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 문학동네 / 2019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모든 투어 출장이 취소 되었고, 여행은 꿈도 못꾸게 되었다. 투어가 취소되면 내심 인도로 여행을 가볼까 생각했었는데. 전세계가 이렇게 되었다. 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가? 여행이 일이 되면서 내가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일이 많아졌다. 그만큼 즐기고 있지 못하는 증거였을게다. 하지만 이렇게 집에 결박되어 있다 보니 이제 그만 방랑을 멈추고, 내 그림자를 되찾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미련이 남는 것이 꼭 헤어진 애인을 잊지 못하는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페넬로페의 침대에 누운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의 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 자주 떠도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오디세우스와 같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방랑을 멈추고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는 어떤 곳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할까? 과연 그런 곳이 있기는 할까?나는 거기서 받아들여질까? 요술 장화를 신고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슐레밀,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내 운명은 아닐까? 그런데 그런 삶은 과연 온당한가? 요즘의 나 역시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신이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믿음에 집착한다면 여행은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평범한 회사원? 그런 인물은 없어."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 보통은 한곳에 정착하며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가야만 안정감이 생긴다고 믿지만 이 인물은 그렇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르죠. 그냥 여행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여행에서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삶의 생생한 안정감입니다.
휴양지에서 살다보니 여행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기분이었다. 내 귀환의 원점은 어디인가?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 뉴욕에 살던 어느 날 아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여행 가고 싶다. 지금도 여행 중이잖아.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런거 말고 진짜 여행. 마치 꿈속에서 꾸는 꿈 같은 것인가? 아니면 꾸역꾸역 밥을 입안으로 밀어넣으며 정말 맛있는 걸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말인가?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