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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Aug 24. 2024

내 망막에 구멍이 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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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막박리야, 대체 왜 나야?


나는 나이를 서른셋 먹도록 눈 건강에 대해서 무관심한 채로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안경을 쓰긴 했지만 나쁜 시력에 대해 크게 불편함을 느껴본 적도 다. 렌즈나 안경을 끼면 간단히 해결됐으니까. 눈을 못살게 굴고 방치하면 시력이 나빠지는 것에서 나아가  큰 질병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은 최근 망막박리 진단을 받고서야 알게 됐다.


갑자기 실명할 수도 있는, 게다가 완치가 없는 병이 생겼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눈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지가 하루아침에 내 최대 관심사가 됐다. 대체 왜 망막박리가 나한테 생긴 거지? 그것부터 알아야 앞으로 뭘 조심해야 하고 뭘 하면 회복에 도움이 되는지 가닥이 잡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망막박리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고도근시, 노화, 당뇨병, 머리나 눈에 가해지는 직접적인 충격 등이 있단다. 하지만 나는 전부 다 해당사항이 없다. 주치의 선생님은 맹장이 왜 터졌는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듯이 망막박리도 특별한 원인 없이 그렇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맙소사.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작 재발을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그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모든 질병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수술 직후 몇 주간 온갖 오디오 콘텐츠에 의존해 지냈다. 그중에서도 매일밤 자기 전 반복해 들은 루이스 헤이 (Louise Hay)의 치유 명상이 내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일부분을 내 식대로 의역하면 이렇다.

우리 몸에 생기는 질병은 '너 진짜 이딴 식으로 살래? 똑바로 해!' 하고 몸이 나에게 주는 신호다. 수술이나 기타 의료적인 치료로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해서 끝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질병의 원인을 찾아 그 뿌리까지 뽑아내지 않으면 완전한 치유라고 볼 수 없다. 근본 요인이 그대로 존재하는 한 질병은 언제든지 또 다른 형태로 나를 찾아올 것이므로. 진정한 치유를 원한다면 먼저 애초에 그 질병이 나를 찾아온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이게 다 내 탓이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희망적인 관점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내 몸에 배어있는 나쁜 습관들을 내가 주체적으로 놓아줌으로써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매일 밤마다 내 불안을 달래주는 그녀의 온화한 목소리에 집중하며 마음속으로 고개를 수백 번도 더 끄덕였다. 그래, 주치의 선생님의 '망막박리가 생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씀은 결코 원인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내게 닥친 이 무서운 질병 앞에서 무력해지고 싶지 않았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물이 줄줄 흐르눈을 감고서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했다. 망막박리가 나에게 가르쳐주려는 게 뭐지? 앞으로 어떻게 다르게 살아야 하는 거지? 그걸 알아내야 두려움에 집어삼켜지지 않고 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망막박리가 나를 찾아온 이유


찬찬히 내 평소 습관을 하나씩 되돌아봤다. 지금껏 내가 내 몸과 정신을 아주 막 대해왔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그간의 만행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일함. 눈알이 빠질 것 같이 뻐근해도 쉬어주지 않음. 왜냐하면 눈이 아픈 건 별 큰일이 아니고, 지금 나에게는 일을 끝내는 게 더 중요함.

아침, 점심을 건너뛰고 빈속에 커피만 때려 부으면서 일함. 일이 바쁠 땐 불안해서 음식이 안 넘어가서이기도 하고, 식사를 하고 나면 나른해져서 일에 집중이 안됨.

그렇게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음. 항상 뭔가에 쫓기는 듯이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일함. 즐기면서 일을 하는 게 가능하다고? 나에게 해당되는 말일 리가 없음. 바뀔 생각도 없음. 왜냐하면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아야 일이 더 잘된다고 착각함.

일하다가 너무 불안하고 답답하면 휴식을 취하는 대신에 폰을 켜고 의미 없는 콘텐츠를 스크롤링을 하는 것으로 불안감을 해소함. 오히려 더 불안해짐. 하지만 자각하지도 못함.

눈을 쉴 타이밍은 없음. 하루 종일 랩탑에서 모니터로, 폰에서 TV로, 크고 작은 스크린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임.

아침에 걷고 뛰는 게 몇 안 되는 삶의 낙이었는데, 북미팀이랑 일하기 시작하면서는 시차 문제로 일을 방콕 시간으로 새벽에 시작함. 결국 아침운동을 포기함. 운동은 점심이나 저녁때 해도 되니까,라고 합리화함.

아 그런데 또 점심에 운동하기에는 이게 일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음. 이렇게 또 합리화하면서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하루종일 앉아서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일함.

하루에 움직임이라곤 저녁에 하루 한 번 운동하러 가는 것. 근데 몸도 제대로 안 풀린 상태에서 갑자기 뛰거나 무거운 웨이트를 듦.

자기 전에는 안경도 끼지 않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 누워서 엄청나게 밝은 핸드폰 스크린을 코앞에 두고 계속 스크롤링하다가 잠듦.

안경 없이 가까이서 핸드폰을 보면 양쪽 눈 시력이 달라서 초점이 안 맞음. 그래서 한쪽 눈만 뜬 상태로 엄청나게 밝은 핸드폰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봄.

이 외에도 눈을 마구 비비고, 소프트 렌즈를 끼고 수영을 하고, 엄청 독한 성분의 샴푸를 쓰면서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아서 눈이 쓰라려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함.




망막박리 이후 달라진 것들 (망막박리가 날 찾아온 진짜 이유)


내가 여태껏 얼마나 무모하게 내 건강을 (안) 돌봤는지가 확실해지고 나니, 생활습관을 하나씩 바꿔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각각의 변화가 내 눈 건강에 직접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 방도는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내 전반적 건강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실천해 나쁠 것이 없는 습관들인 것엔 틀림없다. 어쩌면 나머지 생을 더 건강하게 살라고 망막박리가 때 이른 30대에 나를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눈 절대 안 비빔.

이전엔 머리를 항상 허리를 숙인 채로 감았는데, 이제는 무조건 서서 감음. 컨디셔너 때문에 얼굴과 몸에 피부 트러블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너무나 멀쩡함.

내 일상에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었던 회사와 일에 대한 자세를 완. 전. 히. 뜯어고침.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에..) 스트레스 없이는 일을 못할 거라고 고집 피우던 내가 요즘 나름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음.

간헐적 단식을 핑계로 빈속에 과식하는 것을 그만둠. 이젠 그냥 일하다가 중간에 점심을 먹음.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짐. 한국 집에 있으니 엄마아빠랑 매일 같이 밥 먹을 수 있어서 배로 좋음. 집밥 맛있어서 행복지수 올라감. 일석삼조.

폰 스크린 색상을 최대한 따뜻하게 바꾸고 평소 밝기도 많이 낮춤. 눈에 무리가 덜 가는 게 느껴짐.

어두운 곳에서 밝은 스크린 보는 행위를 멈춤. 이젠 자려고 불을 끄면 핸드폰도 더 이상 만질 수 없다.

빈속에는 커피 대신 보리차나 물을 마심.

물을 항상 근처에 두고 수시로 마심.

기본 영양제 하나와 눈 관련 영양제 하나, 이렇게 두 가지를 복용하기 시작함. 영양제의 세계는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함. 앞으로 필요에 따라 더 늘려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음.

스탠딩 모션데스크를 구입함. 오래 앉아있는 게 건강에 그렇게 나쁘다니 이제 서서 일함. 얼른 업무를 쳐내고 침대에 누워 잠깐 쉬려는 욕망이 들끓어 오름. 덕분에 생산성도 올러가는 것 같음. 하루에 한두 시간씩 짬을 내 몰아서 하는 운동보다 하루종일 틈틈이 움직이는 게 좋다고 어디서 주워들음. 이미 디폴트로 서있으니 거실로도 걸어가고, 물도 뜨러 가고, 서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이 움직이게 되는 것 같음. 이때 눈도 같이 쉬어짐. 일석이조.

다시 평일 아침에도 햇살 보고 걷기 시작. 아침에 충전한 에너지가 하루 전체를 밝혀줌. 하지만 어려운 날도 있음. 아침 일찍 미팅이 있는 날엔 왜 이렇게 직전까지 자고 싶은지 모르겠음.. 이건 노력해서 극복할 부분.




필연이 가져다준 기적


눈을 감고 지내며 들은 콘텐츠 중에 또 내 귓가에 계속해서 맴돈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모두가 신의 다양한 표현이라는 말. 길가에 핀 꽃에, 스치는 바람에, 절박한 환자를 앞에 두고 비아냥거리는 의사에, 나를 정성으로 치료해 준 의료진에도, 전부 신이 깃들어 있다는 그 말. 그렇다면 너와 나라는 구분이 없고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뜻이니, 미움도 증오도 아닌 그저 사랑만이 답일 수밖에. 


따르는 종교가 없는 나에게 새로우면서도 큰 울림을 준 말이었다. 렇게 생각하니 내게 일어난 수많은 우연이 겹치고 겹쳐 나를 회복으로 이끌어주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화요일 저녁에 나를 안과로 이끈 것도, 서울의 매서운 안과병원에 먼저 방문해 좌절을 맛보게 한 것도, 그 덕분에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따뜻한 의료진을 만나 오히려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한 달의 병가를 받아 그간 끝을 모르고 달리던 일에 잠깐 브레이크를 걸고 나를 되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전반적인 생활 습관을 건강하게 바꾸게 한 것도, 그리고 오랜만에 한국에서 부모님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된 것까지. 이 모두가 필연이었고, 스치는 모두 안에 깃든 '신'의 뜻이었음을.


수술 3주 째였던 것 같다. 통원치료를 마치고 접수처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띄었다.

Finding God in All. 신은 우리 모두 안에 있다.




더 많은 방콕살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sorang.di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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