떤 지부터 어떤 수술 방법들이 있고, 의사 입장에서 어느 경우에 어떤 수술을 권하는지, 그리고 각 수술 과정이 눈에 미치는 영향까지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내가 궁금한 것들을 다 물어볼 수 있도록 시간도 충분히 주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고, 덕분에 한없이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는 내게 수술보다 눈에 무리가 덜 가고 부작용 확률이 낮은 레이저 치료를 먼저 제안했다. 뜻밖의 권유였다. 태국 병원에서는 망막박리 진행 상태로 보아 수술이 필요할 거고, 레이저 치료만으로는 회복이 힘들 것 같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서울 안과병원 의사는 레이저 치료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우선 목요일에 레이저 치료를 하고 다음날까지 경과를 봤다. 결국 레이저 치료로는 큰 차도가 없어 수술을 하게 되긴 했지만, 그는 내가 곧 다시 출국해야 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레이저 치료로 더 오래 경과를 지켜보면서 수술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을 거라고 설명했다. 무작정 수술을 권하는 대신 최대한 환자 건강에 장기적으로 무리가 덜 가는 방향으로 진료를 봐주시는 것 같아 더 믿음이 갔다. 과적으로는 바로 3일 뒤인 월요일 아침으로 응급수술 일정이 잡혔다.




회복으로 가는 지름길: 마음의 안정


굳이 서울에 있는 '더 큰' 병원에 먼저 가서 하루를 꼬박 허비하고 이 병원으로 오게 된 것이 꼭 우연이 아닌 것만 같았다. 이건 수술날 협진팀 직원분을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사실인데, 마침 내가 귀국한 수요일에 팀 전체가 출장 중이었던 탓에 진료 의뢰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라고 했다. 만약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 내가 일산 안과병원에 먼저 왔다면? 막연히 더 크다는 서울의 그 병원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을 수도. 또 지금은 또렷하게 보이는 이 병원의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연세 드 환자분들께 여러 번 반복해 설명하면서도 날이 서지 않는 접수처 직원분의 목소리. 인간미가 잔뜩 느껴지는 목소리로 정성껏 치료 과정을 설명해 주는 간호사 선생님. 바쁜 일정 속에서도 내가 빨리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 준 첫 번째 망막 전문의 선생님. 수술을 불안해하는 내게 '내 딸이라면 이 수술을 먼저 하겠다'는 말로 안심시켜 준 원장님. 내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더 해소해 주려고 묻지 않은 부분까지 세세히 설명해  상담 선생님.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고 흔치 않은 그들의 수고가 하나하나  눈과 마음에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더 편해졌고, 이렇게 따뜻한 병원을 만나 감사하다는 마음이 일었.  분들께 치료를 받으면 무조건 잘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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