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이 빠진 채로 의사 선생님의 말을 곱씹었다. 최대한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실명할 수 있어 응급수술이 필요하다면서, 망막 전문의는 목요일에나 진료를 봐줄 수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 내일은 수요일인데? 그럼 더 빨리 봐줘야지! 아니야. 그렇다고 또 곧바로 수술을 받을 자신은 없어. 당장 이틀 뒤에 수술이라니, 그건 너무 급하잖아! 이런 중대한 사안에 쫄보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게다가 놀러 와있는 친구가 예정대로 며칠 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방콕에 혼자였다. 태어나서 사랑니 발치 빼고는 단 한 번도 수술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혼자서 눈 수술이라니. 너무 갑작스럽고 비현실적인 전개에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나는 방콕에 가족도 없고, 나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여기서 수술을 하기 두렵다고 말하자 의사 선생님은 나를 이해한다며 끄덕였다. 수술을 하고 나면 2주 정도 엎드려 지내야 하는데, 그때나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할 거라면서. 그녀는 자신이 망막 전문의가 아니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시력을 잃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수술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앞으로 일주일 내에는 해결을 해야 될 것이며, 그때까지 머리를 흔들거나 과한 움직임을 피하라고 덧붙였다.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 놀라지 말고 들어봐. 내가 방금 안과에서 무슨 검사를 했는데,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대..
오늘 도착한 동생과 신나게 방콕 어딘가에서 놀고 있을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부모님도 친구도 한국에 일단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배가 너무 고파서였는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이 나가버려서였는지, 대체 무엇이 최선인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저 내가 믿는 부모님과 친구가 그렇게 하라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한국으로 간다는 말에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여럿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시간이 늦어 한산한 병원 복도를 이리저리 총총걸음으로 누비더니 금세내 영문 진단서와 망막스캔 자료를 준비해 커다란 갈색 봉투에 챙겨 주었다.
넋이 나간 상태로 병원을 나선게 저녁 8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약 다섯 시간 뒤인 새벽 1시 10분에 이륙하는 비행기였다. 그러고는 대충 텅 빈 러기지에 필요한 옷과 물건 몇 가지만 던져 넣듯이 짐을 쌌다. 한국행 최소 이틀 전에는 목록을 만들어 짐을 싸야 마음이 편한 나에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상할만한 식재료를 전부 버렸다. 저녁에 먹으려고 정성스레 씻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샐러드 역시 쓰레기통 행이었다. 싱싱한채소를 내 손으로 버리다니. 속이 쓰렸다 (배고파서 아님). 세탁기 옆에 널브러진 땀에 젖은 운동복, 싱크대 안 설거지거리를 그대로 두고 찝찝한 마음으로 공항행 택시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도착한 건 밤 11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었다. 병원을 나선 지 불과 세 시간 만이었다.
체크인 카운터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방콕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틈에 섞여있으니 '살다 보니 이렇게 비현실적인 순간을 겪어보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불과 다섯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맛있는 거 먹을 생각에 들떠있는 사람일 뿐이었는데. 별안간 실명위기를 맞아 여행객들 틈바구니에 빈속에 피곤하게 서있는 사람 하나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내일 당장 한국에서 수술대 위에 올라갈 수도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이실직고: 그때는 해맑은 상상인지 몰랐다.
정신없이 짐을 싸는 와중에 버렸는지 아닌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 나의 소중한 삶은 계란아.. 잘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