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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Apr 01. 2020

[#하루한줄] 압축된 기억은 반짝이는 작은 보석이 된다

종이 동물원 / 켄 리우 / 황금가지 / 2018

책을 읽으면서, 아 이 사람은 정말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몇 명 있다. 그중에 한 명이 켄 리우이다. 사실 이 책은 내 인생에서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출장 중, 기차에서 읽었다. 기차에서 몇 번이나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참느라 책을 몇 번이나 덮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북마크가 너무 많아서 사실 다 적지도 못하겠다. 누군가 내가 읽는 책 중 가장 아름다운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종이 동물원을 추천하고 싶다. 



종이 동물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던 뭔지 모를 마법이 엄마가 죽었을 때 사라져 버린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 종이 동물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그저 나의 상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기억이란 믿을 게 못 되니까. 

 

빛나는 팔, 웃음소리, 신들의 음식. 우리 기억은 그렇게 압축되고 통합된 끝에 반짝이는 보석이 돼서 머릿속의 한정된 공간에 박힌단다. 하나의 장면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신호로 바뀌고, 긴 대화는 문장 한 줄로 줄어들고, 하루는 덧없이 사라지는 즐거운 느낌으로 농축되지.


시간의 화살은 그 압축의 정확성을 앗아간단다. 스케치가 되는 거야. 사진이 아니라. 기억은 곧 재현이란다. 그것이 소중한 까닭은 원본보다 나은 동시에 원본보다 못하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카메라를 위해 자기 삶의 경험을 형상화하고 단계화해요. 기껏 휴가를 가서도 한쪽 눈을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비디오카메라에서 뗄 줄을 모르죠. 현실을 그대로 정지시켜 보관하고 싶은 욕망은 곧 현실을 회피하려는 욕망이에요.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것은 타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그물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이다.


인류의 창조 신화가 왜 그렇게 많은지 궁금하다고? 그건 말이지, 모든 진짜 이야기는 설명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야.


진실은 연약하지 않고, 누가 부정한다고 해서 훼손되지도 않습니다. 진실은 아무도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숨을 거둡니다.


하지만 그렇게 죽음에 가깝다는 것을, 그래서 순간순간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우리는 버틸 수 있었던 거야. 



"저는 프로그래머와 변호사, 소설가라는 저의 세 가지 직업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모두 '현대의 기호를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 직업은 기호적 인공물을 쌓아 올려서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기호를 적어서 어떤 기능을 지닌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변호사는 계약이라는 법률 시스템 안에서 태어난 기호적 인공물을 다루어 의뢰인을 지키기 위한 논거를 만듭니다. 그리고 작가는 말을 사용하여 감정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만듭니다." 

- 오마이갓,, 리우켄 당신은 정녕 천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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