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그날은 꽤 특별한 화요일이었다.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 와 나랑 함께 지낸 지 3주째 되는 날이었고, 그녀의 동생이 방콕에 도착하는 날인 동시에, 동생과 함께 호텔에서 머물기 위해 친구가 내 집을 떠나는 날이었다. 한국에서 방콕까지 먼 걸음 해준 그녀들과 한바탕 재밌게 놀아볼 심산으로 나는 수요일부터 연차를 받아놓았다. 그러니까 그날은 그냥 화요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꿀 같은 휴가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인 화! 요! 일!이었다.
그 특별한 하루는 아주 평범하게 시작했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7시에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친구는 내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여행 중인 한량답게 늦잠을 퍼질게 자고 일어났다. 나는 점심을 먹지 않지만, 곧 한국으로 돌아갈 친구를 위해 제일 좋아하는 태국 식당에서 음식을 잔뜩 주문해서 먹였다.
행복한 한량이 메이 베지 홈 (May Veggie Home)에서 주문한 점심식사를 먹고 있다.
그렇게 오후 3시. 눈알이 빠져라 모니터를 노려보며 일을 하는 나를 두고 친구는 지난 3주간 내 작은 집안 곳곳에 벌여놓았던 짐을 깡그리 챙겨 집을 나섰다. 방콕에 도착한 동생을 맞이하러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3주 만에 텅 빈 느낌마저 나는 집안에서 줄곧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날의 업무를 마쳤다.
재택근무를 마무리한 시간은 오후 4시. 오른쪽 눈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에 이런저런 증상이 생긴 지는 3주 정도 됐지만 일상생활이 불편한 수준은 아니었다. 한정 없이 미루려던 안과 진료를 오늘 봐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즐거운 휴가를 앞두고 '너의 눈은 조금 피로할 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확인을 받아야 맘 놓고 놀 수 있을 테니까.
혼자 지내면 몸이 불편해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제발 건강 좀 돌보라며 등 떠미는 이가 없으니까. 한데 마침 바로 지난주에 목 근육을 다치면서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는 바람에 병원에 다녀왔었다. 한 번 갔다 오고 나니 두 번째 방문은 어쩐지 쉬운 느낌이었다. '이쯤이야 뭐, 서른셋 먹은 어른이라면 다 하는 것이지 핫핫' 하며 뻐기는 마음으로익숙하게 병원에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을 마쳤다.
병원에 가기 전 운동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진료 시간은 가장 늦은 6시 15분으로 예약했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진한 아메리카노 석 잔뿐인 빈 속이었지만, 운동을 하고 나니 찌뿌둥하던 몸이 개운하고 마음은 뿌듯했다. 저녁은 뭘 맛있는 걸 먹어야 하나? 즐거운 고민을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 앞 병원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나의 일상과 습관은 온갖 객기로 점철되어 있었고, 곧 진한 반성이 뒷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