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중남미 여행 118일째: 내가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짐, 삶.
우리가 사는 데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할까? 의, 식, 주. 몇 벌의 옷과 음식, 그리고 내 몸 하나 누일 곳이면 충분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1년 전의 나는 달랐다.
住: 본가를 떠나 분당에서 일을 할 때 나는 24시간 경비아저씨가 상주하는 꽤나 좋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았다. 食: 잦은 야근을 핑계로 요리는 커녕 라면만 몇 번 끓여 먹었을 뿐이다. 보통은 무언가를 주문해서 먹거나, 항상 친구를 불러 외식을 하고 술을 마셨다. 衣: 그저 지나가다 예쁘면 산다. 안 입는 옷이 옷장 안에 수두룩 하다.
그랬다, 1년 전의 나는.
배낭을 처음 맨 날 생각했다. 내가 사는데 이렇게 많은 짐이 필요했던가?
결론:
시X. 무겁다. 젠장.
그렇게 하나 하나 나에게 진정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제외해 나갔다. 잘 입지 않는 옷가지와 여행지에 샀던 쓸모없는 기념품, 혹은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이나 선물들까지도. 그렇게 가방을 정리하고 나니 배낭의 무게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러나 그러한 물건들로 보조가방 하나가 가득 찼다. 그렇게 가득 찬 가방을 계속 들고 다닐 순 없다는 생각에 칠레, 안토파가스타에서 한 번 장사를 해보기로 했다.
호스텔에서 몰래 담요를 하나 챙겨나와 사람이 가장 많은 광장으로 갔다. 평일인데도 뭐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슬슬 눈치를 보며 메인 광장 앞에 좌판을 폈다. 펴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안토파가스타는 볼 것이 많은 관광지도 아니고, 광산업이 발달한 도시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많이 없다. 페루에서 구입한 니트와 쿠바에서 산 체 게바라 베레모 하며, 추워서 입지도 못하는 여름 옷, 그리고 카우치서핑 친구들에게 주려고 사간 한복파우치까지 꺼내 진열했다.
순식간에 몰려든 사람들이 이것저것 스페인어로 물어보는데 정신이 없었다. 가격도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아 입에서 나오는 대로 가격을 불러댔다. 그래도 한 아줌마가 내가 페루에서 산 스웨터가 마음에 드셨는지 5000페소(한국 돈 약 10,000원)이라는 가격에도 바로 구매하셨다! 푸하하. 페루에서 25 솔(약 7000 원) 주고 산 건데... 좀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워낙에 정신이 없던 터라 다른 손님들에 집중했다. 크크. 한 칠레 아저씨가 체 게바라 베레모에 관심을 보이셔서 4000 페소에서 2000 페소까지 쿨한 디스카운트로 팔아버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경찰이 다가왔다.
뭐,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허가증이 있냐고 물었다. 사실.. 그들이 하는 말을 다 이해했으나 이해하지 못하는 척 했다. "네..? Como? No Entiendo Nada." (네..? 머라고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를 외쳤지만, 경찰이 우리가 좌판을 치울 때까지 기다리는 바람에 결국 좌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번 돈으로 맥도널드 아이스크림 콘 하나씩 사먹으려고 기다리는데, 우리를 구경하던 한 칠레의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여기는 단속이 많아 힘들고 저~쪽 시장 쪽에 가면 단속이 덜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 친구가 팔던 한국 껌을 달라며 1000 페소(약 2천 원) 에 사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말한 시장 쪽으로 향했다.
다시 좌판을 펼쳤다. 심지어 옆 좌판 아줌마와 얘기도 하며... 불법 노점상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달았다. 아줌마는 가격을 묻더니, 너무 비싸다며 너희는 장사를 모른다고... 하셨다. 맞는 말인듯했다. 왜냐면 우리는 그 이후로 하나도 팔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또 한 10분쯤 후, 다른 경찰들이 왔다. 이번에도 못 알아듣기 전법을 썼으나 옆 좌판 아줌마가 자기 허가증까지 꺼내어 보여주는 탓에 다시금 우리의 좌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번 더 걸리면 진짜 경찰서에 끌려갈 것 같아 장사는 이만 접기로 하고, 동네 구경에 나섰다.
어쨌거나, 보조가방은 조금이나마 수월해졌고 내가 지고가야할 무게가 줄었다는 사실에 행복해졌다.
내 등 뒤에,
내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I was amazed that what I needed to survive could be carried on my back. And, most surprising of all, that I could carry it. — Wi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