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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Aug 14. 2024

환자를 짐짝 취급 하는 병원

이게 최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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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안의 공기는 대기실, 검사실 보다도 더 숨 막히고 냉랭했다. 의사 선생님 말고도 세 명이나 더 되는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앉아 각자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웃고 떠드는 잡담 소리가 내가 진료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뚝하고 끊겼다. 나는 긴장이 덜 풀린 채로 숨소리만이 들리는 진료실로 걸어 들어가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동시에 그가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수술해야 된다고 이미 다~ 들으셨죠?


이 병원에서 진료는 지금이 처음인데, 내가 어디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확신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일단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짧고 빠르게 내가 받을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가장 이른 수술 가능 날짜는 지금부터 2주 뒤이고, 그때까지 망막박리가 얼마나 더 진행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으니 최대한 조심히 지내는 수밖에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으로 말을 끝맺었다. 앞으로 2주 동안이나 언제 실명할지 모르는 눈 상태로 지내라니.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달달 말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일방적인 태도를 보니 내게 어떤 선택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빠는 보호자 자격으로 함께 진료실에 들어와 이때까지 잠자코 내 뒤에 앉아있었다. 내가 알아서 잘 말하고 나올 테니 끼어들지 말라고 미리 신신당부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내 나이가 서른셋인데. 아침에 동네 안과에서 아빠가 내 대신 할 말을 다 하고 진료실을 나온 게 어딘가 멋쩍어서 그랬다.


하지만 의사의 일방적 통보에 아빠는 애가 탔는지 결국 이번에도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태국 병원에서 받아온 진단서와 스캔 자료까지 주섬주섬 꺼내어 의사 앞에 슬며시 내밀었다. 해외에서 진단을 받고 들어온 내 딸의 상황을 설명하며, 실명할 수도 있는 응급상황이라던데 더 빠른 수술이 가능한지 물었다. 아빠가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며 말을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다듬어 입 밖으로 내놓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환자의 입장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 뵈는 저 의사의 심기를 혹여나 건들까 봐. 당장 수술이 필요한 내 딸에게 혹시라도 불이익이 갈까 봐. 아빠는 안절부절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 상황이 불편했다.


의사는 아빠가 건네준 자료를 받아 들더니 피식 웃으며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태국에서요? 뭐, 진단서가 그럼 태국어로 돼있나?


이 날 느낀 그 괘씸함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놓아주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진단서가 영문으로 되어있다는 내 말을 듣고 나서야 그는 자료를 대충 휘리릭 넘겨보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이건 뭐 여기서도 다 검사한 거고요.." 라 종이뭉치를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리고 어쨌든 수술은 2주 뒤에나 가능하다며 못을 박았다. 수술할 거면 내과 검사를 받고 가야 한다는 말과 함께. 수술을 집도하게 될 그와 마주한 시간은 불과 2분 남짓이었다.


나는 넋이 나간 채로 터덜터덜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앞으로 2주 동안 실명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안고 지낼 자신이 없었다. 굳이 보여줄 필요도 없는 자료를 건네며 내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한 아빠의 행동이 창피스럽기도 했다. 그런다고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 내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었는데, 왜 또 끼어들어서는. 하지만 진짜 열이 오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 때문에 저런 인간이 덜 된 의사에게 낮은 자세로 쩔쩔매는 아빠의 모습을 본 게 속상했다. 원래는 아쉬운 소리 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빠였다.


어젯밤 방콕 공항 면세점에서 수술 후 병원 선생님들이랑 나눠먹을 계획으로 한 보따리 챙겨 와 지금은 자동차 트렁크 안곤히 잠들어있는 간식이 생각났다. (2화 참고). 그런 바보같이 순진한 상상을 했었다니. 당장 어제의 내가 너무 우습게 느껴졌다. 헤벌쭉 웃으며 점심을 먹고 엄마아빠와 사진을 찍던 세 시간 전 내 얼굴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내 머릿속은 이제 '정말로 이 병원에서 2주 뒤에 수술을 받는 게 최선인가?' 하는 질문으로 가득했다. 부모님 곁에서 마음 편히 수술받고 잘 회복하려고 한국에 온 건데. 이렇게 환자들을 인간이 아닌 짐짝처럼 취급하는 병원에서, 저런 상식 이하의 태도를 보이는 의사에게 내 눈을 맡겨야 하는 지금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여기 그런 분위기 아닌데. 쓸데없이 많이도 사 왔다.




더 많은 방콕살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sorang.di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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