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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Mar 29. 2020

[#하루한줄]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호밀밭의 파주꾼 / J.D.샐린저 / 소담출판사 

내 책장에 이 책이 꽂혀있던 게 아마 몇 년째일 거다. 심지어 내 돈 주고 산 책도 있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언니한테 선물 받았던 책도 있다. 한 권이 아니었다. 근데 아직도 안 읽고 있었다니.. 그러다 오늘 문득, 정말 갑자기 이 책이 읽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3시간 만에 다 읽고야 말았다. 생각보다 너무너무너무 재밌는데, 왜 여태까지 시작도 못했던 걸까? 


언니가 처음 미국 가서 유학생활할 때, 기숙사에서 읽고 위안을 받았던 책이라고. 내가 회사생활에 고민이 많을 때 언니가 선물해주었던 책이다. 이 책을 선물해주던 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더 놓을 수 없었던 책. 



아무튼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항상 눈에 그려본단 말이야. 몇 천 명의 어린애들만이 있을 뿐 주위에는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럴 때 내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지.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런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251)


내가 그곳에서 서성거린 까닭은 무언가 석별의 정을 느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학교나 어떤 장소를 떠나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 떠났었다. 그것이 싫다. 비록 슬픈 이별이든 언짢은 이별이든 상관없이 내가 어떤 장소를 떠날 때는 그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싶다는 말이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한심한 존재이다. (13)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다 읽고 나면 그 작가가 친한 친구가 되어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언제나 걸 수 있게 된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은 좀처럼 없다. (33)
바보 천치들이란 하나같이 남들에게 바보 천치라는 말을 들으면 화를 내는 법이다. (71)
울고 싶었다. 왜 울고 싶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84)
만일 젊은이가 물고기라면 자연의 어머니가 돌봐 줄 것 아니오? 그렇지 않소? 겨울이라고 해서 물고기가 죄다 죽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 아니오? / 그건 그렇지만... / 그렇게 생각한다면 됐소. (127)
달라지는 것은 오로지 우리 쪽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나이를 더 먹는다는 뜻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결코 우리가 더 나이를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늘 변한다는 것뿐이다. 이번에는 우리가 외투를 입고 있다든지, 지난번 짝이었던 여자아이가 홍역에 걸려 이번에는 다른 애와 짝이 되었다든지 하는 것이다. (180)
여러 학교가 방학에 들어갔기 때문에 많은 여학생들이 그곳에 앉아 있거나 서성이면서 남자 친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대부분은 아마 바보 같은 자식들과 결혼할 것이다. 내 차는 휘발유 1갤런에 몇 마일을 달릴 수 있다는 말만 하는 놈들, 또는 탁구나 골프 같은 바보 같은 시합에서 지기라도 하면 곧 화를 내며 어린애같이 구는 놈들, 또는 치사하기 짝이 없는 놈들, 또는 책과는 담싼 놈들, 또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놈들하고, 하지만 이렇게 말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어떤 놈에 대해서 지루하다고 이야기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지루한 놈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건 정말이다. (182)
그래도 역시 나는 지루한 인간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훌륭한 여자가 지루한 남자와 결혼한다 해도 너무 슬프게 생각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지루한 남자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사람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고 게다가 남 모르게 휘파람 같은 것을 잘 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누가 알겠는가? 나는 모르겠다. (183)
그리고 그때 내가 얼마나 미쳐 있었느냐 하면, 우리가 힘껏 껴안은 포옹을 끝마칠 무렵에 그녀를 사랑한다느니 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그 말을 하던 그 순간만큼은 진정이었다. 난 미친놈이다. (185)
놈들이 하는 일은 장차 캐딜락을 살 수 있는 신분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일뿐이야. 그리고 축구팀이 지면 분해 죽겠다는 시늉이나 하고, 하루 종일 여자와 술과 섹스 얘기만 지껄여 대는 거지. 게다가 모두들 더러운 파벌을 만들어 몰려다니거나 하면서 말이야. 농구팀은 그들대로 뭉치고 천주교 신자들은 그들대로 뭉치고 지랄 같은 지성인들은 그들끼리 뭉치고 놀음하는 놈들은 저희끼리 뭉치거든. (193)
무시무시했다. 앨리의 비석에도 비가 내리고, 앨리의 배 위에서 자라고 있는 잔디 위에도 비가 내렸다. 전체 공동묘지 위로 비가 내렸다. 그러자 묘지에 온 수많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자기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 앨리만 빼놓고 말이다. (227)
아빠는 오빠를 죽이고 말 거야 (250)
8달러 85센트야. 아니 65센트야. 좀 썼으니까. /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울었지만 운 것은 사실이다. 내가 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피비는 깜짝 놀랐다. 피비는 내게로 와서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일단 울음을 시작하면 그렇게 간단히 그쳐 지지가 않았다. (259)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그다지 재미있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이 가장 재미있는가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말하는 사람이 적어도 흥미를 갖고 있는 데다 흥분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누군가 무엇에 흥분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266)
그곳에서는 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며 살 참이었다. 그러면 누구 하고도 쓸데없는 어리석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85)
가령 백만 년을 걸려 지우러 다닌다 해도 온 세계의 'X 하자'라는 낙서의 반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지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289)
많은 사람들, 특히 이곳 병원에 있는 정신분석 전문의가 이런 9월부터 학교에 돌아가면 열심히 공부하겠느냐고 자꾸만 묻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처럼 어리석은 질문은 없는 것 같다.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야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긴 하지만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다. (304)


예컨대 스트라드레이터와 애클리마저 그립다. 그놈의 모리스 녀석도 그립다. 웃기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을 하면 모든 인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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