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인천공항 입국장 게이트를 나서자마자익숙한 얼굴이 보여 긴장이 탁 풀렸다. 빠르면 추석 때나 볼 예정이었던 엄마아빠를, 아무런 계획도 없다가 이렇게 갑자기 몇 시간 만에 보게 되다니. 내 얼굴에는 금세 싱글벙글 웃음이 번졌지만, 엄마는 어쩐지 오늘따라 더 작아 보였다. 다 큰 딸내미 걱정에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날이 밝자마자 공항으로 부리나케 달려왔을게 뻔했다. 간밤에 한껏 쪼그라들어버린 그녀를 꼭 안아주면서 별 것도 아닌 일에 왜 이렇게 죽을상을 하고 있냐고 핀잔을 줬다.
엄마아빠
공항을 나서면서 우리는 전날 밤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봉착했다. 모두가 정신없던 지난밤, 친구와 부모님이 인터넷으로 급히 알아봐 준 정보에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당일에 바로 수술을 받은 망막박리 환자들의 후기가 많았다. 2022-23년에 작성된 비교적 최근 정보였지만, 우리가 놓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의료대란. 전공의들이 파업 중인 지금 2024년 대한민국의 특수 상황.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전화로 문의를 하자 망막 전문의 외래진료는 거의 3주나 지나야 볼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응급실은 지금 아예 접수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어제는 밤늦게 다들 경황이 없어서 생각을 못했지.."
엄마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자책하듯이 말 끝을 흐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따지자면 한국 뉴스에 나오는 전공의 파업 소식을 먼 나라 이야기로만 취급한 내 탓이 컸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받아야 실명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어제 태국 의사 선생님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 한국에서 대학병원을 하나하나 전전하고 다니며 시간낭비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서 내일이라도 수술을 받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대책 없이 무작정 한국에 들어와서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나 싶었다. 결국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동네 안과로 향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