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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Sep 21. 2015

불법 노점상 체험기 @Chile

6개월 중남미 여행 118일째: 내가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짐,  삶.

우리가 사는 데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할까?  의, 식, 주. 몇 벌의 옷과 음식, 그리고 내 몸 하나 누일 곳이면 충분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1년 전의 나는 달랐다. 


住: 본가를 떠나 분당에서 일을 할 때 나는 24시간 경비아저씨가 상주하는 꽤나 좋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았다. 食: 잦은 야근을 핑계로  요리는 커녕 라면만 몇 번 끓여 먹었을 뿐이다. 보통은 무언가를 주문해서 먹거나, 항상 친구를 불러 외식을 하고 술을 마셨다. 衣: 그저 지나가다 예쁘면 산다. 안 입는 옷이 옷장 안에 수두룩 하다. 

그랬다, 1년 전의 나는. 


배낭을 처음 맨 날 생각했다.  내가 사는데 이렇게 많은 짐이 필요했던가? 


결론: 

시X. 무겁다. 젠장. 


그렇게 하나 하나 나에게 진정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제외해 나갔다. 잘 입지 않는 옷가지와 여행지에 샀던 쓸모없는 기념품, 혹은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이나 선물들까지도. 그렇게 가방을 정리하고 나니 배낭의 무게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러나 그러한 물건들로 보조가방 하나가 가득 찼다. 그렇게 가득 찬 가방을 계속 들고 다닐 순 없다는 생각에 칠레, 안토파가스타에서 한 번 장사를 해보기로 했다. 



호스텔에서 몰래 담요를 하나 챙겨나와 사람이 가장 많은 광장으로 갔다. 평일인데도 뭐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슬슬 눈치를 보며 메인 광장 앞에 좌판을 폈다. 펴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안토파가스타는 볼 것이 많은 관광지도 아니고, 광산업이 발달한 도시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많이 없다. 페루에서 구입한 니트와 쿠바에서 산 체 게바라 베레모 하며, 추워서 입지도 못하는 여름 옷, 그리고 카우치서핑 친구들에게 주려고 사간 한복파우치까지 꺼내 진열했다.


실제 판매 영상! 몇 번을 봐도 웃겨죽겠다.


순식간에 몰려든 사람들이 이것저것 스페인어로 물어보는데 정신이 없었다. 가격도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아 입에서 나오는 대로 가격을 불러댔다. 그래도 한 아줌마가 내가 페루에서 산 스웨터가 마음에 드셨는지 5000페소(한국 돈 약  10,000원)이라는 가격에도 바로 구매하셨다! 푸하하. 페루에서 25 솔(약 7000 원) 주고 산 건데... 좀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워낙에 정신이 없던 터라 다른 손님들에 집중했다. 크크. 한 칠레 아저씨가 체 게바라 베레모에 관심을 보이셔서 4000 페소에서 2000 페소까지 쿨한 디스카운트로 팔아버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경찰이 다가왔다. 


뭐,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허가증이 있냐고 물었다. 사실.. 그들이 하는 말을 다 이해했으나 이해하지 못하는 척 했다. "네..? Como? No Entiendo Nada." (네..? 머라고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를 외쳤지만, 경찰이 우리가 좌판을 치울 때까지 기다리는 바람에 결국 좌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번 돈으로 맥도널드 아이스크림 콘 하나씩 사먹으려고 기다리는데, 우리를 구경하던 한 칠레의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여기는 단속이 많아 힘들고 저~쪽 시장 쪽에 가면 단속이 덜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 친구가 팔던 한국 껌을 달라며 1000 페소(약 2천 원) 에 사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말한 시장 쪽으로 향했다.


다시 좌판을 펼쳤다. 심지어 옆 좌판 아줌마와 얘기도 하며... 불법 노점상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달았다. 아줌마는 가격을 묻더니, 너무 비싸다며 너희는 장사를 모른다고... 하셨다. 맞는 말인듯했다. 왜냐면 우리는 그 이후로 하나도 팔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또 한  10분쯤 후, 다른 경찰들이 왔다. 이번에도 못 알아듣기 전법을 썼으나 옆 좌판 아줌마가 자기 허가증까지 꺼내어 보여주는 탓에 다시금 우리의 좌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번 더 걸리면 진짜 경찰서에 끌려갈 것 같아 장사는 이만 접기로 하고, 동네 구경에 나섰다. 



어쨌거나, 보조가방은 조금이나마 수월해졌고 내가 지고가야할 무게가 줄었다는 사실에 행복해졌다. 


내 등 뒤에, 

내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I was amazed that what I needed to survive could be carried on my back. And, most surprising of all, that I could carry it. — W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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