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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Oct 19. 2015

그래피티, 젊은 예술가의 죽음 @Colombia

6개월 중남미  여행_53일째: 자유의 예술, 혹은 예술의 자유

나에게 콜롬비아는 그저 적도, 에콰도르로 가기 위해 거쳐가는 곳일 뿐이었다. 콜롬비아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쿠바에서 본 콜롬비아 드라마는 온통 총을 쏘아대는 장면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을 너무나 좋아했던 나로선 여정에서 콜롬비아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쿠바에서 출발하여, 콜롬비아에서는 단 4일만 스탑 오버하고 에콰도르 키토로 넘어가는 항공권을 예매했다. 그러나 돌이켜보았을 때, 이것은 나의 여행 중 가장 큰 실수였다!



보고타 구시가지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도시 전체를 가득 매운 그래피티와 중세양식의 건물들, 그리고 뛰어난 현대 건축물까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갤러리였다. 게다가 노을이 질 무렵의 보고타는, 내가 여태까지 본 도시 중 가장 아름다웠다.


내가 보고타에 온 이유는 단지 보테로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도시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던 그래피티 작품들 이었다. 나는 한 콜롬비아 청년이 진행하는 그래피티 투어에 참가했다. (비용은 무료이며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의 팁만 지불하면 된다. ) 사실, 내가 생각한 그래피티는 반항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콜롬비아에서는 이미 그래피티 또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성장하여,  반항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가들의 재치 넘치는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나 나는 군인과 총, 그리고 하트가 결합된 스텐실 아트를  좋아했다. 우연히 구시가지를 걷다 같은 작가의 작품을 발견하는 기분이란, 마치 어릴 적 숨은 보물 찾기에서 가장 큰 보물을 찾은 것과 같은 기쁨이었다.



그렇지만 보고타의 그래피티가 처음부터 이렇게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보고타 또한 여타 도시처럼 그래피티를 근절해야 할 대상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2011년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Diego Felipe Becerra가 새로운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경찰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그를 강도 용의자로 생각했고, 그는 경찰의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그날 이후, 거리 예술에 대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2013년 2월, 보고타의 시장 Gustavo Petro는 그래피티를 예술과 문화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더하여 현재는 지속적으로 그래피티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 초등학교에서 그래피티 실습 수업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길러주는 데에는 그만한 실습이 없으리라. 심지어 자신의 건물 벽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하는 건물주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만약 그래피티 하는 모습을 보고 경찰이  출동한다고 해도, 건물주가 동의했다면 경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보고타를 걷다 보면, 낮에도 벽에 그림 그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유의 예술을 위해서는, 예술의 자유가 필요하다. 보고타는 한 젊은 예술가의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예술의 자유가 허락되었다. 나는 우리가 조금이나마 더 아름다운 세상에 살기 위해서, 예술의 자유가 허락되는 세상에 살고 싶다.







"Artist's shooting sparks graffiti revolution in Colombia" The Guardian 2013.12.30.

http://www.theguardian.com/world/2013/dec/30/bogota-graffiti-artists-mayor-colombia-justin-bie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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