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보다는 추앙받고 싶다는 나의 고백
‘내가 어딘가 다치거나 크게 아파야 그 친구들이 나를 소외시킨 걸 후회하고 나에게 다시 돌아올까?’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안쓰러운 일이다. 고작 열몇 살 된 애가 친한 친구랑 멀어졌다고 저런 비극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었다. 말을 재밌게 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뭔가를 특출 나게 잘해서 친구들의 눈길을 끌고 싶었다. 궁극적으로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현실이 그리 동화 같지 않다는 것을.
중학생 때였다. 우리 반에 공부를 정말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자주 어울리는 무리의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 했다. 크게 튀는 부류의 무리가 아니었다. 지금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이상하게도 그 친구와 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친구와 거리를 두었고 심지어 그 친구가 내 친구들과 친해지기 어렵도록 훼방을 놓았다. 이제 와서 핑계 대는 꼴 밖에 되지 않지만 친한 친구들을 뺏길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더 어이없는 건 그 친구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정확히는 두 달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친해졌어도 좋았을 텐데, 사춘기의 나라는 사람은 같은 인간으로 마주쳐도 참 대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아무튼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 사이 나는 마음을 어지럽혔던 미국 유학생활을 청산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놀랍도록 성숙해져 있었다. 사춘기는 진작 벗어났고 성인이 되기를 준비하는 단계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나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친구가 나와 같은 학교, 그것도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는 것이었다. 다시 본 그 친구는 공부도 잘하는데 재치도 있었다. 주변에 늘 친구가 많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는 절대 아니지만 나는 늘 마음에 두고 있었던 중학생 때의 일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유학생활에서 그 나이 또래의 소모적인 관계들을 경험하며 내가 얼마나 미성숙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나와 화해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지 나를 1년 동안 투명인간 취급했다. 나는 내가 그런 취급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반장, 그녀가 부반장이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꽤나 많이 소통해야 하는 사이였지만 나는 눈치껏 행동했다. 그런데 하루는, 사실은 내 생일날, 그 친구가 나에게 날 선 한마디를 던졌다.
“야, 수업시간에 병신처럼 웃지 마.”
또 한 번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욕을 해본 적이 아직까진 없는데 그 친구는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시원하게 욕을 잘 던졌다. 그래서인지 그 말을 들은 나는 화장실에서 혼자 숨죽여 우느라 다음 수업에 10분이나 지각을 해버렸다. 1분이 하루 같았던 화장실 한 칸에서의 시간 동안 나는 초등학생 때처럼 내가 다쳐야만, 아파야만, 죽어야만 그 친구의 마음이 풀리려나, 하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침잠하는 내가 지긋지긋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그 친구의 마음이 풀어질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한편 부은 눈을 손으로 가리며 늦게라도 교실에 갔지만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야 말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그 친구와 다른 친구가 얼굴을 맞대고 킥킥 웃었다. 하지만 그 친구도 참 여리고 착한 아이였다. 아마 그동안 마음 고생한 걸 생각하며 욕을 하면 통쾌할 것이라 생각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누그러지는 듯 나에게 조금은 관대해졌다. 내가 말을 걸어도 모르는 척하지 않고 짧게라도 대답해 주기 시작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 친구가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길 매일 기도하고 바랐던 것 같다. 내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 친구가 상처받은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는 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1년 동안이나 매일 사죄하는 마음으로 등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소외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포감을 가지고 산다. 나는 초등학생 때 소외당하고 위협받는 상황들을 많이 겪었다. 다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나를 재수 없고 짜증 난다고 했다. 그런 내가 조금 커서 되려 다른 사람을 소외시켜려 했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부끄럽고 실망스럽다. 나는 그때에 대한 벌로 부끄러움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스러움을 평생 간직하고 살 것이다.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이면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다. 관계에서 내가 늘 느끼는 본능적인 결핍감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늘 느낀다. 한마디로 많은 이들에게 관심받고 사랑받고 추앙받고 싶다고 느낀다. 근데 그건 누구나 느낄법한 감정이다. 그 감정을 마주하며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여왔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관심이나 사랑이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 뒤틀린 방법으로 간당간당하게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감정이 내 기준에서 채워진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미성숙했던 내 모습으로 인해 나는 성인이 되고서 부쩍 조심스러워졌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더는 없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관계라는 것은 이상하고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거미줄 같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가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꼭 벌어지고야 만다. 그렇다면 우리 앞으로는 조금 더 자각해 보자. 나의 지금의 이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는 건 아닌지, 나의 결핍감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